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마다 북적북적, 수백만원짜리 인기 모델 1년 이상 대기…젊은이들 ‘업그레이드 후 되팔이’ 재테크도
최근 베이징 출퇴근 시간에 직장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가득 채운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베이징이 ‘자전거 왕국’으로 불렸던 1980~1990년대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 거리에서 사라졌던 자전거가 최근 몇 년 새 다시 등장한 것이다.
2000년대부터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자동차 출퇴근’이 일상화됐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자전거 타기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건강과 환경 이념의 확산 덕분이다. 대도시의 지옥 같은 교통정체도 자전거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대중교통보다 자전거를 애용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시작했다는 직장인 잔쥔은 “차로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교통정체로 인해 30분이 넘게 걸렸다. 그래서 자전거를 샀다. 러시아워에도 10분이면 회사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 휘발유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베이징은 이에 발맞춰 2020년 자전거 전용도로를 개통했다. 6.5km 거리의 이 도로는 왕복 4차선이다. 버스와 지하철보다 훨씬 빨라 갈수록 이용자가 늘고 있다. 2021년 연간 주행량은 9억 5000만 건으로 집계됐다. 베이징 주민들은 이 도로를 ‘자전거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베이징의 자전거 도로를 벤치마킹하는 도시들이 늘어나고 있다.
베이징이 자전거 도로를 개통한 이유는 극심한 교통정체 때문이었다. 베이징은 ‘자전거 라이딩’ 사업을 한 단계 끌어올려 녹색 모빌리티 개념을 도입했다. 왕즈슝 중국 스포츠발전 유한공사 전무는 “하늘은 푸르고, 물은 맑고, 나무는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라이딩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포츠발전 유한공사는 7월 10일 ‘전국민 라이딩 페스티벌’을 개최한 곳이기도 하다. 전국의 라이더들이 베이징에 모여 자전거 퍼레이드를 펼쳐 화제를 모았다. 한 대회 참석자는 “주요 도시들이 자전거를 타는 데 유리한 도로 조건을 제공하기 위해 공사를 하고 있다. 자전거 라이딩은 국민 스포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자전거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1억 명가량이 자전거를 주요 이동수단으로 삼고 있다. 자전거 라이딩은 달리기와 함께 2대 건강관리 스포츠로 뽑혔다. 타이위안시 라이딩 협회 왕둥리는 “50명의 회원이 매주 달린다. 은퇴 후 삶이 힘들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나서 바뀌었다”고 했다.
불황으로 힘들어하던 자전거 업계는 최대 호황을 맞았다. 중국자전거협회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자전거 생산량은 7640만 대가량으로 역대 최대다. 업종 영업이익은 3085억 위안(60조 원)가량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전거 수출 역시 2020년에 비해 53.4% 증가한 120억 달러(15조 7000억 원)였다. 중신증권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자전거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기회를 맞은 업체들은 최첨단, 친환경, 고객 맞춤형 자전거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닌, 새로운 패션으로서의 자전거 보급에 나선 것이다. 가격 역시 천차만별로, 고가일수록 잘 팔린다. 베이징의 한 자전거 판매 사원은 “가격대별로 사이즈, 기능, 디자인 등이 차이가 많다. 출퇴근, 통학, 출장, 여행, 운동 등 다양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생산라인을 다양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얼마 전 기자는 직접 베이징의 한 자전거 매장을 찾았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매장엔 자전거를 구매하려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매장에 진열된 자전거는 수십 개가 넘어서 안내원으로부터 설명을 들어야 했다. 안내원을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자전거 열기’가 정말 뜨거웠다.
일부 젊은 고객들은 시승을 직접 해보기도 했다. 자전거 외에도 핸들, 잠금장치, 전조등, 장갑, 헬멧 등 부대 제품 판매장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판매원은 “보통 1만 위안(194만 원) 정도 가격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은 소재로 된 자전거들은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실제 1만 위안대 자전거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판매원은 “2025년까지 주문이 밀려 있는 상태”라고 귀띔했다. 이 판매원은 “비쌀수록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2만 위안(388만 원)에 달하는 자전거는 최소 2년을 기다려야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재고가 없다. 올해 자전거를 사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자전거를 많이 타던 1980년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피닉스’라는 브랜드의 자전거 인기가 높았는데, 대략 150위안(2만 9000원)이었다. 당시 노동자 평균 월급(50위안)의 3배 정도 가격이었다. 사치품이었지만 없어서 못 살 정도였는데, 그런 현상이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출퇴근 또는 통학에 용이한 접이식 자전거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베이징에서 일하는 34세 류카이는 한 달 전부터 접이식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회사까지의 거리는 약 13km로, 왕복 약 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류카이는 “처음엔 조금 피곤했는데 이젠 에너지가 넘친다”면서 “울창한 나무들이 있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 보면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일하는 소곽 역시 접이식 자전거 마니아다. 그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해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나서부터는 달라졌다. 소곽은 “운동할 시간을 따로 낼 필요가 없다. 또 음악을 좋아했지만 들을 시간이 없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자전거 라이딩의 유행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풍속을 낳았다. 바로 ‘자전거 재테크’다. 자전거를 구매한 뒤 디자인이나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후 되파는 방식이다. 중고시장에서 이런 자전거는 ‘부르는 게 값’이다.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탓에 중고시장 자전거 거래는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