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16명 살해 증거 없어, 탈북 브로커설도…합동조사 졸속 의혹, 당시 법무부 행보도 석연치 않아
3년 전 문재인 정부는 탈북어민 2명을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북송했다. 정권이 바뀐 뒤 윤석열 정부는 이 사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전직 국정원장 두 명을 고발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 하락 이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 안보 이슈 진상규명 드라이브에 액셀을 밟고 있다.
날이 바뀔 때마다 사건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의혹이 동시다발적으로 추가되는 상황이다. 탈북어민 포박 관련 의문은 여전히 명확히 해결되지 않았다. 탈북어민 2명은 북송되던 당시 포승줄에 케이블타이까지 더해진 이중 포박을 당했다. 테러범에 준하는 포박이었다. 포박한 사람은 없다는데, 포승줄에 묶인 사람은 존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전·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 ‘군 개입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관련기사 [단독] 강제북송 ‘특별한 포박’과 정보사 신문단의 정체).
탈북어민 2명이 동료 선원 16명을 죽였다는 혐의에 대한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동료 선원 살해 혐의는 2019년 두 탈북어민의 자백 내용과 당시 SI(특수정보)를 근거로 추정됐다. 동료 살해 혐의를 명확하게 입증할 방법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 사실관계를 뒤흔들 만한 의혹이 등장했다. 두 탈북어민 사이 자백 내용이 엇갈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탈북어민이 타고 온 선박에 혈흔이 없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자백을 한 탈북어민들은 강제로 북송됐고, 그들이 타고 온 선박은 강제북송 이튿날 북한에 인계됐다. 엇갈리는 자백 내용과 선박 내 혈흔 존재 여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대북 소식통을 비롯한 탈북민들 사이에선 탈북어민이 동료 선원 16명을 죽였다는 사실관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아무리 들어봐도 16명을 살인한 사건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북한 보위부도 이 사건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소식통은 “16명을 살해한 정도 사건이면 북한에서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기 마련”이라면서 “북한에서도 이 정도 규모 살인사건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 선박 내에선 매일같이 사상 투쟁이나 상호 비판 과정을 주기적으로 하는 데다, 사이가 좋지 않으면 아예 같은 배에 태우지 않는 식으로 시스템을 운영한다”면서 “구조적으로도 배 자체에 18명이 탈 수 없는 상황이며, 혈흔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혹도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강제북송 당시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탈북어민 체격이 깡마른 것으로 보이는데, 물리적으로 16명을 한꺼번에 제압하는 게 가능할지도 의문이 든다”면서 “지금까지 그들의 범죄 혐의 증거로 거론됐던 자백 역시 탈북 이후 신체·정신적인 탈진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라 신빙성에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탈북어민 정체와 관련한 새로운 내용도 제기됐다. 그들이 탈북 브로커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7월 20일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TF 위원장 한기호 의원은 “(북한) 김책시에서 다섯 가구 주민 16명이 오징어잡이 배로 탈북하려 했고, 탈북 브로커인 어민 2명이 인솔해 승선하기로 했으나 16명이 보위부에 체포됐다”면서 “오징어잡이 배에 있던 2명이 체포 직전 남하했다”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16명을 살해했다는 것은 북한이 탈북 브로커 2명을 송환하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라면서 “다섯 가구(16명)도 모두 김책시에서 사라져 어디로 갔는지 생사도 모른다”고 했다. 과거 탈북 브로커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탈북 브로커설은 신빙성 있는 이야기”라면서 “사건과 관련한 수사가 세부적으로 이뤄진다면 탈북 어민들이 사실은 탈북 브로커라는 설에 대한 명확한 정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강제북송 절차와 관련한 의문점도 갈수록 증폭되는 모양새다. 우선 4일 동안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던 합동조사가 1일 만에 종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건 당시 법무부가 강제북송 3시간 전 법리 검토를 통해 ‘북송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TF에 따르면 법무부는 2019년 11월 7일 정오 무렵 청와대로부터 탈북어민 북송 관련 법리검토를 요청받은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검토 결과 법무부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비정치적 범죄자 등 비보호 대상자에 대해서는 국내 입국 지원 의무가 없으나, 이미 입국해 버린 비보호 대상자의 강제 출국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외국인을 전제로 하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강제 출국 조치도 적용하기 어려우며, 사법부의 상호보증 결정 없이 범죄인인도법에 의거 강제 송환 조치를 하는 데에도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법무부 법무실은 어민들의 추방은 어쩔 수 없다는 취지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합동조사 기간이 턱없이 부족해 조사가 졸속으로 이뤄진 부분이나, 법무부가 북송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어민 추방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책임감 없는 의견을 낸 것은 분명이 문제”라면서 “문재인 정부가 법무부 법리 검토 의견을 패스하고 강제북송을 강행했다는 비판론이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민생이 아닌 전 정부에 대한 공격에 치중하고 있는 부분은 분명히 각성해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탈북어민들이 16명을 살해한 증거 존재 여부 등 진실에 대한 의구심 어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관련 의혹이 하나둘 추가되는 상황과 관련해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강제북송에 대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본질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면서 “강제북송보다도 강제북송 명분이 된 ‘16인 살인사건’이 조작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진상규명이 각종 의혹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강 대표는 “3년 만에 강제북송 논란이 다시 재조명되면서 탈북민 커뮤니티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시민들의 경우 이번 사건을 진상규명의 잣대로 바라보지만, 탈북민들 입장에선 이 사건이 생존의 문제로 느껴질 수 있는 까닭”이라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