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초’ 개그 캐릭터 아닌 ‘유니콘 멘토’로 첫 연기 변신…“박은빈에 감탄 또 감탄, 갈피 못 잡을 때 딱 잡아주기도”
“저 스스로 ‘정명석은 무조건 내가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감독님을 만났어요.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아직 출연 결정이 된 것도 아닌데 막무가내로 가족들에게 맛있는 걸 쐈죠(웃음). 그냥 꽃게를 시켜서 막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게 먹고 보니 금액이 꽤 되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과 최종 미팅 때 제가 그랬어요. ‘저 캐스팅 됐다고 말하고 가족들한테 (비싼) 꽃게 샀는데 어떡하실 거예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꽃게까지 사셨으니 출연하셔야죠’ 그러시더라고요(웃음).”
8월 18일 최종 시청률 19.2%(수도권 기준)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신드롬’의 대미를 장식했던 ENA 수목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여기서 강기영이 맡은 법무법인 한바다의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은 자상하면서도 공정하고,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져 후배와 의뢰인 모두에게 의지가 되는 든든한 기둥 같은 캐릭터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비현실적일 만큼 이상적인 상사였기에 ‘유니콘 상사’라는 애칭까지 얻은 정명석 역할에 강기영 역시 대본을 보자마자 욕심이 났지만 막상 촬영을 앞두고는 걱정이 무겁게 덮쳐왔다고 한다. “강기영이, 이런 캐릭터를 맡아도 될까”라는 불안이었다.
“사실 저라는 배우를 정명석이란 캐릭터에 앉히는 건 실험적이죠. 그래서 더 감사하단 말씀을 드렸어요. 시청률 이런 건 (방송사의) 수입하고도 관계가 있잖아요(웃음). 그래서 제게 이런 중요한 배역을 주셨으니 더 잘 해내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작품이 이슈까지 되면서,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을 느꼈어요. 한편으론 제가 이 역을 하기까지 공백이 좀 있었는데 명석이 같은 캐릭터를 하고 싶어서 기다린 것도 있었거든요. 그 기간이 체감상 꽤 길었는데 이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보상을 받은 것 같기도 해요.”
우려와 불안은 강기영으로 하여금 더 완벽한 ‘정명석’을 만들어내게끔 채찍질했다. 후배들의 앞에서는 완벽한 멘토이면서도 가끔 보여주는 헐렁한 면모로 정명석의 인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자칫 딱딱하게만 흘러갈 수 있는 법조 드라마, 그것도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변호사가 나온다는 ‘문제 드라마’로 보일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 데엔 강기영의 숨은 노력이 배어 있었다. 매회 그가 보여준 애드리브는 그 방영 주의 화제가 됐고, 몇몇 애드리브는 동료 배우들까지 웃게 만들며 촬영장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했다는 뒷이야기도 나왔다.
“처음 애드리브였던 ‘한마디를 안 져’ 이 대사는 의도한 게 아니었는데 그 신을 너무 사랑해주시더라고요, 얼떨떨할 만큼(웃음). 멋있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우영우와 정명석의 관계가 있어서 멋있게 그려졌던 것 같아요. 또 ‘새들도, 아가 양도, 명석이도’ 그건 원래 대사에선 ‘새들도, 아가 양도’에서 끝이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끝내기엔 제가 개그 욕심이 있어서(웃음). 그래서 애드리브를 한 건데 너무 좋아해주셔서 저도 좋았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데엔 배우들의 케미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른바 ‘한바다즈(s)’로 불리는 법무법인 한바다 소속의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을 필두로 주니어 변호사들인 우영우(박은빈 분), 최수연(하윤경 분), 권민우(주종혁 분)는 물론이고 여기에 송무팀 직원이자 우영우와 달달한 러브라인을 꾸려 나간 이준호(강태오 분), 우영우의 베스트 프렌드 동그라미(주현영 분) 등이다. 나이와 경력을 잊은 배우들의 끈끈한 우정은 작품의 종영 뒤에도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강기영은 “친구들이 저를 사이에 안 껴줬으면 제가 좀 애매한 포지션이었을 건데, 다행히 껴줬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친구들이 정말 보통이 아니에요.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하거든요. 하윤경 배우는 제가 ‘하윤기영’이라고 불러요. ‘여자 강기영’ 같다고(웃음), 제가 막 던져도 다 받아주거든요. 또 (주)종혁이도 방영 동안 욕을 참 많이 먹었는데, 그게 연기를 참 잘했다는 방증이잖아요? 제가 장난삼아 그랬어요. ‘너한테 이렇게 훌륭한 드라마가 너무 빨리 갔다, 더 고생했어야 됐는데’(웃음). 이렇게 질투 아닌 질투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소속사(나무엑터스) 동료이자 까마득한 선배인 박은빈에게는 촬영 때마다 감탄, 또 감탄이 터져 나왔다고 했다. 현장에선 오히려 박은빈이 ‘정명석 변호사’의 롤이 돼 분위기를 리드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배울 점이 진짜 많은 배우”라며 인터뷰 자리에서도 여전히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강기영은 박은빈에게 ‘한 방’을 먹은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제가 초반에 정명석이란 캐릭터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가 있었어요. 저도 이런 역할을 거의 처음 해 보는 거잖아요. 그러니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과정이 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는데 은빈이가 저보고 ‘그냥 지금부터 잘해요! 무슨 과정이에요’ 그러는 거예요(웃음). 그 말을 듣고 세게 한 대 맞는 기분이었어요. 제가 합리화해서 피해가려는 걸 딱 잡아주는 것 같았거든요.”
막연한 열정에서 시작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정명석이란 캐릭터의 서사는 강기영에게도 오래도록 깊고 무거운 울림을 줄 것 같다. 강기영이란 이름 석 자에서 대중들이 떠올릴 그간의 이미지를 한 번에 벗어버림과 동시에 앞으로 그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 만한 기념비이자 이정표 같은 캐릭터였다. 여전히 정명석에 애정을 보이며 ‘시즌 2’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낸 강기영은 정명석을 “저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열어준 캐릭터”라고 정의했다.
“사실 저는 대중이 강기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냥 재미있는 역할 하는 친구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호기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정명석이란 모습으로 제가 다른 것도 연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 같아서 이 작품에 더 감사하죠. 앞으론 또 안 해본 역을 하고 싶어요. 빌런도 좋죠. 제가 요즘 손석구 님에게 너무 빠져 있거든요(웃음). 그렇게 우수에 가득 찬 사연 많은 역할도 한 번 해보고 싶네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