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란의, 라미란에 의한, 라미란을 위한 영화…‘소포모어 징크스’는 없었다
오는 28일 개봉을 앞둔 영화 '정직한 후보 2'는 전편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떨어지며 쫄딱 망한 백수가 된 전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분)이 고향인 강원도에서 도지사로 화려하게 재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언대로 개과천선한 뒤 초반엔 청렴하고 결벽한 정치인으로서의 새 삶을 보여주지만, 재선을 앞두고 추락하는 지지율을 방어하기 위해 제 버릇 개 못 주고 다시 '뻥쟁이' 정치인으로 돌아갔다가 운명처럼 또 찾아온 '진실의 주둥이'로 인해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전편에서 이 '진실의 주둥이'라는 저주가 주상숙에게만 한정됐다면, 이번 '정직한 후보 2'에서는 그의 왼팔 오른팔을 다 맡고 있는 비서실장 박희철(김무열 분)까지 전염됐다. 1편에서 자유분방한 주둥이를 가진 상사 탓에 하염없이 구르고 고통 받으며 부하직원들의 애환을 실감나게 그려냈던 박희철이었다. 그런 그가 주상숙에게 속에 있던 말을 시원하게 뱉어내는 신들은 상사에게 눌리고 후배에게 치이며 하고픈 말을 하지 못해 '사회적 변비'를 앓고 있는 사회인들에게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쥐어주기도 한다.
김무열의 코믹 연기는 다소 식상한 표현이긴 하나 '물이 올랐다'고 말하기 적절해 보인다. 진실의 주둥이가 열리면서 정신연령도 살짝 어려진 듯한 박희철은 1편 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어설픈 액션과 모자란 로맨스로 관객들을 사정없이 터뜨리고 있다. 1편에서 김무열의 마음가짐이 "라미란 누나 바짓가랑이만 잡고 쫓아가야겠다"였다면 2편에서는 서로의 옷자락을 잡고 함께 뛰어가는 식이다. 라미란과 김무열, 두 배우가 가진 코믹 연기의 최대치를 뽑아내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가 '정직한 후보 2'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톱 주연으로 또 한 번 '믿고 보는 라미란'의 역사를 세운 라미란의 주상숙은 더 말을 보탤 필요가 없지 않을까. 전편에서도 연출을 맡았던 장유정 감독이 "주상숙은 라미란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캐릭터와의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줬던 라미란은 이번 작품에서도 주상숙 그 자체로 존재한다. 포구에서 도청, 그리고 청와대까지. 영화의 배경과 주상숙의 가발이 커질수록 라미란의 코믹 연기도 한계없이 확장되고 있다. 특히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주상숙이 독대하는 시퀀스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코믹 파트라고 단언할 수 있다.
특정 시리즈나 장르에 출연하게 될 경우 연기나 캐릭터로서의 스펙트럼이 한정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배우들의 우려라고 하지만, 주상숙을 연기할 수 있는 것은 라미란 뿐이라는 건 배우로서의 또 다른 자부심이 되지 않을까. 더욱이 대중들로 하여금 그가 등장하기만 하면 깊이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웃을 수 있도록 하는 배우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됐다면 배우로서 이보다 더 값진 필모그래피도 없을 터다. 실제로 라미란은 '정직한 후보'를 통해 코미디 영화로는 최초로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평단의 호평과 대중성을 모두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정직한 후보 2'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라미란은 속편에 출연하게 된 계기에 대해 "역시 나만큼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자신감을 뽐냈다. 그러면서도 1편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서 솔직하게 밝히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전편을 찍을 때도 그만큼의 분량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고, 많은 부담감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게 봐 주셔서 감사했다"라며 "'정직한 후보 2'도 냉정하게 봐주시고, 재밌게 봐주셨을 것이라고 믿고 감사드린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의 말대로 '정직한 후보' 시리즈는 라미란이었기에 가능한 작품이었고, 대중들의 기대와 사랑만큼의 값어치 그 이상을 보여준다. 아무리 코믹 영화라고 해도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러닝 타임 내내 웃음이 터지기란 힘들기 마련이다. 그 힘든 일을 '정직한 후보 2'가 해냈다. 라미란과 김무열이 자아낼 코믹 하모니를 2년 간 기다려 온 관객들에게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한편 '정직한 후보 2'는 강원도지사로서의 화려한 복귀 기회를 잡은 전 국회의원이자 현 백수 주상숙이 비서실장 박희철과 함께 쌍으로 '진실의 주둥이'를 얻게 되면서 더 큰 혼돈으로 빠져드는 주둥이 대폭발 코미디를 그린다. 전편보다 두 배로 철이 없어진 남편 봉만식 역의 윤경호와 함께 얄미운 시누이 봉말순 역으로 새롭게 합류한 박진주, 주상숙을 물심양면 보좌하는 강원도청 건설교통과 국장 조태주 역의 서현우, 강원도의 랜드마크를 짓겠다며 도정을 좌지우지하는 영 앤 리치 CEO 강연준 역의 윤두준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연기도 놓칠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106분, 12세 이상 관람가. 9월 28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