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으로 3D 프로그래밍 익히는 등 특출난 재능…“학교 적응 못하고 발달장애 분류” 문부성 지원책 마련
일본 방송 TBS는 초등학교 5학년인 고바야시 토오 군(10)의 사연을 소개했다. IQ 154로 이른바 ‘기프티드’로 진단받은 아이다. 좋아하는 것을 묻자, 고바야시 군은 눈을 반짝이며 3D 프로그래밍이라고 말했다. “독학으로 익혔다”고 한다. TBS는 “고바야시 군이 어른 뺨치는 프로그래밍 기술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그 밖에도 그는 한자를 좋아한다. 유치원 때 한자능력검정시험 9급에 응시해 최연소로 만점을 받기도 했다. 고바야시 군은 “영어 알파벳은 26자, 대문자와 소문자로 나눠도 52자밖에 되지 않지만, 한자는 5만 자 정도”라며 “5만 자를 외워가는 즐거움이 커서 새로운 한자를 접할 때마다 흥분된다”고 전했다.
고바야시의 어머니 준코 씨는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부터 또래와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일례로 다른 친구들은 피구를 굉장히 좋아하는 반면, 고바야시는 피구를 한 날 밤 구토를 반복했다. 응급실에 가 검사를 했더니 ‘정신적인 이유 같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바야시는 “피구에 규칙성이 없기 때문에 어지러웠다”고 한다. “무질서하게 공이 튀어나와 예측이 힘들었고 혼란스러웠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 대신, 이레귤러(불규칙)에는 서툰 아이. 준코 씨는 이것이 고바야시의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하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주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장래희망에 대해 고바야시 군은 “아직 특별히 정하진 않았지만 3D 프로그래밍 같은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한창 꿈이 많을 시기다. 그러나 고바야시 군은 “곤란한 일도 있다”고 털어놨다. 다름 아니라 학교생활이다. “대화가 되지 않고 강요당하는 느낌이라 학교는 괴로운 장소예요. 학교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저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요시자와 다쿠 씨(36)도 학창 시절 고바야시 군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IQ 138인 그는 선천적으로 비범한 재능을 타고 났다. 예를 들어 악보를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어떤 곡이든 피아노로 칠 수 있었다. 종이접기를 하면 입체적인 조형이 뚝딱 만들어졌고, 수학올림피아드에도 출전했다. ‘대단한 능력’이라고 부러워할지 모르나 그 재능 때문에 고뇌가 늘 따라다녔다.
요시자와 씨는 “주변과 맞물리지 않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수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한 경험을 조회시간에 발표하게 됐다. ‘수학문제를 아름답게 풀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 순수하게 마음을 전달했지만, 조회 분위기는 썰렁 그 자체였다. 수업 중에는 여러 궁금증이 들어 “선생님 이런 생각도 있지 않나요?”하며 손을 들면 “요시자와 좀 조용히 해. 다른 친구들 공부하고 있으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들은 공감을 사지 못했다. 소외감이 커지면서 점차 등교를 거부하게 됐다.
TBS에 의하면 “기프티드인 아이들은 인구의 2%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기프티드 아이들은 그 재능 때문에 오히려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더욱이 재능이 발굴되지 못하고 묻히는 경우도 많다.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명예교수 사카키바라 요이치 씨는 “기프티드 아이가 종종 발달장애로 간주되는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사카키바라 교수가 만난 아이 중에는 자폐증과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라고 진단받은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수업 중에 자리를 이탈하거나 선생님의 지시에 “싫다”며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아이와 대화를 해보니,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능검사를 받게 하자 IQ가 130이상인 기프티드로 판명됐다.
발달장애라고 오진을 받을 경우 아이의 진로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에 사카키바라 교수는 “전문가라고 해도 아이가 발달장애인지 기프티드인지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특히 일본에서는 집단행동을 흐트러뜨리거나 단지 집중력이 부족할 뿐인데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는 이유로 발달장애에 같이 묶여버리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말, 일본 문부과학성은 “특정분야에 특이 재능이 있는 아이에 대한 지원을 2023년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기프티드인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곧잘 있어 지원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고 한다. 해당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말을 간단하게 하지 않으면 친구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잘못을 지적해도 선생님이 알아주지 않는다”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보통’에 들어맞지 않는 재능 때문에 ‘학교에서 있을 곳이 없음’이 과제로 부각됐다.
문부과학성은 ‘그동안 특이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바탕으로 향후 지원 방식을 논의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개개인의 재능에 따른 유연한 수업 만들기를 통해 ‘조금 다를 뿐인 아이’의 재능 살리기 교육에 힘쓰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번 지원책을 영재교육으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과도한 경쟁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IQ 등 기준에 따른 재능 정의는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싫증을 잘 내는 성격, 기프티드일지도?
홋카이도교육대학의 가타기리 마사토시 교수는 기프티드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는 생각이 나면 바로 행동하는 타입, 한마디로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다. 철도에 흥미를 느낀 것도 잠시 자동차나 비행기 등 흥미의 대상이 계속 바뀐다. 이는 집착이 강한 자폐증과 정반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둘째는 오감을 통해 받는 자극이 보통 사람보다 강하다는 점이다. 가령 우리가 평소 신경도 쓰지 않는 형광등 50Hz 빛의 명멸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이 경우 예술 감상에 열중하거나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감동하기도 한다.
셋째는 공상에 몰입한 나머지 주변을 건성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은 창작이나 공작, 레고 같은 활동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끝으로 호기심이 많고 스스로 분석하는 아이다. 관심이 가는 일에는 끈질기게 “왜?” “어째서?”라고 질문 공세를 하는 반면, 본인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일에는 좀처럼 손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