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증거 조작 밝히는 등 ‘유의미한 성과’…‘국방부 수사와 다르지 않다’ 볼멘소리도
군 안팎에서는 “피해자 유족의 요청으로 이뤄졌지만 유의미한 수사 결과는 없었다”는 비판 섞인 반응이, 특검 안팎에서는 “군 내부의 만연한 문제들을 새롭게 찾아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각각 나온다. 그리고 법조계에서는 “역대 특검 가운데 가장 존재감이 없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번 특검을 놓고 나오는 여러 해석들을 정리해봤다.
#“군 내부 시스템 여전한 악습 확인”
2021년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한 뒤 숨진 고 이예람 중사에 대한 특검 수사 결과가 9월 13일 발표됐다. 유의미한 지점은 대형 로펌 변호사의 증거 조작을 찾아낸 것이다.
사건의 중요 분기점이었던 시민단체 군인권센터의 ‘공군 법무관 대화 녹취록 공개’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대형 로펌 변호사 김 아무개 씨는 과거 공군 근무 당시 징계를 받은 것에 앙심을 품고 음성 합성 프로그램을 통해 가짜 녹음 파일을 만들어냈다. 그 후 이를 군인권센터에 보냈는데 특검은 이를 확인해 변호사 김 씨를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특검 흐름에 밝은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 도중 유의미한 지점을 찾아냈다는 얘기와 함께 수사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는 평까지 나왔던 내용”이라며 “이번 사건의 진실 규명이라는 지점에 한발 더 다가간 유의미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군 내부의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확인해 낸 것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대대장을 포함, 이예람 중사의 직속상관 2명과 군 검사는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 이 중사는 가해자 장 아무개 중사와 완전히 분리돼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급자인 김 아무개 중령은 공군본부 인사 담당자에게 이 중사로부터 장 중사가 분리돼 있고, 장 중사의 파견을 가해자 조사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군사경찰 요청이 있었다고 허위 보고한 혐의도 적용됐다. 이 중사의 1차 직속상관인 중대장 김 아무개 대위에게는 이 중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도 적용됐다. 김 대위가 이 중사에 대해 “좀 이상하다. 관련 언급만 해도 고소하려 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작된 군 핵심 관계자들의 ‘수습 시도’도 드러났다. 이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인물은 공군본부 법무실장 전익수 준장이다. 전익수 준장은 국방부 수사 과정에서 기소되지 않았던 인물인데, 이번에는 특가법상 면담강요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021년 7월, 자신을 입건해 수사 중이며 또한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담당 사무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군 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구속영장은 잘못됐다”며 위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공군 공보정훈실에 대한 수사도 성과를 냈다. 특검은 공군본부 공보과 총괄장교 정 아무개 중령도 불구속 기소했다. 정 중령은 이 중사 사망 사건에 대한 최초 보도가 나온 뒤, 공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여론을 쇄신하기 위해 기자 3명에게 “이 중사가 강제추행 사건이 아니라 부부 사이 문제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명예훼손)를 받고 있다.
특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부검 결과를 토대로 “이 중사는 강제추행 이후 자살 위험이 급격히 고위험군에 이르렀고, 15특수임무비행단에 전입해온 뒤 증상을 악화시키는 2차 가해를 겪으며 심한 좌절감과 무력감을 겪어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특검 관계자는 “상급자의 지시를 어떻게든 이행해야 하는 군 시스템이 사건 은폐를 위해 각각의 위치에서 움직인 부분들을 찾아내 기소까지 한 지점은 군 자체 수사에서 밝혀내지 못했던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군인권센터 증거조작과 같은 부분은 ‘진실 규명’이라는 특검의 목적에 부합하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수사를 하면서 빠르게 변화하고 시대 흐름에 적응하는 법조계와 달리 군 내부 시스템은 여전히 악습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고, 군 차원에서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움직임도 상당했다”며 “기존 혐의를 추가로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범죄 사실이 다수 나온 것 자체만으로도 국방부 수사가 미진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자평했다.
#‘구속 추가 한 명 없는’ 기소 남발?
다만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 수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 중령 등 기소된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재판에 넘겨졌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전익수 준장 역시 업무상 직권남용 등이 아닌, 면담강요로 기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번 특검의 수사가 ‘국방부 자체 수사’에서 한 발 더 나간 지점 정도밖에 확인해내지 못했다는 평으로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특검은 정 중령, 양 아무개 사무관 등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된 바 있다.
군 흐름에 밝은 변호사는 “특검에서 ‘규명, 확인’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미 무죄가 나온 피고인들이 중복되는 상황에서 기소 단계인데 해당 단어를 사용하는 게 적정한지 의문”이라며 “애초 여론몰이로 시작된 특검인데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수사 성과도 새로운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법조계의 낮은 관심도 이를 반영한다. 특검이라는 시스템이 애초 ‘기존 수사기관을 믿을 수 없을 때’ 등장하는 장치인데, 고 이예람 특검팀의 경우 ‘새로운 인물 등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는 설명이다.
서울변호사협회의 한 변호사는 “통상 특검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을 검찰에 맡길 수 없을 때, 정치권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여야가 합의 하에 등장한다”며 “이번 사건은 정치적으로 예민하지 않은 군 관련 사건이다 보니 여야가 빠르게 합의해 이뤄진 특검이자, 추가 수사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끝낸 이례적인 특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번 특검을 단순히 이예람 중사와 관련된 진실 규명으로만 끝내지 않고, 군 관련 성 비위 사건이나 폭행 등 일반 형사 사건의 경우 민간법원으로 넘길 필요성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방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피해자의 인권, 사건의 진실 규명 의지 등 군 내부 사법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며 “군 관련 절차에 관한 사건이 아니라면, 일정 영역의 경우 민간 검찰과 법원에서 사건을 전담하는 게 더 투명한 군 사법 시스템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