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매수 후 국내서 파는 차익 거래 후 송금 가능성…처벌은 제한적일 듯
#‘김치 프리미엄 차익거래’ 유력
우리나라의 가상자산 투자 열기는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편이다. 국내에서 해외 거래소를 통해 코인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같은 코인이라도 국내 가격이 해외보다 더 높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다. 이를 노린 거래가 김치 프리미엄 차익거래다. 해외거래소에서 코인을 매수하고 이를 국내 거래소로 이동시킨 후 더 높은 값에 팔아 차액을 챙기는 구조다. 이번 이상 외환거래 자금도 이렇게 만들어졌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 금융권 안팎의 중론이다. 코인 매각 대금은 은행계좌를 통해 무역업체 등에 송금하고 무역업체들은 이를 수입대금 명목으로 해외로 보낸다. 주로 중국이다. 코인 매수세력은 해외에 근거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세력이라면 해외에서 코인을 사서 국내에서 판 후 굳이 다시 해외로 송금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25일 가상자산 사업자들을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하도록 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시행됐다. 반년의 유예기간이 지난 9월 25일부터는 은행이 발급하는 실명계좌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지 못한 거래소는 현금으로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원화거래를 할 수 없게 됐다. 그 전까지는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법인계좌, 이른바 ‘벌집계좌’를 이용한 원화거래가 가능했다. 벌집계좌에서 투자자의 자산명세는 은행이 아닌 거래소가 만든 별도의 장부로 관리된다. 본인 여부 식별이 어렵고 불법자금 거래에 활용될 우려도 크다. 지난해 9월 25일부터 가상자산거래소의 실명확인 규제가 강화가 예고되면서 그 이전에 불법자금의 현금화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불법 관련 자금 가능성, 처벌 제한적일 듯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나온 자금이 다수의 개인과 법인을 거쳐 무역법인 계좌로 이동한 점을 감안할 때, 전문 중개인 또는 조직이 개입됐을 것으로 보인다. 법인의 대표가 같거나 친인척 관계이고 한 사람이 여러 법인의 임원을 겸임한 정황도 드러난 등 상당히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졌다. 가상자산 거래차익에는 아직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금을 은밀히 해외로 이동시키려 한 것은 ‘떳떳하지 못한’ 자금이기 때문일 수 있다. 중국은 가상자산 거래가 불법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 국가정보원이 개입하기 시작한 점 역시 자금세탁 또는 범죄집단 관련 자금일 개연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애초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금감원에 신고한 이상거래는 2조 5000억 원 규모였다. 이를 근거로 금감원이 파악한 이상거래는 4조 1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금감원은 이미 모든 은행에 2021년부터 올 6월까지 유사한 거래에 대해 자체 점검을 실시해 7월 말까지 결과를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점검할 대상은 현재 검사 중인 것까지 포함해 44개 업체 53억 7000만 달러다. 일부 정상적인 거래도 섞였겠지만 6조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금감원은 해외로 송금한 돈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이들 업체의 자금거래를 추적 중이다.
국내외 가격 차이를 거래한 차익거래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이전까지는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금융실명제법 상의 실명거래 확인의무를 지는 ‘금융회사 등’에 포함되지 않았다. 금감원은 차익거래를 거친 돈이 해외로 나가는 과정에서 외국환거래법 준수 여부를 살피고 있다. 은행이 거래 당사자의 신고의무와 입증서류 등을 제대로 확인했는지 여부다. 특금법상 고객의 신원확인과 함께 고액 현금거래와 자금세탁 의심사항 등을 금융당국에 제대로 보고했는지도 점검사항이다.
은행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뤄진 거래인 만큼 서류상 요건은 갖췄을 가능성이 크다. 은행들이 당국에 신고한 이유도 신설 소규모 법인에서 단기간 거액의 외화가 반복적으로 송금된 점을 의심해서다. 서류의 진위 확인 등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은행들의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이번 사건의 핵심이 되기는 어렵다. 국내 법인 관련자들을 금융실명제법과 특금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익을 누린 해외 투자세력에 대한 처벌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