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선거 자격 충족 못해’ 지도부 결론에 강력 반발…일각에선 “전대 흥행 위해 기회 줬어야”
“저를 자리에 욕심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지 마라. 민주당이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7월 6일 민주당 지도부가 전당대회 출마 불가 입장을 내자 또다시 날을 세웠다. 전당대회 피선거권 자격을 두고 민주당 비대위와 박 전 위원장이 연일 공방을 이어가자, 민주당 당무위는 만장일치로 비대위 입장을 따랐다. 사실상 민주당 지도부 손을 들어준 셈이다.
앞서 비대위는 박 전 위원장 입당이 6개월을 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출마가 어렵다는 해석을 내놨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권리행사 시행일(2022년 7월 1일)을 기준으로 12개월 이내에 6회 이상 당비를 납부하고, 6개월 이전에 입당해야 당직선거의 피선거권이 부여된다. 박 전 위원장은 대선을 한 달 앞둔 2022년 2월 14일에 입당해, 입당원 신분이 6개월이 채 되지 않았다.
박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임명 당시 받았던 피선거권이 아직 박탈되지 않았다는 점을 앞세웠다. 7월 5일 그는 “당무위에서 당직선출 당규 제10조 5항의 단서조항에 근거해 저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했고, 이를 근거로 중앙위원회가 저를 투표로 선출한 것”이라며 “4월 1일 중앙위원회에서 투표를 통해 84.4%의 찬성을 얻어 비대위원장, 즉 임시 당 대표로 선출됐다”고 전했다.
박 전 위원장이 내세웠던 ‘84.4%의 찬성을 얻었던 비대위원장’은 무엇일까.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직후인 3월 13일 윤호중 의원과 박지현 당시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공동비대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 출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있는 윤 의원이 비대위를 이끄는 것이 옳지 않다는 당내 반발이 계속되자, 중앙위에서 비대위 구성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찬성 84.46%’는 중앙위에서 비대위 인준 안건을 투표한 결과로, 비대위원장 신임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였다.
정치권에서 박 전 위원장이 피선거권을 부여받았다고 해석하긴 어렵다는 견해가 우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 당직선출 당규 제10조 5항엔 “권리당원을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권리당원 자격이 없는 이는 당무위 의결을 통해 권리당원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뿐이다.
이 때문에 비대위원장이 권리당원 자격을 갖게 된다는 박 전 위원장 논리는 과도하다는 게 비대위와 민주당 지도부 입장이다. 조응천 의원은 7월 5일 KBS 라디오 방송에서 “비대위원장은 선출직이 아니고 임명직이라, 당원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며 “가장 대표적인 게 김종인 위원장 같은 경우”라고 설명했다.
조오섭 민주당 대변인 역시 “당시 윤호중 비대위원장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중앙위 인준 절차를 밟은 것이지 원래 비대위원장은 투표가 필요 없다”며 “비대위와 정기 전당대회는 차이가 있다. 당원 투표로 되는 당 대표 선거는 당헌·당규를 따라야 하는 건데 이를 비대위 인준 투표와 비교하는 것은 오해가 있다”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당무위 최종 결정에 “저만 막고 다른 영입 인사에게는 앞으로 길을 열어주겠다는 청년 차별이 아니라면 비대위가 ‘공식안건’으로 채택해 의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영입 6개월이 되지 않은 당원에게는 원칙적으로 피선거권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선례를 확실하게 해달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위원장은 중앙위 투표로 인준을 받았을지라도 그 자체가 피선거권을 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정확히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에선 박 전 위원장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입장과 특혜를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이 맞서면서 내홍이 불거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 전 위원장이) 본인만이 쇄신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며 “본인을 위한 룰을 만들어 출마 특혜를 주는 건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당대표격이었던 박 전 위원장에게 이렇게 냉대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 후 전면에 내세웠던 청년 정치인을 이용하고 팽한다는 프레임이 고개를 들면서다. 진중권 작가는 7월 5일 CBS라디오 ‘한판승부’ 인터뷰에서 “출마하겠다는데 왜 막느냐. 피선거권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줬어야 될 것 같다고 본다”며 “그냥 출마하게 해도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대세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지 않은데 지금 모양새가 이상해졌지 않느냐”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일각에선 전당대회 흥행을 위해서라도 박 전 위원장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7월 6일 발표(2~4일 조사, 표본오차 95%에 신뢰수준 ±3.1%포인트)한 ‘민주당 차기 당 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박 전 위원장은 8.8%로 3위에 올랐다. 이 조사에서 이재명 의원이 33.2%로 1위, 박용진 의원이 15.0%로 2위였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가에선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재명 의원의 승리가 유력하게 점쳐진다. 박 전 위원장이 비록 당선권에 가깝게 가긴 힘들더라도 최소한 ‘이슈 메이커’로선 다른 후보들에 비해 앞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20대 여성’의 당 대표 도전이라는 점도 상징성을 갖는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어차피 유권 해석의 문제였다. 박 전 위원장에게 특혜를 주는 차원이라고 보긴 어렵다. 박 전 위원장에게 특혜를 주려고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젊은 청년이 전당대회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응원해 줄 일이고, 당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당 내부를 향해 쓴소리를 했던 박 전 위원장을 향해 강경 지지층이 좌표를 찍어 공격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박 전 위원장이 고립 상태에 빠졌고, 이로 인해 정치권에서 멀어진다면 민주당의 손실”이라고 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