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선박 혈흔 및 당사자 진술 종합해 북송…윤석열 정부 합조팀 부실 조사 살펴볼 예정
2019년 11월 7일 판문점이 시끄러웠다. 동해에서 NLL(북방한계선)을 넘어와 귀순 의사를 밝혔던 탈북어민 2명을 한국 정부가 북한 측에 인계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탈북어민을 북송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은 최근에야 공개됐다. 통일부가 촬영한 사진엔, 포승줄에 묶인 채 안대를 쓴 탈북어민이 엉덩이를 뒤로 뺀 채 북한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듯한 장면이 담겨 있었다.
한국 측에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것은 북한 내부에선 용서받기 힘든, 중죄에 해당한다. 탈북어민을 북송하는 것이 인권적인 측면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이유다.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당시 정부 당국은 동료 16명을 살해한 점을 강제북송 핵심 근거로 활용한 바 있다.
여권은 국내에서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유죄를 추정해 강제북송을 감행한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또 한국으로 넘어와 귀순 의사를 밝힌 지 5일 만에 강제북송된 절차를 둘러싼 ‘합조팀 부실 조사 논란’도 짚어보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북어민과 함께 넘어온 선박에 혈흔이 남아있는 점, 당사자들이 범죄사실을 자백한 점 등을 고려해 북송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9조에 따라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의 경우 북한이탈주민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법을 적용했다.
강제북송은 2019년 11월 7일 국회에 출석한 김유근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스마트폰 문자 내용이 유출되면서 알려졌다.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이 보낸 문자 내용은 강제북송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 중 하나로 꼽힌다. 문자 내용은 이랬다.
“단결! OOO 중령입니다. 오늘 15:00에 판문점에서 북한주민 2명을 북측으로 송환 예정입니다. 북한주민들은 11월 2일에 삼척으로 내려왔던 인원들이고, 자해 위험이 있어 적십자사가 아닌 경찰이 에스코트할 예정입니다. 참고로 이번 송환 관련해 국정원과 통일부 간 입장정리가 안돼 오전 중 추가 검토 예정입니다. 이상입니다.”
문자엔 탈북어민을 강제 북송하는 시기와 경위가 설명돼 있다. 당시 강제북송과 관련해 국정원과 통일부 사이 입장 정리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는 “해당 문자는 실무 당국 간 입장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채 강제북송이 결정된 것을 유추할 수 있는 포인트”라고 했다.
이 문자가 공개되면서 강제북송을 비공개로 진행하던 문재인 정부는 탈북어민을 북한으로 돌려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11월 7일 오후 3시께 탈북어민들은 포승줄에 묶여 안대를 쓴 채 강하게 몸부림치며 북한으로 인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공개된 통일부 사진 자료는 강제북송 현장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증거 자료로 부상했다.
2021년 5월 14일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송된 탈북어민들이 50여 일간 고문·조사를 받은 뒤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강제북송 탈북어민의 케이스는 해외에 나가 있는 북한 노동자 사상교육 케이스로 내부 선전에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국가보위성 사상교육 담당자는 탈북어민들의 ‘동료 선원 살해’ 범죄 사실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데일리NK는 덧붙였다.
2년 전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닻을 올린 뒤 연이어 3년 전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이 재조명되는 시국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은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일 때 불거졌다”면서 “2019년 11월 탈북어민 강제북송사건은 시기적 특성이 보다 묘하다”고 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탈북어민이 귀순 의사를 밝힌 시점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지막으로 만난 뒤 4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이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 김정은 간 남·북·미 정상회동이라는 이벤트가 있었다. 이날 문 전 대통령은 회동을 마친 뒤 회담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이 양자 회담을 진행했다.
대북 소식통은 “이날 남·북·미 정상회담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부하던 ‘한반도 운전자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 장면이었다”면서 “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이 예전처럼 유대감을 뽐내지 않았을 뿐더러, 회담에도 문 전 대통령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식통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대북제재 관련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고 기차로 복귀하는 굴욕을 맛봤다”면서 “북한 내부에서도 문 전 대통령이 주도하는 ‘한반도 운전자론’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2018년 3차례 남북정상회담으로 조성됐던 평화무드가 다시 얼어붙기 시작한 계기”라면서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한국 정부가 북한의 마음을 풀려는 일환으로 탈북어민 강제북송이라는 납득이 되지 않는 조치를 취한 것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이후 남북관계는 개선되지 않았다. 되레 경색국면에 돌입했다. 2020년 3월 포문을 연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의 ‘말폭탄 담화문’을 필두로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원상복귀 시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중국에 거주하는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이 담화문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사실상 남북 해빙무드 국면에 대한 종결을 선언했다”고 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3년이 지나서야 논란이 되고 있는 탈북어민 북송사건과 관련해 “합조단 조사를 5일 안에 마치고 탈북민을 북송한 것은 분명한 무리수다. 중국이나 제3국에 체류 중인 탈북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현지 공안당국에 체포돼 북송되는 것”이라며 “탈북민 중 북한 거주 때 범죄에 연루된 경우가 적지 않다. 강제북송 사례를 잣대로 들이밀면, 상당수 탈북민을 북한으로 송환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