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진압 수준, 긴급 대응 후 경찰특공대에 인계 가능성…국방부 “군 개입 안해, 유관기관서 진행”
3년 전 일어난 탈북어민 강제북송 논란 진상규명을 둘러싼 정치권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통일부는 7월 11일 탈북어민 판문점 인계 당시 사진을 공개했다. 7월 19일엔 북송 과정이 담긴 영상 전체를 공개했다. 탈북어민은 포승줄에 묶인 채 경찰특공대 인계에 따라 북으로 인계됐다. 그 과정에서 탈북어민은 머리를 바닥에 찧는 등 강력한 저항 의사를 보였다.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 탈북어민 강제북송을 놓고 반인권 논란이 불거졌다.
통일부가 공개한 사진 자료에 따르면 푸른색 트레이닝복을 착용한 탈북어민 양팔은 포승줄로 묶여 있었다. 추가적으로 손목엔 테러범을 진압할 때 주로 쓰이는 검정색 케이블타이가 함께 묶여 있었다. 케이블타이는 해외 작전 중인 미군이 테러범을 제압할 때 주로 쓰이는 물건으로 알려져 있다. 케이블타이는 간편한 휴대성과 확실한 결속력으로 전선 정리 등에 많이 쓰인다.
탈북어민을 판문점에서 북으로 인계한 곳은 경찰특공대다. 대테러 임무를 수행하는 특성상 경찰특공대가 탈북어민에게 ‘이중 포박’을 한 주체일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경찰특공대 측은 이를 부인했다. 7월 14일 조선일보는 유튜브 채널 ‘이슈포청천’과 경찰특공대 대테러안전계 관계자 통화내용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특공대 측은 “당시 경찰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 요청을 받고 갔기 때문에 포박 장비 등 아무런 장구도 없는 맨 몸이었다”면서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북한 주민(탈북어민)들은 포승줄에 몸이 묶이고 케이블타이로 손이 결박된 상태로 앉아 있었다”고 밝혔다. 경찰특공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탈북어민들은 포박당한 상태였고, 그 포박을 누가 했는지에 대한 정체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한 경찰 관계자 의견도 비슷했다. 이 관계자는 통일부가 공개한 탈북어민 포박 사진을 보고 “포박 자체가 경찰의 방식은 아니”라면서 “통상 경찰은 수갑을 휴대하기 때문에 케이블타이를 포박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TF 소속 태영호 의원은 경찰로부터 확보한 구두 답변 내용을 전했다. 태 의원이 전한 경찰청 관계자 답변에 따르면 경찰특공대는 ‘2019년 11월 7일 호송 차량 두 대와 대원 8명이 필요하다’는 얘기 정도만 듣고 판문점에 갔으며 사복 차림으로 장비도 없이 판문점에 도착해서야 (북송 과정 관련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 임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특공대는 탈북어민 북송 당시 경찰 내부에서 생성된 공문 없이 판문점에 요원 8명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포박을 했는지에 대한 사실은 베일에 가려 있는 셈이다.
군 정보당국의 익명 관계자는 7월 1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포박에 군이 개입돼 있을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고 제보했다. 이 관계자는 “군 내부에서 ‘포박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정보사령부 예하 신문단이 포박한 솜씨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그는 “보안 이슈가 많은 조직이기 때문에 (포박 후) 대외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인계 업무를 경찰 측에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신문단에 상주하는 인원들은 주로 헌병(현 군사경찰) 특기로 ‘밀리터리 폴리스(군사경찰)’ 교육을 받기 때문에 포승이나 압송에 대해서는 굉장히 뛰어난 역량을 자랑하며, 몸도 좋다”면서 “정보사가 국방부 예하 부대이다 보니 육·해·공 헌병에서 우수 인력을 선발해 신문단 소속으로 배치하는데, 군에서 손가락에 꼽는 ‘포박의 달인’들로 꼽힌다”고 주장했다.
그는 “탈북어민을 포박해 판문점까지 데려간 뒤 임무를 경찰특공대에 비밀리에 인계한 것은 신문단이 대외적으로 공개가 곤란한 부서이기 때문”이라면서 “결국 군 정보사 예하 부대가 모든 절차를 준비해놓은 것을 경찰특공대가 최종 이행하는 절차만 수행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정보사 예하 신문단은 탈북민들의 국내 정착 과정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1인치'다. 서울 모처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신문단은 국가보안시설로 분류돼 위장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가 탈북하게 되면 정보사 요원들은 신문단에서 북한 군사정보 수집 및 전쟁포로 조사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문단에서 조사를 받은 뒤에야 탈북민 신병은 국정원이 담당하는 하나원이 인계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1월 13일 5~6곳에 총상을 입은 북한군이 JSA(공동경비구역)를 통해 귀순한 사건이 있었다.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귀순했던 북한군 역시 정보사 예하 신문단에서 조사를 받는 절차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에서 누군가가 넘어오면, 정보사 예하 신문단에 수용을 한다”면서 “귀순·탈북민을 임시로 수용하는 구치소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곳엔 늘 감시원이 있고, 경계를 한다”면서 “정말 남측으로 넘어온 사례인지, 우발적으로 넘어온 사례인지, 대공용의점이 없는지를 조사하는 과정이 이곳에서 진행된다”고 했다. 그는 “귀순 의사가 분명한 탈북민의 경우 신문단에서 조사가 끝나면 통상 국정원이 운영하는 하나원으로 넘어간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원은 신문단에 비해 굉장히 자유로운 환경이다. 탁구 치는 시간도 있고, 자기들끼리 매점 가서 뭘 사먹기도 한다. 하지만 신문단에 (수용된) 탈북민 신병에 대한 처리 여부는 정부에서 꽉 쥐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의 소속 요원들이 시설을 경호하고 있기 때문에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다른 익명의 정보기관 관계자는 “하나원, 국정원에도 정보사 신문단 요원들이 파견 나가 있다”면서 “필요한 경우 미군 신문단과 협조까지 가능할 정도로 업무 네트워크가 촘촘히 갖춰져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이 운영하는 하나원에는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민들을 포박 후 이송할 만한 시설 및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다”면서 “신문단은 군 소속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초기 대응 조치 등 긴급상황이 터졌을 때 바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이다. 탈북어민들은 하나원을 거치지 않고 신문 과정에서 바로 판문점으로 압송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7월 20일 일요신문은 국방부에 탈북어민 포박에 군이 개입돼 있는지 여부를 질의했다. 국방부 측은 “해당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법령 등 문제로 인해 탈북어민 북송은 군에서 개입한 것이 아니고 유관기관에서 진행한 것으로 이미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