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비자금 내사 소식에 기업들 화들짝…‘첩보에서 시작, 회장 노린다’ 전통적 수사 패턴 돌아올 듯
하지만 최근 검찰 안팎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들 사이에서 ‘기업 비자금’을 수사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검찰은 최근 중견기업 오너 A 회장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내사가 진행 중인데 A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후문이다. 해당 업체는 다른 사안으로 검찰 수사를 여러 차례 받은 바 있지만 A 회장은 직접적인 수사 대상에서 비켜 있었다.
실제 문재인 정부 때 서울중앙지검은 △사법부 행정남용권 수사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이명박 정부 다스(DAS) 관련 의혹 등 정치 관련 수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제 기업 오너를 노리고 첩보에서 시작되는 과거 검찰의 ‘기업 수사’가 다시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 검사는 “첩보에서 시작되는 기업 수사, 오너 회장의 비자금을 노린 인지 수사는 앞선 문재인 정부 때에는 없었던 것 같다”며 “과거 검찰처럼, 기업의 자금 흐름을 수사해 부적절한 곳으로 사용된 게 있는지 사용처를 확인하는 수사가 다시 시작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첩보 활용 수사 부활하나
서울중앙지검의 반부패수사부 가운데 한 곳이 두 달 전부터 A 회장의 수상한 자금 흐름에 대해 내사 중이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 역시 “정확한 수사부서는 알려줄 수 없지만 해당 기업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은 맞다”고 확인해 줬다.
최근 A 회장은 스스로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았다. 오너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경영일선 후퇴를 결정한 것인데 이를 놓고 ‘검찰 수사 대비 차원’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A 회장을 잘 아는 법조인은 “한두 달 전부터 서초동(검찰)에서 내사를 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자금 관련된 흐름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며 “관련해서 검찰 수사가 아직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압수수색 등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공정위에서 다시 검찰로?
법조계가 이번 검찰의 내사를 주목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기업수사 패턴’이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은 ‘인지 수사 최소화’를 위해 기업 수사를 제한적으로만 실시했다. 자연스레 검찰의 기업 수사는 공정위의 고발에 한해 이뤄지는 게 일반화됐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가 공정위에 하는 의무고발요청을 적극 활용하면서 많은 대기업들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했다. 최근 압수수색을 받은 네이버와 삼성그룹(웰스토리 일감 몰아주기)를 필두로, 한샘과 맥도날드, 미래에셋 등이 검찰에 고발되거나 수사를 받아야 했다. 더불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검찰의 기업 직접 수사가 멈춰서면서 공정위가 재계 저승사자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공정위 제재 처분에 검찰 고발까지 이뤄지면 대응이 오래 걸리고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기업 총수를 직접 겨눈 수사는 제한적이었기에 안도하는 지점도 있었다.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공정위나 중기부에서 이뤄진 검찰 고발이나 제재는 대응이 어렵지만 통상적으로 벌금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 또 기업 오너가 아니라 실무자를 상대로 한 기소 가능성이 대부분이라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며 “아무래도 기업 입장에서는 오너 일가를 직접 겨눈 검찰 수사가 제일 부담스럽다”고 설명했다.
#커지는 검찰 존재감
하지만 이를 다시 검찰이 넘겨받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공정위는 기업 규제 및 제재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내비치고 있는 상황에서, ‘첩보 확보’로 시작해 ‘기업 오너 일가 수사’를 거쳐 ‘비자금 확인(횡령 등)’과 ‘용처 확인’으로 이어지는 과거 대검 중앙수사부 시절 검찰 수사 패턴이 다시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대검 중수부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비자금 사건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비자금 조성 사건 △농협중앙회 비자금 조성 사건 △한보그룹 사건 등 기업 비자금을 수사하는 사건을 통해 불법 승계나 정치 로비 의혹 등을 수사한 바 있다.
대검 중수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과거 대검 중수부 시절 기업을 수사하는 목적은 기업의 비자금 확인이 끝이 아니라, 해당 비자금을 활용해 불법 승계 활용이나 정치 등 대관 로비, 도박이나 유흥 등 부적절하게 사용한 지점까지 찾아내는 것이었다”며 “처음 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첩보를 활용해 최종 사용처까지 대충 알고 시작하는 게 일반적인데, 만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라인에서 기업 수사를 한다면 단순 비자금 조성이 아니라 사용처까지 알고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대검 중수부에서 근무하며 굵직한 기업 비자금 사건을 전담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 라인’이 등장한 만큼, 기업 자금 흐름을 수사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늘어나고 있다. 특수통들이 요직에 앉은 만큼, 검찰의 칼을 활용해 오너 일가의 횡령 등 기업 비리에 대해 엄단하는 케이스가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 수사를 받은 적이 있는 한 기업 대표는 “정말 꼼꼼하게 회계 장부와 카드 사용 내역, 동선을 확인해 질문하더라”며 “특수부는 기소하기 위해 수사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원석 고검장이 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는 얘기를 듣고 기업 수사가 늘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부패부가 나서면 기소를 할 수 있는 내용을 알고 시작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앞선 정부 관련 수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조만간 기업들에 대한 수사를 할 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하고 그러다 보니 기업들도 한동훈-이원석 라인과 가깝다는 전관 변호사들과 자문 계약을 하는 게 늘고 있다”며 “검찰의 기업 1호 수사는 정부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검찰도 신중하게 수사 대상을 낙점할 것”이라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