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조명·음악 기본, ‘문진’ 위해 사적 대화하지만 정작 치료 뒷전인 경우도…‘고급 마사지 숍 됐다’ 자조도
한 재활의학과의 광고 문구다. 이 재활의학과는 도수치료를 중심으로 광고와 영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도수치료를 전면에 내세워 영업을 하는 병원이 적지 않다. 재활의학과와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등 도수치료가 가능한 병원에서는 도수치료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친다.
강남의 일부 병원에서는 세련된 인테리어에 은은한 조명과 부드러운 음악이 깔린 독립된 공간에서 도수치료를 행하기도 하는데 마치 고급 마사지 숍에 온 느낌마저 든다. 의사는 1명이지만 도수치료사는 6~7명이나 되는 경우도 많다.
수많은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 통증의학과 등이 병원의 큰 수입원이 되는 도수치료 ‘환자 모시기’ 경쟁을 하다 보니, 도수치료를 행하는 물리치료사의 치료 능력은 물론 병원의 시설도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됐다. 또 도수치료를 하는 병원이 흔하다 보니 한번 방문한 환자를 ‘단골’로 만드는 것도 물리치료사의 중요한 역량이자 실력이 됐다. 보통 도수치료를 처음 시작한 물리치료사가 계속 치료를 이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경력 15년 차의 한 물리치료사는 “물리치료는 무엇보다 임상이 중요하다. 물리치료사의 치료 경험이 많을수록 치료에 효과를 볼 가능성도 높지만 최근에는 전문적으로 치료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한 번 온 환자가 떠나지 않도록 하는데 더 치료의 기준이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며 “교정 치료보다는 환자의 기분을 더 좋게 만들어 재방문율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한 임무가 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치료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물리치료사는 고객 확보를 위해 ‘환자 관리’를 하게 되는데 환자가 치료에 만족하면 물리치료사가 병원을 옮겨도 환자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아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 등 도수치료를 하는 병원들은 의사의 실력보다 물리치료사의 실력이 병원의 수입을 좌우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물리치료사가 환자 관리를 하다 보니 물리치료실에서는 증상과 치료에 관한 대화 외에도 치료사와 환자 간 친밀한 사적인 대화도 오간다.
한 물리치료사는 “도수치료 자체가 환자의 일상생활 자세 습관이나 직업으로 인한 체형 변형, 환자의 세밀한 통증 등을 대화를 통해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식이라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선 환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좌식이나 입식 생활을 하는지, 수면 습관은 어떤지, 휴대폰이나 컴퓨터 사용량은 어떤지 등을 묻는 일상적인 대화가 치료 중 문진 형태로 오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일부에서는 ‘단골’ 환자와의 사적인 대화가 치료사와 환자 이상으로 친밀한 경우도 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치료를 위해 통상적으로 어느 정도의 사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보니 도수치료실은 보통 환자 1명만 들어갈 수 있도록 독립된 공간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환자의 심신을 이완시키기 위해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 경우도 흔하다. 치료를 위해 환자의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만들고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증상을 살피는 것은 치료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도수치료를 하는 1시간가량 치료사와 환자가 일대일로 신체 접촉을 통해 치료를 이어가다 보니 해부학 지식을 이용한 전문적 치료보다는 단순히 아픈 부위를 시원하게 눌러주는 마사지 정도로 치료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의료업계에서는 도수치료가 ‘고급 마사지’로 변질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도 들린다. 일주일에 한두 번 주기적으로 도수치료를 받고 있다는 한 환자는 “1년 동안 실비 보험이 가능한 횟수와 한도금액 내에서 종종 도수치료를 받는다. 몸이 찌뿌드드하면 5만~10만 원이 드는 마사지 숍을 가느니 도수치료를 받고 있다”며 “실비 청구로 1만~2만 원에 치료를 겸한 마사지를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도수치료는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항목이고 1시간 치료에 적게는 10만~12만 원에서 많게는 25만~30만 원이라는 큰 비용이 들지만, 실손의료보험이 보장해 주고 있어 보험에 가입한 환자라면 실비의 10~30%만 부담하고 비교적 쉽게 도수치료를 이용할 수 있다. 이는 병원 입장에서 큰 수입원이 된다(관련기사 ‘비급여’로 꿀 빠나…병원마다 제각각 도수치료비의 비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는 3978만 명에 이른다. 우리 국민의 80%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셈이다. 실손의료보험에 든 국민의 수가 적지 않아 도수치료를 비교적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다.
다른 물리치료사는 “도수치료는 인체의 근육 섬유질과 뼈 구조 등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근막과 근육 마사지, 교정 등을 통해 틀어진 근육과 관절 등을 교정해 통증을 완화하고 불균형한 자세와 체형을 교정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최근엔 도수치료가 성행하면서 실력 있는 치료사를 찾기 어렵고 그냥 통증 있는 곳을 대충 주무르는 물리치료사도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병원에서는 물리치료사의 실력을 일일이 가늠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환자 관리를 잘해 단골 환자가 많은 물리치료사를 더 선호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환자는 “도수치료 잘하는 병원을 찾을 때 치과나 성형외과처럼 환자들의 후기나 피드백 등을 통해 물리치료사의 실력을 미리 가늠할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요즘은 병원 전문 ‘바이럴 마케팅’이 성행해 인터넷 후기를 봐도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검색하다 보면 ‘도수 맛집’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등 VIP 환자를 타깃으로 치료비를 시중보다 턱 없이 높게 책정해 놓은 곳도 있다”고 전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