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장제원 갈등 불호령으로 진압…통 큰 광복절 사면, 대통령실 전격 물갈이 가능성도
집안싸움 진화 작전을 끝낸 윤 대통령은 조만간 8·15 사면 카드를 통해 통 큰 정치 전략을 선보이면서 국면 전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한 정치권에선 지지율 하락이 계속된다면 대통령실에 대한 전격 물갈이 인사 카드를 동원할 것으로 점친다.
#집안싸움 직접 진화
“11월에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도 아직 한참 남았다. 믿을 구석이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내야 한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임기 초반 미국산 소고기 파동으로 10%대까지 지지율이 추락했던 이명박 정부를 기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 촛불시위로 큰 위기를 맞았다가 그해 8월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면서 일단 탈출구를 맞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지금 위기를 외부 이벤트로 극복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무조건 자력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고 이 중진 의원은 자력갱생론을 제시했다. 이 중진 의원 제언처럼 참모들의 직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던 윤 대통령이 스스로 지금의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면서 결국 방향 전환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을 보면 최근 지지율 하락 국면에 있어서 본인의 태도 변화가 분명히 보인다. 윤 대통령은 7월 19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국정 수행 부정 평가가 높게 나오는데 원인을 어떻게 보고 있나’라는 기자 질문에 “그 원인을 잘 알면 어느 정부나 잘 해결했겠죠”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뿐”이라고도 답했다. 지난 7월 4일 도어스테핑에서 같은 질문에 대해 “선거 때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지지율은 별로 유념치 않았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한 것과는 달라진 태도였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30%대 초반까지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여당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TK(대구·경북)에서조차 부정 평가가 자꾸만 늘어나자 윤 대통령이 스스로 비상등을 켠 것으로 해석된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확실한 지역 기반이 없어 콘크리트 지지층이 적은 윤 대통령으로서는 소나기 악재를 막아줄 확실한 방파제가 없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윤 대통령 인식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직접적 위기 대응조치는 즉각 발효되고 있는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본다. 최근 윤핵관끼리의 충돌에 이어 이내 갈등 진화 국면이 나타난 것이 그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윤핵관 쌍두마차로 불리는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 갈등은 지난 7월 18일 폭발했다. 갈등설이 잇따라 제기되자 두 사람은 7월 15일 오찬 회동을 했는데도 결국 또다시 충돌했다.
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을 둘러싼 권 대행의 대응 방식을 놓고 장 의원은 7월 1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권 대행을 작심 비판했다. 장 의원은 권 대행을 향해 “말씀이 무척 거칠다” “국민들은 말의 내용뿐만 아니라 태도를 본다” “집권여당 대표로서 엄중하고 막중한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며 직격했다.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이 전면전에 들어간 것으로 봤다. 그러나 권 대행은 즉각 몸을 낮췄다. 장 의원의 글이 게시된 직후 권 대행이 “장 의원의 지적에 대해 겸허히 수용한다”며 한 발 물러섰다. 그동안 두 사람은 친윤 그룹 의원들이 주도하는 민들레 모임 결성, 이준석 대표 징계 후 당 진로 등을 둘러싸고 균열을 노출해왔다. 한때 형제임을 자처했던 둘이 장 의원의 작심 발언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장 의원의 도발적 발언에 대해 권 대행이 즉각 머리를 숙였고 장 의원도 확전을 자제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손’ 개입설이 나왔다. 동생(장제원)의 사격에 형(권성동)이 응사를 포기한 것은 결국 윤 대통령 뜻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권 대행과 장 의원은 갈등 진화 국면을 넘어 겸손 모드에다 칭찬하는 사이로까지 돌변했다. 권 대행은 7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김도읍 장제원 의원 두 분이 법사위원장을 신청했는데, 어제 장 의원에게서 ‘자기는 법사위원장을 하지 않고 평의원으로 남겠다’고 문자가 왔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 의총에서 그 사실을 발표했고, 의원들로부터 장 의원이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장 의원이라며 한껏 띄워준 셈이다.
국민의힘 다른 의원은 “권 대행에게는 당 대표 꿈이 있을 것이고 장 의원도 어떤 형태로든 권력 의지가 있을 텐데 결국 이 지점에서 권력을 놓고 충돌하는 것”이라며 “충돌이 소강 국면에 들어간 것은 강력한 힘에 의해 눌린 것”이라고 풀이했다.
#8·15 광복절 특사 주목
윤 대통령은 자신의 최대 장점인 통 크고 소통하는 이미지를 회복,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장선에서 취임 후 첫 특별사면인 ‘8·15 광복절 특사’가 주목된다. 국민대통합과 경제 살리기를 위해 대규모 사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사면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여론의 동향을 최대한 살펴 사면 결정을 내리겠다는 의도로 비친다. 윤 대통령은 7월 20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과거부터 사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범위로 한다든지 그런 것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지난해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 부회장 등의 사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이 부회장의 경우 7월 29일자로 형기가 만료되기 때문에 복권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야권과의 관계 개선은 물론, 국민 대통합 차원에서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야권 인사의 사면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일각에서도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사면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커지는 중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사면 얘기도 나오지만 정 교수는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개인 비리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많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민심을 추스르는 차원에서 생계형 민생사범 구제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여름휴가도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리를 비울 수 없을 만큼 급박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7월 21일 서울 용산 청사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 대우조선해양 문제도 있고 챙겨야 할 현안도 있어서 아직 여름휴가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일할 땐 열심히 하고 쉴 땐 푹 쉬자 생각하신 분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여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극약 처방 꺼낼까
윤석열 대통령이 겪고 있는 임기 초반 지지율 급락은 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임기 시작 4개월 만인 2008년 6월 20일 전면적인 인적 개편을 단행했다. 측근으로 불렸던 류우익 대통령 비서실장이 물러나는 등 청와대 수석 7명을 모두 바꿨다. 정권 초반 청와대 물갈이는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당시 다른 도리가 없었다. 미국산 소고기 협상에 대해 격렬한 비판 여론이 일면서 촛불시위는 확산됐고 어떻게든 국정의 방향타를 돌려세워야 했다.
윤석열 정부도 당시 촛불시위처럼 격렬한 혼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심각한 지지율 하락세는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때문에 이 같은 추세를 꺾고 반등 기회를 삼기 위해서는 대통령실에 대한 인적 쇄신을 과감히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전노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7월 2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어쩔 수 없이 당정과 대통령실의 인적 개편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도 안 돼 (여권 내) 권력투쟁이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정 내 인적 개편을 하지 않고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 국면을 잘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원장은 ‘인적 개편 최우선 대상은 대통령실인가’라는 물음에 “저는 그렇게 본다”며 “그런 (사적 채용 논란이 이는) 사람을 천거한 것도 문제지만, 아는 사람끼리 이렇게 (채용)하는 것을 대통령실에서 걸러줬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 경험이 일천한 윤 대통령이 곁에 노련한 정치 컨설턴트를 둬야 한다는 충고도 했다. 박 전 원장은 “대통령이 정치 경력이 일천하기 때문에 (정치를) 잘 모르는 것 같다”라며 “완숙한 경지에 있는 서청원, 이재오 전 의원 등을 정치고문으로 모셔다 그분들 얘기도 잘 듣는 게 좋다”라고 덧붙였다.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인적 쇄신에 대한 압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을 빛내주기는커녕 대통령을 보호해주는 방어막 구실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여권 내에서조차 높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높아야 거대 야당을 상대할 수 있다”며 “대통령실이 앞장서 인적 개편을 통해 국민들에게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