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위탁생산 대박 반면 소주 브랜드 노후화, 새 제품 출시 앞두고 판촉비 축소 우려에 롯데 측 “공격적 영업활동 할 것”
하지만 국내 대표 주류기업이 OEM 기업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롯데주류는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 CU가 협업해 만든 ‘곰표 밀맥주’, 제주맥주의 ‘제주위트에일’ 등을 위탁생산하면서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 곰표 밀맥주의 생산량은 매달 20만 개 수준이었지만 롯데주류가 생산을 맡으면서 월 300만 개를 유통할 수 있게 됐다. 곰표 밀맥주가 판매량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배경에 롯데주류가 있는 셈이다.
성과는 분명하지만 대표 주류기업으로서 롯데주류의 자존심이 상한 것도 사실이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주류 공장 가동률이 터무니없이 낮아 고육지책으로 선택했던 것이 대박으로 이어진 것일 뿐”이라며 “위탁생산이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라서 (파트너가 다른 주류회사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롯데주류 입장에서는 자사 제품을 흥행시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주 브랜드의 노후화 극복이 과제
이 때문인지 롯데주류는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 들어 ‘클라우드 칠성사이다 맥주’ ‘순하리 레몬진’ ‘처음처럼 꿀주’ ‘별빛 청하 스파클링’ ‘클라우드 칼로리 라이트’ 등을 연이어 출시했다.
롯데주류 입장에서는 소주 시장이 특히 중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주류 처음처럼의 시장점유율은 2019년만 해도 25% 정도였지만 최근 10%대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쟁사 하이트진로가 2019년 맥주 테라, 소주 진로를 출시하면서 펼친 ‘테슬라(테라 + 참이슬)’ ‘테진아(테라 + 진로이즈백)’ 마케팅이 먹혀들었고, 때마침 일본 불매운동이 거세지면서 롯데주류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처음처럼 브랜드의 노후화도 롯데주류 입장에서 우려되는 부분이다. 처음처럼은 2006년 출시 당시 평범한 직장인이나 대학생이 선호하는 술의 이미지였다. 출시와 동시에 수도권 점유율이 20%까지 오른 것은 당시 화이트칼라 사이에서 불었던 처음처럼 선호 현상 덕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브랜드가 노후화돼 최근엔 MZ세대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추세로 알려졌다.
롯데주류는 젊은층이 선호할 만한 새로운 소주 개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약 1년의 제품 개발 과정을 거쳐 ‘새로’라는 이름의 희석식 소주를 8월 말 출시할 계획이다. MZ세대를 잡으려면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진로이즈백처럼 초록색 소주병이 아닌 이형병(모양이 다른 병)을 도입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주류는 증권업계 기업설명회에서 하반기 소주 출시로 인한 마케팅 비용 상승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주류 사업은 상반기 상당한 수준의 흑자를 냈지만 하반기에는 소주 출시로 인해 마케팅 비용이 급증할 것이라는 언질을 받았다”며 “이 때문에 4분기 주류사업 영업이익 전망치를 2분기의 절반 밑으로까지 낮춰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롯데칠성은 올해 2008억~2095억 원의 영업이익 달성을 예상치로 제시하고 있는데 하반기 소주 신제품 판촉비 증가분과 원재료 단가 상승을 감안하면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라며 “롯데칠성이 견조한 성장 동력을 이어가려면 MZ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소주 시장점유율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9월 소주 신제품 성과가 롯데칠성 주가 흐름의 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촉비 축소 우려는 기우일까
롯데칠성음료는 그동안 음료BG와 주류BG를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해왔다. 그러다가 2019년 말 주류BG를 맡던 김태환 전 롯데칠성 대표가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후 음료BG를 이끌던 이영구 전 롯데칠성 대표(현 롯데제과 대표)가 주류BG까지 관할했다. 이영구 대표가 2021년 3월 롯데칠성을 떠난 후에도 박윤기 롯데칠성 대표가 두 사업 모두 이끌고 있다.
박윤기 대표는 1994년 롯데칠성음료 판촉부로 입사해 음료 마케팅부문장, 경영전략부문장을 맡은 ‘음료통’이다. 박 대표가 음료통이다 보니 주류 대기업으로서 자존심이 크게 상할 수 있는 OEM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으로는 소주 출시와 관련해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주류업계 다른 관계자는 “주류는 음료에 비해 영업사원들의 영업력이 중요한데 롯데가 이에 대해 오판해 고전한 적이 많았다”며 “물론 롯데는 소주 2위 업체라 맥주 때만큼 고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음료 전문가가 의사 결정을 한다는 점 때문에 우려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롯데주류 내부에서는 박윤기 대표가 지난해 진두지휘한 ZBB(Zero-based budgeting) 전략의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ZBB는 예산을 계획할 때 전년도 금액을 참고하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실적과 우선순위를 따져 기획하는 개념이다. 음료BG가 2018년 ZBB 전략을 먼저 시작했고, 2020년에는 주류BG를 대상으로도 시작했다. ZBB 전략의 시작은 이영구 대표였지만 박윤기 대표 체제에서 결실을 본 셈이다.
주목할 부분은 ZBB 전략 실행 과정에서 주류 판촉비에 주로 손을 댔다는 점이다. 주류 업체들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식당이나 술집 점주들에게 자사 주류 매입 시 인센티브를 주거나 제품을 지원하는 식의 혜택을 지급하곤 한다. 점주는 혜택을 더 많이 지급하는 소주나 맥주를 고객에게 권할 때가 많다. 롯데주류가 최근 집중하는 주류는 수제맥주나 클라우드 생 드래프트 등 가정용 소비가 많은 맥주다. 이 때문에 판촉비 절감이 소주 영업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우려를 롯데주류 측은 일축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규제 때문에 판촉비 절감이 큰 영향은 없었다”면서도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고, 신제품 출시까지 감안해서 지난해와 다르게 공격적인 영업 활동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