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해이 우려하는 목소리 커…금융권 부실 부담 정부가 떠 안는 구조
가장 논란이 뜨거운 부분은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원금 감면이다. 2021년 말 기준 자영업자·소상공인 채무는 916조 원(263만 명)이며 이 가운데 660조 원(220만 명)이 이번 정책의 대상이다. 정상거래 채권 500조 원을 제외하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액수는 160조 원이다.
정부는 새출발기금을 조성해 30조 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매입할 계획이다. 새출발기금에 편입되면 채무자는 대출금리가 낮춰지고 최대 3년간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되며, 상환기간은 최대 20년까지 연장된다. 90일 이상 연체한 이들에게는 60~90%의 원금 탕감이 이뤄지게 된다. 은행들이 새출발기금에 넘길 부실채권들은 대부분 90일 이상 연체일 가능성이 크다. 원금 60~90% 감면이면 최소 18조 원의 부담이다. 새출발기금은 정부가 출자한 재원으로 만들어진다. 깎아준 이자와 탕감해준 원금만큼 정부 손실이다.
문제 발생 가능 채권 160조 원이 모두 상환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새출발기금이 가장 부실한 30조 원을 떠안아 나머지 130조 원의 상당부분은 원금 회수가 가능할 전망이다. 은행으로서는 가장 부실한 채권들을 새출발기금에 넘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원금의 90%까지 탕감이 가능한 기존 제도로는 개인회생이 있다. 채권자의 손실을 국가 권력이 강제하는 제도인 만큼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소득자여야 하고 법원에 실제로 변제 계획을 이행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법원이 판단하면 기각 처리된다. 소득이 들쭉날쭉하거나 최저 생계비보다 못 버는 경우가 많은 자영업자들이 주로 기각을 당한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법원의 판단 없이 국가 재정을 투입해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용인해주는 셈이다.
가상자산 투자 등으로 손실을 입은 청년(만 34세 이하)들에 대한 이자 감면 역시 기존 제도보다 느슨한 기준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속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있다. 이자 감면은 없고, 원금 상환유예 기간(최대 3년) 중 최대 15%의 약정이자를 납부해야 한다. 정부는 이 제도에 ‘청년특례’를 신설해 기존 제도의 신청자격인 ‘30일 이하 연체’가 발생하기 전이라도 이자를 30~50% 깎아 주고, 원금을 갚지 못하는 기간에 내는 이자는 연 3.25%로 일괄 적용할 방침이다. 소득과 재산을 감안해(신용평점 하위 20% 이하) 대상자를 선별한다고 하지만 청년과 비청년의 차별이 상당한 셈이다.
금융위가 지난 7월 14일 배포한 금융지원 자료를 보면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민생 영향을 이번 대책 마련의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4가지로 구분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주식, 가상자산 등 청년 자산투자자의 투자손실 확대다. 2030세대 신용융자 잔액 현황과 가상자산투자 연령별 비중 수치도 곁들였다. 청년들이 경제적·심리적으로 어려우니 도와야 한다는 취지다. 가상자산 투자자 가운데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았던 2030세대의 비율이 45%로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4050(42%)보다 많았다. 2030 표심을 노리고 굳이 청년 투자자를 언급한 셈이다. 논란이 일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부랴부랴 옹색한 해명을 했다. 지난 7월 18일 언론 브리핑 내용이다.
“살다 보면 투자에 실패할 수도, 사업이 안 될 수도, 사들인 부동산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원인이 아니라 지금 예정한 대로 채무를 갚을 수 있는지 여부다. 조금만 도와주고 채무 조정을 하면 재기할 수 있는데 그냥 둘 수는 없지 않나.”
은행은 표정관리를 하는 모습이다. 정부 대책 가운데 은행에 구체적으로 지운 부담이 많지 않아서다.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은 사실상 정부가 총대를 멨다. 은행들은 신용등급이 높거나, 신용보증기금 등 공적기관의 보증서가 있는 차주들에만 주로 대출을 해줬다. 부실이 발생해도 공적기관들이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데 새출발기금까지 나섰으니 부실 우려 자산을 떠넘길 절호의 기회다.
정부가 코로나19 금융지원의 95% 이상을 사실상 연장하라고 주문하고, 고금리 대출을 7% 이하 저금리 대출로 전환하도록 유도했지만 큰 부담은 아니다. 시중은행에서 잔액 기준 7% 이상 대출은 많지 않다. 취약 차주를 위한 금융상품을 마련하라는 지침도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