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서 교황 사진 찌~익
▲ 카메라 앞에서 교황 사진을 찢은 시너드 오코너. 로이터/뉴시스 |
생방송 중에 사고가 일어나긴 했지만 재방송에선 편집이나 사운드 처리를 통해 SNL은 일종의 검열을 하기도 한다. 1986년 10월 18일에 출연한 코미디언 샘 키니슨은 “나에게 대마초를 가져다주면 싸구려 마약 따위는 잊어버리겠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NBC 방송사의 내부 규율에 의해 삭제되었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결국 제재를 받았다.
▲ 클린턴 대통령 당선 당시 12세였던 딸 첼시의 외모를 비하하는 등 부적절한 농담을 한 마이크 마이어스 & 데이너 카비. |
1998년 3월엔 <컨스피러시 씨어리 록(Conspiracy Theory Rock)>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SNL을 통해 방송되었는데, 여기엔 디즈니와 폭스는 물론 SNL의 방송사인 NBC 등의 거대 미디어 독점 그룹이 여론을 조작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 단편이 삭제된 이유에 대한 NBC의 공식 입장은 “재미가 없다”였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한편 2009년 11월 27일,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제니 슬레이드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한참 주가를 올리던 메건 폭스와 함께 출연했을 때 연신 비속어인 ‘퍼킹’(fucki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후 이 부분은 비속어인 ‘프리킹’(freakin’)으로 더빙됐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는 애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2004년 10월 23일에 가수이자 배우이며 할리우드의 패셔니스타 중 한 명이었던 애슐리 심슨이 저지른 실수는, 그녀의 엔터테이너 인생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녀는 두 곡의 노래를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첫 곡은 ‘Pieces of Me’,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두 번째 노래 ‘Autobiography’는 그녀가 마이크에 입을 대기도 전에 노래가 흘러나왔고, 게다가 그 노래는 처음에 불렀던 ‘Pieces of Me’였다. 일단 무대를 떠난 그녀는 쇼가 끝날 무렵 돌아와 밴드가 실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극심한 위산 역류 때문에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그녀가 립싱크를 했던 것. 두 번째 노래는 스태프의 실수로 잘못 나간 것이었고 심슨은 이틀 뒤 “완전히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사죄했으나 팬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 립싱크로 팬들의 분노를 산 애슐리 심슨. |
사건은 이때 일어났다. 그들이 두 번째 노래인 ‘Bulls on Parade’를 부르기 직전, NBC 방송사의 무대 스태프는 성조기를 끌어내렸다. 끌어내린 것은 깃발만은 아니었다. RATM 멤버들도 즉시 무대에서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가 달라는 명령을 받았다. 베이시스트인 팀 커머포드는 포브스의 대기실로 달려가 분노를 터트렸고, 기타리스트인 톰 모렐로에 따르면 당시 SNL 스태프들도 방송사의 검열 앞에서 쇼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들도 아일랜드의 ‘대머리 여가수’ 시너드 오코너 앞에선 작은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화제가 되었던 오코너가 처음으로 SNL의 섭외를 받은 건 1990년 5월. 하지만 오코너는 당시 호스트였던 앤드류 다이스 클레이가 여성 비하적인 발언을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에 반발해 출연을 거부한다. SNL 제작진은 끈질기게 설득했고 1992년 10월 3일에 드디어 출연하게 된다.
그녀는 레게음악의 대부 밥 말리의 ‘War’를 아카펠라로 불렀는데, 원래는 노래를 마치고 발칸 반도 전쟁 지역의 한 어린이 사진을 보여줄 예정이었다. 아동 성추행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내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하지만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자, 오코너는 리허설을 무시했고 원래 의도를 드러냈다. “인종적 불평등에 맞서 싸우자”라는 가사는 “아동 성추행에 맞서 싸우자”라는 가사로 바뀌었고, 그녀는 ‘악마’(evil)이라는 가사가 나올 때 갑자기 교황 바오로 2세의 사진을 꺼내 카메라 앞에서 찢기 시작했다. 이는 가톨릭 사제들이 어린 남자 아이들에게 가한 성폭력에 대한 고발의 의미였다. 그녀는 “진짜 적과 싸우자”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퇴장했다. 객석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침묵이 흘렀다.
이후 사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NBC 사무실엔 수천 통의 항의 전화가 걸려왔고 SNL의 스튜디오가 있는 ‘30 록’(30 Rock) 빌딩 앞에 모인 사람들은 오코너의 음반과 테이프를 쌓아놓고 공사용 롤러로 밀어버렸다. 얼마 후 밥 딜런 30주년 기념 공연에 등장했을 땐 관중들의 야유로 노래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때 그녀는 다시 밥 말리의 ‘War’ 가사를 마치 연설하듯 소리 치고 무대를 내려왔다.
“어떤 인종은 우월하고 어떤 인종은 열등하다는 철학이 완전히 폐기되고 영원히 버림받을 때까지 전쟁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국가든 일등 계급과 이등 계급의 시민이 사라질 때까지, 인간의 피부색이 눈동자 색보다 중요하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전쟁이라고 말할 것이다.”
몇 년 뒤 오코너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 되었음을 시인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