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 몸값 천차만별, 무명 프리랜서 선거철 ‘떴다방’ 식 운영…관련 제도 미비 ‘걸음마 수준’
“예스 위 캔(Yes, We Can·우린 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이 슬로건은 정치 컨설턴트 데이비드 액설로드의 작품이다. 액설로드는 오바마의 진정한 동지로 불렸던 선거의 귀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뒤에는 ‘네거티브 전술’로 유명한 로저 스톤이, 빌 클린턴 당선에는 최고의 전략가로 꼽히는 딕 모리스가 일조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정치 컨설턴트가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정치 컨설턴트의 본격적인 등장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수만 명의 후보자가 쏟아지면서 덩달아 정치 컨설팅 회사가 우후죽순 생겼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컨설팅 개념보다는 선거홍보물을 만들던 홍보기획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정치 컨설팅에 대한 법·제도적인 뒷받침이 따라오지 못하면서 십중팔구 사라졌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 박성민 대표가 이끌고 있는 민컨설팅이 대표적이다. 1991년 출범해 30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박성민 대표는 2017년 대선 때 안철수 캠프에서 ‘수석전략가’로 전략 및 메시지를 담당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가 ‘네임드’로 꼽힌다. 이 업체들은 빅데이터와 뉴미디어 등을 활용한 컨설팅에 강세를 보인다는 평이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꾸린 정치 컨설팅 회사도 있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이다. 노무현 정부 출신인 이근형 전 여론조사비서관과 박시영 전 행정관이 대표직을 맡았다. 이근형 전 비서관은 2019년 5월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임명됐고, 민주당 총선을 이끌기도 했다.
정치 컨설턴트의 목적은 ‘고객의 당선’이다. 고객은 대학 교수, 노조위원장, 법조인 등 다양하다. 고객을 코디네이팅하는 게 주된 업무로 판세를 읽고 전략을 짠다. 잘나가는 컨설턴트는 선거 캠프에서 핵심 전략가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일부다.
컨설턴트 수입은 프리랜서처럼 인지도나 경력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구체적인 금액은 베일에 가려 있다. 수입이 제각각인 데다 여론조사, 수주 여부 등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산정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유명 컨설턴트들은 수억 원대의 고액 연봉을 받는다는 후문이다. 반면 수입이 불안정한 프리랜서들은 ‘떴다방’ 형식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선거철인 성수기에만 활동하고, 선거가 없을 땐 다른 직을 찾는 방식이다. 한국의 정치 컨설턴트 전문성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치 컨설팅 영역이 모호해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여론조사와 정치 컨설팅을 겸임하는 이른바 ‘폴스터’(Pollster)가 대표적이다. 여론조사를 기초로 후보, 지역 등에 따른 분석과 컨설팅을 동반한다. 국내에서는 윈지코리아컨설팅이 대표적이다. 여론조사와 컨설팅을 같이 병행할 경우 편파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 김대진 대표는 “여론조사와 컨설팅은 나눠져야 하는 부분이다. 클라이언트가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 공표 시 (상대 후보 측에서) 공정성 시비가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
3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 컨설턴트 시장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평가다. 정치 컨설턴트들은 그 이유로 제도 미비를 꼽는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제도적인 이유가 크다. 미국 같은 경우 컨설턴트가 양성화되는 로비스트법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작업이 데이터, 선거대행 정도가 유일한 방법이다. 연중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 컨설팅 산업이 어렵다”고 전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