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2.5조원 투입, 신약 대신 CDMO 사업에 집중…인재 영입과 해외 바이오 벤처 협력이 관건
지난 7월 4일 롯데지주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롯데바이오로직스의 미국 현지법인(Lotte Biologics USA, LLC) 설립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미국 법인은 롯데바이오로직스가 100% 출자한 자회사로, 최초 출자금은 10달러다. 앞서 6월 롯데지주는 롯데바이오로직스 법인을 설립했다. 롯데지주가 지분 80%, 일본 롯데 측이 나머지 지분을 출자했다. 등기임원으로는 이훈기 롯데헬스케어 대표이사 부사장, 하종수 롯데글로벌로지스 SCM사업본부장 상무보, 마코토 미야시타 일본 롯데홀딩스 사업기획부 부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위탁개발생산…초기 사업 방향은 긍정적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사업 윤곽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 다른 기업의 의약품을 개발과 생산을 맡는 CDMO 전문기업이 목표다. 이원직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지난 6월 13일 미국에서 열린 ‘2022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에서 바이오 의약품 사업에 향후 10년간 약 2조 5000억 원을 투입해 글로벌 10위권 바이오의약품 CDMO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CDMO(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는 CMO(위탁생산‧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와 CDO(위탁개발‧Contract Development)를 합친 용어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택한 초기 사업 방향을 두고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당장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거나 다른 기업으로부터 사와 신약을 직접 개발하는 전략을 펴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가 신약 상용화에 성공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롯데는 과거 계열사로 롯데제약을 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 사업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제약은 롯데제과가 건강기능식품 업체인 아이와이피엔에프를 2002년 인수하며 설립됐다. 그러나 바이오산업의 높은 진입장벽 등을 이유로 2011년 롯데제과가 롯데제약을 흡수합병하면서 제약 사업에서 물러났다.
제약업계 관계자 A 씨는 “신약은 20년간 특허권을 누릴 수 있고, 신약을 개발한 오리지널 제약사는 에버그린 전략(오리지널사가 여러 개량 특허를 통해 신약 특허 독점 기간을 조정해 복제약 시장 진입을 늦추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부가가치 사업이다. 그러나 꼭 신약을 개발해야만 제약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롯데가 가진 자금력은 CDMO 사업에 있어서 높은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 개발과 생산을 맡길 고객의 유치가 중요한 CDMO 사업에서는 무엇보다 생산 설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3일 롯데지주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로부터 2060억 원을 들여 의약품 제조공장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롯데지주와 BMS는 2833억 원 규모의 의약품 위탁생산계약도 체결했다. 국내에서도 1조 원을 들여 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가뜩이나 인력 구하기 어렵다는데…
문제는 시설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이오 업계 안팎에서는 롯데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감지된다. ‘전문 인력’ 확보 때문이다. CDMO 사업에선 대규모 생산시설로부터 나오는 위탁생산 능력 못지 않게 연구개발과 임상시험 단계에서 세포주 개발, 세포은행 구축 서비스, 품질시험 등을 해줄 수 있는 위탁개발 능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후발주자인 롯데바이오로직스가 국내외에서 전문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련 업계는 보고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 B 씨는 “CDMO 사업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이오 연구를 할 수 있으면서 생산 공정 및 개발에 대한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교육을 통해 인력을 양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바이오의약품 CDMO 시장이 갑자기 커져서 상황이 심각하다. 이런 인력이 국내에는 거의 없고, 해외 사정도 마찬가지다. (롯데바이오로직스 입장에서) 국내에는 경쟁 기업이 적다고 해도, 해외 바이오의약품 CDMO는 이미 굉장히 많다. 아무리 돈을 투자해도 인재를 구하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의 A 씨는 “선발 주자인 셀트리온은 국내에서 CDMO 사업에 처음 나서면서 국내 전문 인력을 많이 뽑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도 인력을 상당히 채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도는 바이오산업 역량이 선진화된 곳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바이오의약품 CDMO 기업들이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 시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앞서의 B 씨는 “현재 바이오의약품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백질 바이오 의약품의 CDMO 기업은 너무 많다. 백신은 가격이 저렴한 데다 국가 기관에서 위탁개발생산을 도맡는다. 결국 바이오의약품 중에서도 성장성이 좋은 세포‧유전자치료제 시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BMS로부터 인수한 공장을 향후 세포‧유전자 치료제도 생산이 가능하도록 꾸미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그러나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의 경우, 일반 단백질 바이오 의약품 CDMO보다 전문 인력을 구하기 더 어렵고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이라 생산 물량이 기대만큼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B 씨는 “세포‧유전자 치료제는 바이러스 종류별로 생산‧공정 방법이 다 다르다. 능숙한 인재들과 생산 공정에 대한 노하우를 얼마나 갖췄는지가 중요하다. 선두주자들이 훨씬 유리한 이유”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일단 인재 영입과 경쟁력이 입증된 해외 바이오 벤처들과의 협력이 롯데바이오로직스 성공의 관건이라 본다. 7월 1일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머크 북미 생명과학 사업부 씨그마와 업무 협력을 체결한 바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BMS로부터 공장 쪽 인력 400명도 함께 인수받기로 했다. 공정 개발 인력도 채용하고 있고, 해외 바이오 벤처들과의 협력을 통해 내부적으로 인력을 육성하는 과정을 밟아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