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에이전트 브루넬에 당한 희생자들 입 열어…부르넬, 억만장자 엡스타인에게 어린 모델 1000명 ‘제공’하기도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패션업계 전반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미성년을 상대로 한 학대 행위를 다루면서 특히 지난 1980~1990년대 소녀들을 착취했던 유명 에이전트인 장 뤽 브루넬의 만행을 폭로했다. ‘포쿠스’와의 전화통화 인터뷰를 통해 어렵게 입을 연 피해자들은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외면되어 온 패션 산업의 어두운 면에 대해 낱낱이 털어놓았다.
지난 2월, 인신매매 및 미성년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브루넬은 한때 파리 패션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이었다. 전세계 모델 지망생들을 상대로 ‘카린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했으며, 이를 악용해 거물들을 상대로 은밀하게 성매매 알선도 했다.
그가 키워낸 슈퍼모델로는 1980년대를 풍미했던 헬레나 크리스텐슨을 포함해 여러 명이 있었다. 그렇게 영향력을 키워나갔던 브루넬은 곧 파리 상류 사회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또한 회원제 나이트클럽인 ‘레 뱅 두슈’에 고정석을 둔 VIP 고객이었던 그는 그곳에서 사업가, 왕실 인사, 팝스타, 영화 제작자 등을 두루 접대했다. 접대에는 자신의 에이전트에 소속된 수많은 젊은 모델들을 동원했다.
‘카린 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돼 있던 어린 모델들은 브루넬의 아파트에서 함께 동거했으며, 대부분 침실을 공유하는 식으로 집단 생활을 했다. 이렇게 브루넬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모델의 꿈을 키웠던 소녀들은 주로 미국, 캐나다,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에서 건너온 10대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처음으로 집을 떠나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풋내기들이었다.
대학에서 고전 예술과 고고학을 전공한 뉴욕 출신의 마리앤느 샤인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22세였던 그가 브루넬의 에이전시에 들어갔던 해는 1985년이었다. 모델의 꿈을 품고 있었던 그는 부모님의 전폭적인 응원과 격려 속에 파리로 향했다. 처음에는 평생직이라는 의미보다는 용돈을 벌고 해외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만 여겼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즐거웠다. 프랑스어를 조금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이 이유였다.
샹젤리제 근처의 ‘카린 모델’ 사무실에 도착했던 샤인의 눈에는 모든 게 핑크빛처럼 보였다. 당시에 대해 샤인은 “그때만 해도 카린 소속의 모델이 된다는 것은 소녀들에게는 하나의 특권이었다. 마치 유명인사가 된 듯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꿈은 불과 6개월 만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집을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돼서 집으로 돌아온 그는 ‘포쿠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파리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활달하고 감성이 풍부한 소녀였다. 하지만 파리에서 돌아온 후에는 그런 성격이 사라졌다”고 했다.
부모님은 딸이 여행사에 취직하기를 원했지만, 샤인은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밤에는 잠을 잘 수 없었고, 아침이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느릿느릿 걸어 다니기만 했다”며 당시의 지옥 같았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자신의 이런 상태가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몰랐지만, 이제는 그때 자신이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대체 6개월 동안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파리에서 샤인은 패션 업계에 종사하는 남성들에게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에이전트였던 브루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샤인이 성폭행을 당했던 것은 1986년 봄이었다. 당시 샤인은 브루넬이 주최한 저녁 식사에 초대되었고, 그 자리에는 몇몇 에이전시 소속의 다른 톱모델들도 있었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샤인은 어떤 이유에선지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샤인은 이날의 악몽에 대해 ‘포쿠스’에 이렇게 털어놓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브루넬이 내 위에 올라와 있었다. 벌거벗은 채로 내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내가 그를 밀쳐내자 화를 낸 그는 내 머리를 움켜쥐고는 구강 성교를 강요했다. 그 요구를 들어주고 나서야 마침내 나는 풀려날 수 있었다.”
그날 밤 이후 샤인은 6개월 동안 패션 업계 관계자들에게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그를 성폭행한 어떤 패션 디자이너는 샤인에게 “모델이 있는 곳에는 섹스가 있다”며 당연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는 듯 말했다.
결국 샤인은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당시 샤인은 피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당한 자신만을 탓했다. 너무 부끄러웠고,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꼈다. 그 사이 브루넬의 사업은 계속 번창했다. 1988년, 그의 부정 행위를 폭로한 TV 고발 프로그램이 방영됐지만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샤인이 아픔을 털어놓기 시작한 건 미투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번져 나간 2020년이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도 구체적인 내용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러던 2020년 10월, 브루넬을 포함해 패션 산업 전반에 걸쳐 진행되어 온 학대 행위를 폭로한 신문 기사를 읽은 그는 비로소 용기를 내기로 마음 먹었다. 샤인은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모든 걸 묻어버린 여자들이 대체 몇 명이나 될까”라면서 자신이 겪었던 악몽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1996년 당시 여고생이었던 린드라 맥파틀라-캐롤도 ‘포쿠스’에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카린 모델’에서 일하기 위해 파리로 떠난 그는 17세 때 브루넬에게 처음 성폭행을 당했다. 캐롤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당했다고 말하면서 “나는 성폭행을 당하던 도중 기절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가 내 가슴 위에 누워서 내 입에 그의 성기를 밀어넣고 있었다는 것뿐이다”라며 치를 떨었다.
캐롤은 그후 일에 집중하면서 그날의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그후에도 ‘카린 모델’ 측은 수시로 모델들을 이런저런 저녁식사 자리와 파티에 동원했고, 그때마다 무료로 제공되는 코카인을 복용해야 했다. 캐롤은 오히려 그 자리의 고통을 잊기 위해 코카인을 점점 더 자주 복용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생활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집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모델 일을 그만두었다.
현재 캘리포니아 리버모어에 거주하는 코트니 소렌슨도 브루넬에게 희생당한 10대 소녀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88년 봄, 브루넬에 의해 반복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했던 그는 심지어 브루넬의 지인들에게도 여러 차례 불려 나갔다. 그 남자들 가운데는 브루넬이 ‘제피’라고 부르던 자도 있었다. 바로 당시 최고의 영화 제작자로 불렸던 제프리 엡스타인이었다.
처음 브루넬의 저택에서 생활하던 때를 회상한 소렌슨은 “모든 게 환상적이었다. 조지 마이클 콘서트에도 갔고, 콘서트가 끝난 후에는 마이클과 브루넬과 함께 저녁식사도 했다. 일어날 수 있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일들이 모두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그런 꿈 같은 날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루넬은 소렌슨을 성추행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움켜쥐거나 치마 아래로 손을 집어 넣기 시작했고, 그런 추행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브루넬은 영화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면서 소렌슨을 엡스타인에게 보냈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만남은 샹젤리제 근처의 엡스타인 아파트에서 이뤄졌다. 엡스타인은 캐스팅을 위해 ‘장면’을 하나 연기해보고 싶다면서 “그러니까 내가 뒤에서 너를 안고 키스를 하기 시작한 다음 둘이서 바닥에 누워 뒹구는 장면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 엡스타인은 곧 소렌슨의 가슴과 치마에 손을 얹었다. 소렌슨이 그를 밀치면서 거부했지만 엡스타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껴안고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소렌슨은 결국 밖으로 뛰쳐나갔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소렌슨은 “수치심과 분노로 몸이 떨렸다”면서 분개했다.
오랫동안 그날의 경험을 묻어 두었던 소렌슨은 ‘포쿠스’를 통해 “그는 뒤에서 나를 팔로 감싸안고는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는 식으로 애무했다. 때문에 지금도 나는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만지는 걸 참을 수가 없다”면서 그 후로 정신과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억만장자 금융업계 거물이었던 엡스타인과 브루넬은 사교계에서 막역한 사이를 자랑한 공생 관계였다. 브루넬은 엡스타인에게 무려 1000명이 넘는 어린 모델들을 희생양으로 제공했고, 엡스타인은 이렇게 제공 받은 모델들을 사교계 거물들을 상대로 한 성매매에 이용했다. 엡스타인의 고객들 가운데는 내로라하는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많았으며, 이 가운데는 영국 찰스 왕세자의 동생인 앤드류 왕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브루넬은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만 엡스타인의 전용 제트기인 ‘롤리타 익스프레스’로 적어도 24번의 여행을 했으며, 2005년에는 엡스타인의 도움으로 뉴욕과 마이애미에 진출해 ‘카린 모델’ 미국 지부를 열었다. 당시 브루넬은 13세 정도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들과 함께 맨해튼에 있는 엡스타인의 아파트에 임시 거주했다. 엡스타인은 브루넬에게 임대료를 청구하지 않았지만, 브루넬은 그럼에도 소녀들에게 매달 1000달러(약 130만 원)의 임대료를 받아 뒷돈을 챙기기도 했다.
훗날 엡스타인을 미성년 성매매 혐의로 기소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는 2014년, 법원 문서를 통해 “그의 사업은 성매매를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2006년, 엡스타인은 플로리다에서 성매매 혐의로 체포돼 유죄를 선고받고 13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이 당시 브루넬은 67회 넘게 면회를 가면서 돈독함을 과시했다. 2019년 7월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다시 체포됐고 그 해 8월 10일 수감 중 사망했다. 극단적 선택으로 밝혀졌으나 일각에선 타살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브루넬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2010년 결국 인신매매 및 미성년 소녀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그는 유죄가 인정돼 교도소에 수감됐다. 내내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포함해 모든 혐의를 부인한 그는 결국 2022년 2월, 74세의 나이로 교도소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에서는 브루넬이 러시아 마피아와 관련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사람도 있었다. 캐롤의 미국 에이전트였던 한 인물은 ‘카린 모델’의 한 관계자로부터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 관계자는 브루넬이 러시아 마피아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면서 “만약 모든 걸 다 발설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줄 알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익명의 그 미국 에이전트는 “나는 아직도 브루넬 주변인들이 무섭다”며 떨고 있는 상태다.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는 브루넬이 사망한 후에도 관련된 용의자와 공모자를 계속해서 추적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태다. 웹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네 아이의 엄마 소렌슨 역시 “나와 똑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는 소름이 돋았다”면서 앞으로 함께 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