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 안옥윤이 안경 맞춘 미츠코시 자리…인근 부지 매입 영토 확장, 신관 건설 과정 특혜 시비도
랜드마크, 국가나 도시 혹은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시설이나 건축물을 뜻한다. 전쟁 등을 거치며 관공서를 제외하고는 랜드마크라고 불릴 만한 건물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각 지역마다 랜드마크 반열에 올라서는 건물이 하나둘씩 생겼다. 이들 건물은 대부분 당시 비약적으로 사세를 키우던 기업들과 연관이 깊다. 이 때문에 해당 랜드마크의 역사는 기업 또는 산업의 역사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새롭게 랜드마크로 꼽히는 건물은 시장과 산업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이정표로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은 일요신문이 각 지역 랜드마크와 기업이 얽힌 이야기를 연재한다.[일요신문] 서울시 중구 명동·소공동 일대는 국내의 대표적인 쇼핑 거리로 꼽힌다. 서울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전까지 쇼핑을 목적으로 방한한 외국인의 70% 이상이 명동을 방문했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까지 일명 ‘명동거리’에는 화장품, 패션을 중심으로 하는 상권이 형성돼 있고, 바로 옆 소공로에는 롯데백화점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자리잡고 있다. 이 명동거리의 터줏대감은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다. 이 건물 자리는 국내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인 ‘미츠코시 경성점’이 있었던 곳으로 이후 여러 부침 속에서도 '유통 1번지'라는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 유통업체 미츠코시는 1920년대 일본 곳곳에 백화점 점포를 출점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미츠코시의 ‘다점포 전략’은 식민지 조선에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미츠코시는 1927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 백화점을 착공했고, 1930년 10월 24일 미츠코시 경성점이 정식으로 개장했다. 인근 소상공인들은 ‘소매상연맹’을 조직하면서까지 백화점 개장을 반대했지만 당시 시대 분위기상 일본 자본의 투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땅한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미츠코시 경성점은 최고의 관광명소로 꼽혔다. 쇼핑 시설뿐 아니라 고급 식당과 커피숍, 옥상 정원까지 마련돼 문화 시설로서도 인기가 높았다. 이 때문에 당시 문학 작품의 소재와 배경으로도 쓰이기도 했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는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츠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나오는 백화점도 미츠코시 경성점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전지현 분)이 안경을 맞추러 간 곳도 미츠코시 경성점이었다.
1945년 해방 후 미츠코시 경성점은 정부 관리 기업으로 지정돼 ‘동화백화점’이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로는 미군 PX(군부대 내 매점)로 활용되면서 백화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휴전 후 관재청이 건물을 양도받으며 백화점 영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1958년에는 강희원 씨에게 동화백화점을 불하함으로써 민간에 영업권을 넘겼다. 강희원 씨는 1949년 동화백화점 사장을 맡았던 강일매 씨의 동생이었다.
동화백화점 불하 과정에서 강희원 씨의 불법 행위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검찰은 1960년 입찰방해 등의 혐의로 강 씨를 구속했다. 강 씨가 경쟁 입찰자를 감금한 후 단독 입찰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동화백화점은 20억 환으로 평가받았지만 강 씨는 불과 6억 7000만 환에 인수했다. 뿐만 아니라 강 씨는 곽영주 전 경무관과 박찬일 전 비서관 등을 통해 관재청에 압력을 넣은 혐의도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1963년 강 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위기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1961년 정부는 재건국민운동의 일환으로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을 제정했다. 국내 산업을 저해하거나 사치성이 있는 특정 외래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백화점의 주요 상품이 외국산 사치품이었던 만큼 동화백화점에 큰 타격을 입히는 법안이었다.
강 씨는 1962년 경영난에 시달리던 동화백화점을 동방생명에 매각했다. 하지만 동방생명도 강의수 동방생명 사장이 1963년 1월 별세한 후 재무구조가 급속히 악화됐고, 결국 삼성그룹이 1963년 7월 동방생명과 동화백화점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보험업 진출을 모색하던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삼성그룹은 동방생명을 삼성생명으로, 동화백화점을 신세계백화점으로 사명을 각각 변경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삼성그룹의 지원 아래 한 발 앞선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업계 최초로 바겐세일 제도를 도입했고, 1969년에는 국내 최초의 신용카드 ‘신세계백화점카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다만 신세계백화점카드는 오늘날의 신용카드와 달리 삼성그룹 임직원에 한해서만 발급됐고, 사용도 신세계백화점 내에서만 가능했다. 신세계백화점은 1984년 2호점인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에 13개 점포를 두고 있다.
삼성그룹 아래서 승승장구하던 신세계백화점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기업의 업종을 전문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삼성그룹은 1991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주도의 신세계백화점 독립경영을 선언했고, 1997년 신세계그룹은 최종 계열분리됐다. 신세계그룹은 계열분리 후에도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본사를 두면서 그룹 본부로 활용했다. 백화점 부문 본사는 2017년 서초구 반포동으로 이전했지만 (주)신세계의 본사는 현재도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다.
신세계백화점은 본점을 중심으로 인근 상권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신세계백화점은 1985년 본점 뒤쪽에 위치한 중앙전화국 사옥을 매입해 별관 겸 주차장으로 활용했고, 1989년부터는 인근 지역의 부지도 매입하기 시작했다. 신세계백화점은 2002년 해당 부지를 전면 재개발하는 공사에 착수했다. 당시 신축된 건물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으로, 기존 건물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으로 각각 분류된다. 신세계그룹은 2015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옆에 위치한 SC제일은행 제일지점(옛 조선저축은행 본점) 건물도 매입해 현재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재개발 당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의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신세계그룹도 이 같은 여론을 받아들여 본관 건물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재개발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울시의 특혜를 받았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본관 건물을 보존하는 대가로 고층 건물을 허가해줬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2000년 7월부터 남대문 인근 지역 건물의 최대 높이를 70m, 15층으로 규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바로 직전인 2000년 6월, 서울시는 신세계백화점에 높이 90m, 20층까지의 재개발을 승인해줬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은 6층, 신관은 19층 규모다. 본관 1~4층에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업체가 주로 입주해 있고, 5~6층에는 식당가와 휴게시설이 조성돼 있다. 신관 1~7층에는 프라다, 구찌 등 명품 업체를 비롯해 화장품, 스포츠 용품 등 다양한 업체가 있다. 신관 8~12층은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이 입주해 있으며 13층은 서비스센터, 14층은 신세계아카데미로 활용된다. 나머지 층은 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