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처 사라지는데 ‘임대주택 신청’ 난항…전문가 “전반적 노숙인 주거 문제 살펴봐야”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용산으로 이목이 집중됐다. 윤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용산 국방부 자리로 대통령실을 이전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관저도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는 대로 용산구 한남동으로 옮길 예정이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으로 용산 일대 개발이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인식한 듯 윤 대통령은 “용산 일대 개발 지연, 부동산 추가 규제 등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 서울시는 용산정비창 부지에 ‘아시아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6일 허허벌판인 용산정비창 부지 약 50만㎡에 국제업무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보면 용산정비창 부지(서울시 용산구 한강로3가 40-1032,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3가 40-1034)는 한국철도공사 소유의 토지다. 이곳은 서울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가용지(개발이용이 가능한 토지)로 알려졌다. 2013년 용산국제업무지구 도시개발사업이 최종 무산된 후 현재까지 방치돼있다.
대통령실 이전, 국제업무지구 개발 등 연이은 호재로 용산은 서울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신용산역 인근의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이 근방의 매물을 가진 사람들은 (개발 소식 등에) 집값 상승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용산 일대가 들썩이고 있지만 한쪽에선 해결되지 못한 과제로 끙끙 앓는 이들이 있다. 용산 텐트촌 노숙인이다.
용산 텐트촌은 현재 용산역 뒤편 숲길에 위치해있다. 텐트촌 바로 옆에선 용산역과 서울드래곤시티를 잇는 공중보행교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이다. 용산 텐트촌은 200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용산역 인근, 타 지역에서 노숙을 하던 이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거리를 떠돌다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용산 텐트촌 4가구는 지난 6월 국토교통부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에 따라 임대주택 입주 신청을 마쳤다. 텐트촌 생활을 청산할 기회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단 입주 선정이 확정된 건 아니다. 문제는 주거지원사업에 신청 못한 노숙인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일요신문i 취재를 종합하면 텐트촌에 매주 후원물품을 전해주고 있는 서울역노숙인자활센터에서 취합한 텐트촌 노숙인 가구 수는 총 38가구다. 용산구청에서 집계한 텐트촌 노숙인 가수 수는 총 27가구다. 전체 노숙인 가구 수가 집계되지 않고 있는 셈. 또 한 가구에 2명씩 거주하는 경우도 있어 노숙인 인원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서울역노숙인자활센터와 용산구청에서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20~30여 노숙인 가구는 주거지원사업에 지원하지 못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주거지원사업에 지원 못한 가구가 더 많다”면서도 “주거지원사업을 신청한 노숙인들도 (사업 선정이) 확정된 건 아니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주거지원사업 지원 등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텐트촌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 원인으로는 지자체의 소극행정이 거론된다.
안형진 상임활동가는 “용산구 측에선 당초 노숙인들의 실거주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거지원사업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몇 개월 전 공중보행교 설치 공사 때문에 일부 텐트촌이 철거 대상이 됐고, (텐트 철거로) 거처를 잃은 노숙인들이 생겨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더니 (용산구 측이) 그제서야 텐트촌에 와서 주거취약대상이 맞다며 사업 신청을 독려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3월 용산역과 서울드래곤시티를 잇는 공중보행교 공사가 시작된 뒤 텐트촌 노숙인 이주 문제는 심각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공중보행교 신설 공사 전 보행교 위치가 조정되면서 텐트 2개동이 철거 대상에 올랐고, 당시 텐트 2개동에 거주하던 노숙인 3명의 거처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후 일부 시민단체에선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중 임대주택 지원 대상에 ‘컨테이너 움막 등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자’가 있다며 용산구에서 텐트촌 노숙인들의 임대주택 신청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상 임대주택은 지자체를 통해 신청한다.
하지만 용산구 측은 당시 “텐트촌 노숙인들이 여러 지역을 오가며 생활해 (용산구에서만)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또 (용산구에) 전입신고가 돼 있지 않아 거주를 확인할 자료도 없다”며 주거지원사업 신청 대상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시민단체 등은 “서울시가 텐트 배치도에 식별번호까지 부여했고 노숙인 지원기관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를 통해 텐트촌 방문상담을 지속하고 있다”며 노숙인들의 실거주지가 용산구라고 주장했다.
안형진 상임활동가는 “(텐트촌 노숙인들은) 올 3월 공중보행교 공사로 인해 임대주택 지원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며 “진작 지원 대상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을 텐데 용산구의 소극행정이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호소했다.
다만 일부는 노숙인들이 공공부지에 자리한 것을 지자체에서 책임져야 할 문제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용산역에서 만난 용산구 주민 이 아무개 씨(50대 여성)는 “텐트에서 생활한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주요 기차역만 가도 노숙인들이 많다”며 “한 지역 노숙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전반적으로 노숙인 문제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텐트촌이 여기(용산구) 있으니까 용산구청에 대책 마련을 요구할 수 있겠지만 용산구에서만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용산 텐트촌 문제를 단순히 임대주택 신청 여부로만 바라볼 것이 아닌 전반적인 노숙인 주거 문제로 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주거정책이 어디에 초점이 맞춰졌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장중심사회의 주거정책에는 대체로 복지정책이 반영되지 않는다. 결국 시장 중심으로 주거정책이 돌아가다 보니 주거의 공공성은 떨어질 수 있다”며 “주거공급이 지나치게 시장기제에 의존하는 경우 경제적인 격차가 벌어지면서 노숙인은 증가하고 또 노숙인들이 갈 곳을 잃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거정책에 있어 공공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주거공급을 시장경제에만 맞추면 우리나라도 갈 곳 잃은 노숙인이 유럽처럼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