인수전 동지 4년 만에 결투모드
▲ 11월 25일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하이마트 본사에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작은 사진은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왼쪽)과 하이마트 선종구 회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하이마트의 지분 31.34%를 보유한 유진그룹은 최대주주로서 마땅히 경영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7년 12월 인수 당시 엄연히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최대주주인 유진그룹이 경영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유진그룹은 또 재무적 투자자들의 콜옵션 지분 6.9%와 유진투자증권이 보유하고 있는 1.06% 지분도 활용할 수 있다.
유진에 피인수되며 2대주주로 밀렸지만 선종구 회장 측은 임직원들의 단합과 정통성이 큰 무기다. 선종구 회장은 1998년 하이마트를 설립한 주역. 선 회장을 중심으로 하이마트 임직원들의 애사심과 자부심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 회장이 직접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상황을 설명하는 등 선종구 회장과 하이마트 임직원들은 뜻을 함께하고 있다.
선 회장 측 지분은 모두 27.53%. 선 회장이 17.34%, 아들 현석 씨가 0.85%, 아이에이비홀딩스가 2.54%, 우리사주조합이 6.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다 1.7%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자산운용과 0.28%를 보유하고 있는 칸서스자산운용은 공식적으로 선 회장의 편을 들었다.
이처럼 지분율에서는 유진그룹이 앞선다. 주총에서 표 대결을 펼친다 해도 선 회장 측이 차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를 인식한 탓인지 선 회장 측은 만일 30일 주총에서 유경선 회장의 뜻이 관철된다면 선 회장 이하 하이마트 임직원들은 지분을 모두 팔 것이라고 결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24일 하이마트 주가는 하한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반면 유진기업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로 치솟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가만 보면 투자자들이 유진그룹에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쟁점은 유진그룹이 인수 당시 선종구 회장에게 경영권을 보장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7년 이상 경영권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유진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이 약속을 깨고 임시주총까지 열어 대표이사를 개임(改任)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경영권 침탈”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007년 12월 유진그룹은 GS 롯데 등을 제치고 어피너티펀드로부터 1조 9000억 원에 하이마트를 인수했다. 이때 선종구 회장 측은 경영권을 보장해주겠다고 한 유진그룹 편을 들었고 지분 인수에도 참여했다는 것이 하이마트 측 주장이다.
그러나 유진그룹 측은 “경영권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선 회장이 단독대표를 요구하고 직원들을 선동하는 등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과도한 요구와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먼저 반기를 든 쪽은 선종구 회장”이라며 “대표이사 개임 건은 반기에 대한 응징”이라고 덧붙였다.
유진그룹이 하이마트에 경영권을 보장해주겠다는 문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마트 관계자는 “구두계약도 엄연히 계약”이라며 “임직원들이 주주인 하이마트의 경영권과 이익을 우리 스스로 지킬 것”이라고 맞섰다.
지난 11월 25일 전국 304개 지점과 임직원 5000여 명이 동맹휴업을 결의하는 등 하이마트 임직원들은 ‘결사항전’ 태세다. 그러나 동맹휴업은 24일 저녁 철회했다. ‘고객을 담보로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각자 맡은 위치에서 본인 업무에 충실히 매진해 주길 바란다”는 선 회장의 이메일도 크게 작용했다.
대신 하이마트 임직원들은 25일 아침 일부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게재하며 ‘유진그룹의 하이마트 경영권 침탈’을 비판했고 주주와 국민들에게 이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또 서울 대치동 하이마트 본사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지점장·임원·팀장 등 350여 명이 사직서를 작성하는 강수를 띄웠다. 하이마트의 경영권 분쟁은 국내 인수·합병(M&A)의 관행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됐다. 재계 관계자는 “재무적 투자자와 은행 차입금을 끌어 모아 M&A를 추진하는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