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콘텐츠와 최고 수준 AI 역량 등 매력적…홀로서기 선택 시 IP 수급 난항으로 생존 쉽지 않을 듯
#왓챠, 매물로는 매력적이라는 평가
OTT 왓챠의 매각설이 흘러나오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올해 5월까지만 해도 왓챠는 내년 상장을 목표로 1000억 원 규모의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에 나선 상태였다. 왓챠는 2021년 말 49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000억 원을 인정받았지만 올해는 코로나 방역 완화와 함께 OTT 시장이 축소된 데다 ‘출혈 경쟁’이 지속되며 상장 추진 동력이 식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IPO 시장 냉각과 금리 상승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왓챠는 현재는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왓챠는 영화평가·추천 서비스를 운영하던 (주)왓챠가 2016년에 ‘왓챠플레이’라는 이름으로 론칭한 토종 OTT 서비스다. 2020년 왓챠플레이는 명칭을 ‘왓챠’로 변경하며 본격적으로 OTT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왓챠는 외연 확대에 애를 먹었다. 소비자리서치 전문 연구기관 컨슈머인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기준 왓챠의 유료이용률은 넷플릭스, 유튜브 프리미엄,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디즈니플러스에 이어 7위를 차지했다. 조사대상 중 최하위였다. 2020년과 2021년 말에 각각 신규 론칭한 후발주자인 쿠팡플레이와 디즈니플러스에도 밀린 것이다.
타사 대비 오리지널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의식한 왓챠 역시 오리지널 콘텐츠 비중을 늘리려 애썼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올해 2월에는 동성 간 사랑을 다룬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를 반짝 흥행시키기도 했으나 뒷심이 부족했다. OTT 업계 한 관계자는 “콘텐츠 구매에만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왓챠 역량의 한계로 꼽힌다. 콘텐츠 수급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월 정액제 이용자만으로 비용을 회수하기에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용자 확보에 고전하는 것과는 별개로 왓챠는 매력적인 매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매물로서는 당연히 매력 있는 플랫폼인 게 한국의 넷플릭스라고 불릴 만큼 기술이 잘 구현돼 있다. 콘텐츠 수급과 브랜딩도 잘해 소비자들에게 인기도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왓챠는 2000년대에 방영한 옛날 드라마들과 예능 프로그램, 고전 홍콩 영화, 독립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풀을 보유하고 있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등 대중성과 흥행성이 높은 콘텐츠를 조달하는 타사에 비하면 점유율에서 밀리지만 마니아층은 확실히 형성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한 왓챠피디아의 콘텐츠 평가 및 추천 서비스 역시 큰 장점으로 꼽힌다. 왓챠의 AI 역량은 OTT 업계 최고 수준으로 왓챠피디아는 개인별 평점과 콘텐츠 시청 시간, 다른 이용자와의 취향 유사성까지 분석해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해주고 예상 평점까지 매겨준다. 앞서 유료이용률이 7위 수준이었던 컨슈머인사이트의 만족도 평가에서는 디즈니플러스에 이어 만족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소비자 호응이 높다.
인수 후보로는 여러 기업들이 거론되고 있다. 인수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히는 곳이 웨이브다. 웨이브는 지상파 방송사와 통신사인 SKT가 합작해 만든 OTT 서비스로 기존 월간활성이용자(MAU)수만 약 400만 명에 달하는 플랫폼이다. 그러나 올해 7월 티빙이 KT의 시즌과 합병하며 웨이브를 제치고 토종 OTT 중 1위로 올라선 탓에 웨이브가 왓챠 인수를 통해 반전을 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내 최대 전자책 플랫폼인 스타트업 리디도 IPO 추진력을 얻기 위해 왓챠와 지분 맞교환 방식으로 경영권을 인수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매각설에 대해 왓챠 관계자는 “IB업계 쪽에서 흘러나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다. 저희는 다각도로 투자 유치 중이고 결정된 사항은 아직 없다”며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 것은 사업구조 개편 진행에 따른 인력감축 때문”이라고 말했다.
왓챠가 홀로서기에 나선다고 해도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의 노창희 연구위원은 “왓챠와 넷플릭스를 제외한 OTT 회사들은 이미 다방면으로 사업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디즈니나 애플은 말할 것도 없고 웨이브나 티빙 역시 OTT사업이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의 하나이기 때문에 적자가 나도 출혈경쟁을 지속할 수 있지만 왓챠는 오롯이 OTT로만 수익을 내야 하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현재의 치열한 경쟁을 감당하면서 계속 투자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IP 수급 전쟁, 왓챠의 경쟁력은?
대기업의 자본을 바탕으로 한 OTT업체들은 다양한 플랫폼과 합종연횡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웹툰·웹소설 원작으로 한 오리지널 콘텐츠의 성공이 이어지면서 자체 IP(지식재산권)수급에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이해날 작가의 웹소설 ‘어게인 마이 라이프’나 해화작가의 웹툰 ‘사내맞선’ 등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슈퍼IP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슈가 됐다. 문화연구가인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전 교수는 "경쟁력 있는 IP를 자체적으로 수급해 성공하는 사례가 계속 이어지면서 플랫폼 측에서는 영상화할 수 있는 협업체계 구축을 점차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KT의 콘텐츠 사업 컨트롤타워로 불리는 ‘스튜디오 지니’ 역시 KT의 웹툰·웹소설 전문 자회사인 ‘스토리위즈’나 KT의 웹소설 플랫폼 ‘블라이스’ 등을 통해 자체IP를 수급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둔 상태다. SK텔레콤은 2021년 상반기 원스토어와 예스24, 판타지 분야에 특화된 전문출판사인 로크미디어를 합작해 ‘스튜디오 예스원’을 설립했다. 계열사인 웨이브와 SK브로드밴드에 공급할 오리지널 콘텐츠의 IP 확보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를 들었다. 네이버 또한 2021년 5월 캐나다의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하면서, 왓패드의 웹소설 토대로 네이버의 콘텐츠 IP 사업을 키우려는 포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융희 전 교수는 “이제는 개별 OTT 플랫폼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웹소설 플랫폼과 OTT 플랫폼과 그것을 중개하는 통신사 등 거대 자본들이 자기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긴밀한 협업체계를 이루어 수급과 제작을 모두 해결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거대한 콘텐츠 제국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앞으로는 이 콘텐츠 밸류 체인의 싸움이 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며 “왓챠 같은 개별 OTT가 홀로 살아남기에 어려운 생태계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앞서의 왓챠 관계자는 “왓챠는 자체IP 확보가 어려운 대신 왓챠피디아를 통해 10년간 축적한 이용자의 평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외의 저평가된 콘텐츠를 발빠르게 찾아 수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