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판매상이 개원의와 물리치료사 연결, 기업형 치료센터 등장…돌고 돌아 결국 환자 부담
도수치료비가 이렇게 오른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물리치료사의 설명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맞물려 있다. 먼저 2000년대 초반 10만 원 안팎이었던 실손보험의 일일통원치료비가 2009~2010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20만~30만 원으로 오르면서 실손보험 보장이 되는 도수치료비도 덩달아 올랐다. 그러면서 의사와 물리치료사가 전문적으로 도수치료센터를 만든 병원은 도수치료로 병원 매출을 올리게 됐다.
정형외과 의사 A 씨는 개원을 하기 위해 의료기기 구입을 알아보던 중, 의료기기 판매상에게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잘나가는 물리치료사 B 씨와 함께 병원을 꾸리면 월 매출 1억 원 이상 보장될 것이란 제안이었다. 전문적으로 도수치료센터를 만들어 의사와 물리치료사가 수익 셰어를 하는 방식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의사와 도수치료센터장이 연결되는 사례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의료기기 판매상에 의해 이루어진다”며 “의료장비라는 것이 개원할 때 주로 필요하고 개원한 뒤에는 몇 년 동안 구입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의료장비 판매상의 매출은 시즌을 타고 들쭉날쭉하다. 개원의와 센터장을 연결해서 도수치료센터를 만드는 일을 일명 ‘컨설팅’이라고 하는데, 컨설팅을 통해 의료기기 판매를 늘리고 커미션을 챙기는 것이 의료기기 판매상의 또 다른 수익원”이라고 귀띔했다. 의사와 물리치료사는 의료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매칭되기도 한다.
도수치료센터는 병원과 걸어서 5분 이내에만 위치하면 되기 때문에 하나의 병원이 여러 개의 도수치료센터를 운영할 수도 있다. 병원 내에 위치할 수도 있지만 별도의 층이나 건물에 만들 수도 있다. 처음엔 물리치료사 3~4명으로 시작했던 도수치료센터가 매출이 오르고 ‘단골 환자’가 안정적으로 확보되면 물리치료사 수를 늘려 센터를 크게 확장하기도 한다. 도수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물리치료사만 10여 명인 곳도 있다.
기업형 도수치료센터가 만들어지면 도수치료센터에 별도의 센터장을 두고 센터장이 여러 명의 물리치료사를 관리하면서 도수치료 매출까지 관리한다. 의사와 센터장은 5 대 5, 6 대 4, 7 대 3 등으로 수익 셰어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도수치료센터는 거의 센터장이 운영하면서 병원 매출을 올려주게 된다. 매출 목표에 도달한 물리치료사는 인센티브를 높여주기도 하고 치료 환자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물리치료사는 정리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도수치료센터장인 김 아무개 씨는 “도수치료센터에서 나오는 매출의 50% 이상을 일단 병원에 주고 나머지로 물리치료사 인건비와 센터장 인건비 등을 충당한다”며 “그러다 보니 센터장은 치료사들과 본인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 매출을 최대한 끌어올리려 애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도수치료를 하는 병원 매출 대부분이 도수치료센터에서 나오다 보니 의사는 진료 후 실손보험이 있는 환자 위주로 도수치료나 체외충격파를 적극 처방한다. 환자에게 실손보험이 있는지 여부를 접수 시 신상명세표에 기록하게 하기도 하고 일단 의사가 도수치료를 처방한 뒤 상담실장이나 도수치료센터 직원을 통해 보험과 관련한 상담이 이어지기도 한다. 재활치료라는 명목 아래 10회, 20회 등을 한꺼번에 끊기도 하는데, 환자의 실손보험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진료명세서는 매회 따로 제공한다.
단골환자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물리치료사는 병원에도 더 큰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몸값이 높을 수밖에 없다. 물리치료사는 환자와 친밀감을 유지해 지속적으로 예약을 받기 위해 환자 관리를 한다(관련기사 치료보다 ‘고객 관리’가 먼저? 도수치료 ‘환자 모시기’ 경쟁 문제 없나). 물리치료사가 기본급 외에 받는 인센티브는 치료비의 10~20%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도수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물리치료사는 그렇지 않은 물리치료사에 비해 수입이 월등히 많아진다.
경험 많은 한 물리치료사는 “물리치료사가 의사 없이 단독으로 개업할 수 있게 되면 도수치료비는 현저히 낮아질 것이라 본다”면서 “현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물리치료사가 단독으로 개업할 수 없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뿐이다. 그나마 일본은 물리치료사의 개업은 불가해도 환자에게 처방을 내릴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처방과 개업 둘 다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사처럼 처방은 의사가 하고 그 처방에 따른 약을 약사가 제조하듯, 물리치료 업계도 진단과 처방은 의사가 하고 치료는 물리치료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면 물리치료사가 의사와 수익을 나누지 않아도 돼 도수치료비도 대폭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관련기사 진료비 허위 청구 일상다반사? 환자는 모르는 도수치료의 비밀).
또 다른 물리치료사는 “의료기사 가운데 안경사나 치기공사는 다른 의료기사들과 달리 의료기사법 내에 예외조항이 있어 개업을 할 수 있다”며 “물리치료사도 최소 석사 이상 또는 임상경험 몇 년차 이상의 단서를 두고 의료사고 등 환자들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개업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도수치료비를 적정금액으로 내리기 위해선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으로 편입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의료수가가 ‘병원 마음대로’가 아닌 적정수가로 조정될 수 있다. 하지만 치료 환자가 많을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부담이 커지게 되고 도수치료에 대한 처방 자체가 깐깐해질 수 있다. 또 의료수가가 낮아지면 의사와 물리치료사의 수입도 당장 줄어들게 되므로 도수치료의 급여화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인 모두 원치 않는 상황이다.
주로 보험사가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인데, 그러다 보니 실손보험사는 2021년 4세대 실손보험을 만들어 보험료를 낮추는 대신 보험 혜택을 줄이고 치료 시 계약자 부담금을 높였다. 결국 돌고 돌아 피해는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마련이다. 도수치료비 적정수가 산정이 필요한 이유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