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직대냐, 최고위 재구성이냐’ 조기 전대 물건너가…이준석 복귀 가능성? 윤핵관 ‘사법 리스크’ 부채질
#판결문 뜯어보니…
주호영 비대위가 17일 만에 좌초되면서 국민의힘이 다시 지도부 공백 상태를 맞게 됐다. 이 전 대표는 8월 10일 서울 남부지법에 국민의힘과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했다. 최고위·상임전국위·전국위 의결 효력과 주 위원장의 직무집행을 정지해달라는 게 골자다.
8월 26일 재판부는 “비대위 의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며 주 위원장에게 직무집행 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주 위원장 직무는 본안 판결 확정 때까지 정지된다. 다만 국민의힘에 대한 가처분 신청은 적격 없음으로 각하됐다. 채권자(이준석)와 저촉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을 채무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법원 관계자는 “국민의힘을 상대로 한 가처분 신청은 당사자 적격이 없어 각하한 것이고 실제 판단은 주 위원장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했는데, 그것이 인용된 것”이라며 “사실상 이 전 대표가 전부 승소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이 전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 주요 쟁점은 국민의힘이 비대위를 출범할 만한 ‘비상상황’이었는지 여부다. 앞서 국민의힘은 당헌 96조 1항 ‘당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안정적인 당 운영과 비상상황 해소를 위해 비대위를 둘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당대표가 6개월간 사고로 당무에 참여할 수 없으며, 최고위 정원의 과반이 사퇴를 표명해 당이 비상상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국민의힘에 비대위를 설치할 정도의 비상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당대표 6개월간 사고’는 당대표 직무수행이 6개월간 정지되는 것에 불과하여 당대표 궐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으로서 당대표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 당을 대표하는 의사결정에 지장이 없으므로 당대표 궐위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더해 재판부는 최고위원 과반수의 사퇴 의사 표명만으로도 당이 비상상황에 처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8월 2일 최고위에 4명만 참석해 안건을 의결한 점, 향후 정원 9명의 과반수를 채우지 못하더라도 전국위원회에서 추가로 1명만 선출하면 되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즉 비상상황이 아닌데도 당대표 등 지도부 교체를 위해 “비상상황을 만들었다”고 본 것이다.
다른 쟁점은 상임전국위와 전국위원회를 통한 비대위 설치가 정당 민주주의를 훼손했는지 여부다. 국민의힘은 정당 내부 의사결정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상임 전국위 의결 및 전국위 의결은 정당 활동의 자율성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봤다. 재판부는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의결로 수십만 당원과 일반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전당대회에서 지명된 당대표와 최고위원의 지위와 권한을 상실시키는 것은 정당의 민주적 내부질서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비대위 전환의 절차상 하자는 인정되지 않았다. 상임 전국위 의결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없고, 이에 따라 열린 전국위도 무효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자동응답전화 ARS로 의결된 결의 방식 하자도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RS 전화투표의 경우 비록 안건에 대한 찬반토론이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가 있으나, 코로나 확산 등으로 인하여 집회를 비대면으로 할 필요성이 있다”며 “이를 위법하다거나 중대한 하자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비대위 전환으로 이 전 대표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국위 의결 중 비상대책위원장 결의 부분이 무효”라며 “주호영이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할 경우 당원권 정지기간이 만료되더라도 이준석이 당대표로 복귀할 수 없게 되어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이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상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싸움에서 완승을 거둔 것으로 풀이된다.
#비대위원장 직무대행 나서나
판결 직후 이준석 대리인 측은 “사법부가 정당민주주의를 위반한 헌법파괴 행위에 대해 내린 역사적인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국민의힘 지도부는 곧바로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했다. 국민의힘 측 소송대리인 황정근 변호사는 “비상상황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위법이라는 취지”라고 신청 사유를 설명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이의신청 심문기일은 9월 14일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의신청으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이의 신청은 같은 재판부의 같은 판사가 판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당내에서는 비대위를 유지한 채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으로 가는 체제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위원장의 직무만 정지됐을 뿐 비대위 체제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본안 판결에 의해 ‘비상상황’ 결정이 잘못됐다고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는 (비대위원 자격이) 유효하다”고 전했다.
당 법률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유상범 의원은 “비대위원장의 사고·궐위에 대한 규정은 없다”면서도 “비대위원장이 당대표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니, 당대표의 사고·궐위 관련 규정을 준용하는 것이 맞다고 해석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현재 당연직 비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권 원내대표가 대행을 맡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권 원내대표 대행에 대한 비토 목소리가 커 새 지도부를 선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 원내대표 체제는 사실상 당이 비상상황으로 ‘퇴행’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앞서 권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나눈 ‘내부 총질’ 메시지 노출로 여당 내홍을 부추겼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오늘 의총 이후를 봐야겠지만 권성동 원내대표 체제는 지도부가 말했던 비상상황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건데 어렵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이에 더해 지도 체제를 두고 이 전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 측이 입장 차를 보이고 있어 당 내홍이 계속될 전망이다. 이 전 대표 측은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하고 사퇴하지 않은 최고위원으로 최고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전 대표 변호인단은 “사퇴하지 않은 최고위원으로 최고위를 구성하고, 사퇴한 위원은 전국위원회에서 선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의힘이 비대위 가동 의지를 보이자 추가 가처분 신청으로 비대위 자체의 효력도 정지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현재 당연직 최고위원(당대표·원내대표·정책위의장)을 제외한, 선출직 최고위원으로는 친이준석계로 꼽히는 김용태 위원만 남아있다. 8월 5일 비대위 체제 전환이 결정된 상임전국위 의결 이전에 김재원, 조수진, 윤영석 최고위원은 사퇴서를 제출했다. 배현진, 정미경 최고위원은 상임전국위 의결 이후 사퇴했다. 다만 최고위 체제로 돌아가도 당대표 ‘사고’ 상황이기 때문에 권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을 그대로 이어가게 된다.
이에 더해 국민의힘 전당대회 개최 역시 어렵게 됐다. 일각에선 조기 전당대회 개최 방안도 거론되지만 현실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그보다는 권 원내대표 등의 비대위 직무대행 체제로 다시 전환해야 할지, 최고위 체제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 등을 먼저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조해진 의원은 “현재 당의 대안체제는 비대위 직무대행 또는 새로운 최고위 둘 중 하나다. 조기 전대는 법적으로 분쟁소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여권은 패닉에 빠진 상태다. 공교롭게도 1박 2일 지역 연찬회 일정이 마무리 된 날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나왔다. 연찬회에서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원팀’을 외치며 화합과 결속을 다진 직후라 김이 빠진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연찬회 결의문을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 위기 속에 민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못했다. 당내 갈등으로 심려만 더 끼쳐드렸다”며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선택해 주신 절절한 마음을 잘 알기에 사죄드리고 철저히 반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전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의 갈등으로 쇄신 의지는 모두 물거품이 됐다. 앞서 이 전 대표는 6월 30일 당 윤리위의 ‘성 상납 증거 인멸 교사 의혹’ 징계를 앞두고 “뭐 복잡하게 생각하나. 모두 달리면 되지.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긴 바 있다.
#이준석 사법리스크 변수로
이번 법원 결정으로 친윤석열계는 책임론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이준석 중징계’ 논의를 주도하며 이 전 대표를 향해 대립각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법원 결정 후 당 일각에서 이른바 ‘윤핵관’의 2선 후퇴 목소리가 불거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가에선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경찰 수사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정권 핵심부가 이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친윤계는 ‘이준석과 함께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상태다. 이준석 역시 배수진을 치고 윤핵관과 정면대결에 나섰다. 여권 실세들이 호락호락 밀리겠느냐. 법원에서의 싸움은 졌지만 아직 꺼낼 카드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으로선 1차 고비는 넘었지만 앞으로 더 큰 산이 남은 셈이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