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에서 독립’ 시나리오에 힘 실리지만 기업가치 축소될까 눈길
현대차그룹은 현재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현대차증권 등 금융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정태영 부회장 내외가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를 가지고 계열분리할 것이란 관측이 꾸준히 나왔다. 정태영 부회장 내외가 현대커머셜 지배력을 확보하면 현대커머셜이 현대카드를 지배하는 구조로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정태영 부회장 내외는 현대커머셜의 지분은 있지만 현대카드 지분은 없다. 현대커머셜은 현대카드 지분이 있지만 최대주주는 아니다. 시나리오가 구체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정태영 부회장 내외가 가지고 있는 현대커머셜 지분은 정태영 부회장 12.50%, 정명이 사장 25%로 총 37.5%다. 현대자동차도 현대커머셜 지분 37.5%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외부 자금이 투입된 어피니티의 특수목적회사(SPC) 센츄리온 리소스 인베스트먼트Centurion Resources Investment Limited)가 나머지 2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카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현대커머셜이 확보한 현대카드 지분은 28.5%로 현대자동차가 확보한 36.96%보다 낮다. 여기에 기아차가 현대카드 지분 11.48%를 갖고 있어 현대커머셜이 현대카드의 지배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재원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최근 들어 현대커머셜이 현대카드 지분 매입 행보를 이어가면서 정태영 부회장 내외의 계열분리를 관측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앞서 현대커머셜은 지난 1분기 현대카드 지분율을 기존 24.54%에서 28.56%로 4.02%포인트 끌어올렸다. 여기에 투입된 자금은 869억 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또 현대카드 소액주주가 들고 있는 지분 3.02%을 매수하기로 결정했다. 소요되는 자금은 667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정태영 부회장 내외의 계열분리 시나리오에 힘이 실리자 계열분리 과정에서 현대커머셜과 현대카드의 기업가치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현대커머셜이 정태영 부회장 내외를 중심으로 계열분리를 하면 현대차그룹 계열사로서 갖는 이점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 3사(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는 현대커머셜이 현대차그룹 소속 계열사로서 장점이 있다고 판단해 신용등급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현대커머셜 회사채 등급을 평가할 때 “현대차그룹 계열이 회사의 75%의 지배지분을 보유 중이며, 영업·조달 등 사업 전반에 걸친 그룹과의 높은 연계수준 등을 감안하면 지배적 긴밀성이 존재한다”며 “현대차그룹 계열의 비경상적 지원 가능성을 반영해 자체 신용도 대비 1노치 상향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도 비슷한 이유로 현대커머셜 신용평가에서 자체 신용도 대비 1노치(단계) 상향 반영하고 있다.
현대커머셜이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 현대카드의 지분을 늘리는 과정에서 현대커머셜의 재무적 부담 증가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가뜩이나 현대커머셜은 그동안 관계회사 투자 비중이 높아 재무부담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터다. 한국기업평가는 “현대커머셜이 자기자본 대비 관계회사 투자자산 비중이 2022년 3월 말 기준 97.0%(규모 1조 2503억 원)로 높은 수준”이라며 “자본적정성 측면에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 현대카드 보통주 자산 비중이 1조 243억 원 수준으로 관계회사 투자자산의 81%를 차지한다.
현대카드도 현대차그룹 계열사로서 얻는 이점이 상당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현대카드의 신용등급 평가를 진행할 때 계열사 지원 가능성을 반영한 신용등급 노치 조정은 하지 않았지만 “현대카드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지분율이 비교적 높고, 영업·조달 등 회사의 사업 전반에 걸쳐 그룹과의 연계성이 높아 지배적 긴밀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또 “완성차의 판매 과정에서부터 판매 이후 구매고객에 대한 편의 제공 등의 금융서비스로 이어지는 그룹의 사업포트폴리오에서 회사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등 계열 내 사업적 긴밀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실제 현대카드는 지난해 계열사를 통해 올린 매출액(영업수익)이 2808억 원 수준이다. 전체 영업수익의 약 10% 수준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대규모기업집단에서 계열사가 독립하면서 계열분리를 하면 영업력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며 “시간이 지나면 같은 사업을 두고 경쟁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의 계열분리가 각 기업의 기업가치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카드가 계열분리된다고 해도 단기간에 기업가치가 축소되기는 어렵다는 게 시각이 있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롯데카드가 롯데그룹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나”며 “현대카드 역시 현대차그룹에서 독립한다고 해도 기업가치가 단기간 축소될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현대차그룹은 이들 회사의 계열분리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 가능성에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비상장인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이 향후 기업공개(IPO)에 나설 가능성이 있어서다. 두 회사 모두 외부 지분이 있어서 이들 주주로부터 IPO의 압박을 받을 여지가 있다.
일요신문i는 계열분리에 따른 현대커머셜과 현대카드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