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 같던 ‘동업자’ 돌아서니 ‘원수’
▲ 갈라서! 지난 7일 야권통합 방식을 놓고 갈등을 일으켜온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결국 결별을 선언했다. 유장훈 기자 |
손 대표가 간곡한 어조로 설득했다.
“야권통합은 국민의 명령이자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오전에 열렸던 당 통합협상위원회에서 의결된 통합안대로 함께 야권통합의 길로 나아가자.”
그러자 박 전 원내대표가 답했다.
“지난달 27일 만난 자리에서 12월 11일 통합을 위한 전당대회를 원만하게 성공시키기 위해 첫째 전당대회는 박주선안으로 하고, 둘째 전대에 관한 내용은 반드시 만장일치로 처리하며, 셋째 어떠한 경우에도 손학규-박지원의 합의로 처리하기로 합의하지 않았나. 그러나 실제로는 손 대표 측과 ‘혁신과 통합(혁통)’이 밀실에서 합의한 내용대로 가고 있다. 박지원과 합의 처리하겠다는 약속이 깨졌다. 손 대표는 이제 손 대표의 길을 가라. 나도 내 길을 가겠다.”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분위기가 냉랭했다는 오찬이 끝난 뒤 박 전 원내대표는 오후 2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장병완 의원 출판기념회 장소로 이동했다. 그 자리에서 박 전 원내대표는 손 대표와의 결별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한때 ‘주류 연합군’으로 불렸던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틀어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고, 손 대표가 민주당 대표에 오른 지난해부터 1년간 찰떡공조를 과시해 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핸디캡으로 인해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에서 분루를 삼켰던 손 대표로서는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적자 격인 박 전 원내대표를 우군 삼아 ‘호남 당원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했다. 오랜 시련기를 거쳐 18대 국회에서 정치를 재개한 박 전 원내대표로선 ‘판 메이커’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손 대표 같은 유력 대선주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인간적 배신감을 느끼며 등을 돌린 것이다. 어쩌다 이런 파국을 맞았을까.
둘 다 억울하고 할 말이 많겠지만 야권통합 과정에서 손 대표의 스타일리스트적 기질과 치밀하지 못한 정치 스타일이 갈등의 씨앗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초 민주당 내에선 11월 중순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뽑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10·26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10월 4~5일 손 대표가 ‘사퇴 파동’을 일으킨 바 있고 재·보선 결과도 참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 새 지도부와 혁통 등이 추천하는 인사들이 새롭게 만들어질 야권 통합정당의 지도부로 추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만 그렇게 봤던 게 아니다. 손 대표가 ‘야권 통합정당 창당대회 때 통합정당 지도부를 경선으로 뽑자’는 이른바 ‘원샷 경선론’을 제기했을 때 혁통 내에서조차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과거 당대당 통합 과정에서 통합정당 지도부는 나눠먹기식으로 추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특히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이 통합정당 지도부 경선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손 대표는 왜 당 안팎을 당황케 한 의외의 카드를 꺼냈을까. 그의 주변 인사들은 민주당만의 지도부 경선이 전혀 감동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손 대표의 우려가 작용했다고 전한다. 그의 한 측근은 “민주당 독자 전대를 앞두고 과거의 ‘올드 보이’들이 우후죽순 출마 준비에 나섰다”며 “박지원 한 명이라면 몰라도 이미 정치적으로 퇴출됐던 정대철, 정균환, 김태랑 전 의원 등까지 숟가락을 얹는다면 민주당 전대가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쳐지겠느냐”고 말했다.
더욱이 손 대표가 ‘원샷 경선론’을 꺼낼 당시에는 지금은 가장 유력한 당권주자로 부상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한창 재판을 받고 있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을 야권 통합경선에 끌어들이기 위해 천정배 의원의 출마를 만류하는 무리수를 둘 정도로 스타일을 중시하는 손 대표로선 ‘원샷 경선’으로 판을 흔들어야겠다고 생각할 만하다.
손 대표의 이 같은 구상은 사전 물밑 조율 없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김부겸 이종걸 우제창 의원 등 이미 실체로 부각된 당권주자들과 아무런 교감이 없었던 것이다. 손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돼 온 김부겸 우제창 의원까지 손 대표의 ‘원샷 경선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손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박 전 원내대표 측은 손 대표의 구상을 ‘박지원을 제거하고 한명숙을 옹립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였다. 박 전 원내대표를 돕고 있는 한 전직 의원은 “누가 봐도 차기 대표가 될 것 같았던 박지원이 손 대표의 장난질을 용납할 수 있었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손 대표가 뒤늦게 박 전 원내대표를 수차례 만나 설득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박 전 원내대표 측은 “‘굴러온 돌’을 한식구로 받아들여 대표까지 당선시켜줬더니 이제는 적반하장 격으로 ‘박힌 돌’을 몰아내려 한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손 대표 측은 “알 만한 사람이 그 정도 설명했는데도 몽니를 부리는 것은 결국 자신이 대표가 못 되면 야권통합을 안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접점을 못 찾은 두 사람은 결국 7일 정면으로 충돌했다. 박 전 원내대표의 대리인 격인 염동연, 박양수 전 의원이 강력 반발하는 와중에 손 대표는 정세균 통합협상위원장을 앞세워 통합안을 의결해 버렸다. 박 전 원내대표도 곧이어 ‘결별 선언’으로 맞불을 놓음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파탄 났다.
당내에선 두 사람 모두가 패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손 전 대표는 대선가도로 가는 주요 기반을 잃게 됐고 박 전 원내대표는 ‘무조건 통합하라’는 DJ의 유훈에도 불구하고 반 통합세력으로 낙인 찍혔다는 것이다.
실제로 8일 오후 폭력사태로 얼룩진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회의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두 사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독자 전대를 주장하며 박 전 원내대표와 함께하고 있는 이른바 열성 당원들의 입에선 한때 자취를 감췄던 “한나라당에서 온 놈을 대표 시켜줬더니…”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튀어 나왔다. 또 이들의 ‘깽판’을 지켜보는 통합파 지역위원장과 당직자들 사이에선 “역시 ‘구악’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손학규와 박지원 두 사람의 관계 파탄이 향후 야권통합의 향배와 차기 대권경쟁 구도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박공헌 언론인
민주당 2003년 분열 재판되나
‘분당 트라우마’ 불쑥
지난 7일 오후 3시쯤 국회의사당 기자실인 정론관에서 일하고 있던 야당 출입기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야권통합 방안을 둘러싸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갈등을 빚어 온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마이 웨이(my way)’를 선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게 도화선이었다.
‘마이 웨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2003년에 이어 또 다시 민주당이 둘로 쪼개지는 것인가.
조간신문 마감이 한창인 이때 기자들이 한결 더 분주해졌다. 발언의 당사자인 박 전 원내대표는 평소와 달리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내에선 “손 대표가 멋대로 하더니 결국 그렇게 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과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적자인 박지원이 당을 깬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오후 5시쯤 박 전 원내대표의 공식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가 배포되면서 분당 논란은 일단 해프닝으로 정리됐다. 박 전 원내대표가 손 대표와의 결별 사실을 전하면서도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전대에서 누가 이길지 한 번 붙어보자는 것이었다.
박 전 원내대표는 8일에는 “전대에 불참하거나 대의원들을 불참시키는 비열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전대가 의결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2011년이 2003년의 재판이 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결정적 포인트였다. 이에 대해 당내에선 “‘분당 트라우마’가 작동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2003년 신당파와 구당파가 딴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양측 모두 말 못할 고초를 겪었다는 것이다. 신당파의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었고, 구당파의 새천년민주당은 17대 국회의원 총선거 참패로 풍찬노숙 신세로 전락했었다.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다시 합쳤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유례없이 큰 격차로 지고 말았다.
더욱이 박 전 원내대표가 “30%가 아니라 70%를 내주고라도 통합하라”는 DJ의 유훈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점도 민주당 분당 가능성을 낮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과도 같다’는 DJ의 지론처럼 민주당 내 갈등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단정할 수 없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특히 8일 전국 지역위원장 회의에서의 폭력사태는 이런 위기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헌]
‘분당 트라우마’ 불쑥
지난 7일 오후 3시쯤 국회의사당 기자실인 정론관에서 일하고 있던 야당 출입기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야권통합 방안을 둘러싸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갈등을 빚어 온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마이 웨이(my way)’를 선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게 도화선이었다.
‘마이 웨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2003년에 이어 또 다시 민주당이 둘로 쪼개지는 것인가.
조간신문 마감이 한창인 이때 기자들이 한결 더 분주해졌다. 발언의 당사자인 박 전 원내대표는 평소와 달리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내에선 “손 대표가 멋대로 하더니 결국 그렇게 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과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적자인 박지원이 당을 깬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오후 5시쯤 박 전 원내대표의 공식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가 배포되면서 분당 논란은 일단 해프닝으로 정리됐다. 박 전 원내대표가 손 대표와의 결별 사실을 전하면서도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전대에서 누가 이길지 한 번 붙어보자는 것이었다.
박 전 원내대표는 8일에는 “전대에 불참하거나 대의원들을 불참시키는 비열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전대가 의결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2011년이 2003년의 재판이 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결정적 포인트였다. 이에 대해 당내에선 “‘분당 트라우마’가 작동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2003년 신당파와 구당파가 딴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양측 모두 말 못할 고초를 겪었다는 것이다. 신당파의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었고, 구당파의 새천년민주당은 17대 국회의원 총선거 참패로 풍찬노숙 신세로 전락했었다.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다시 합쳤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유례없이 큰 격차로 지고 말았다.
더욱이 박 전 원내대표가 “30%가 아니라 70%를 내주고라도 통합하라”는 DJ의 유훈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점도 민주당 분당 가능성을 낮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과도 같다’는 DJ의 지론처럼 민주당 내 갈등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단정할 수 없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특히 8일 전국 지역위원장 회의에서의 폭력사태는 이런 위기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