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배경 카 체이싱 액션 큰 도전…“객기 아닌 책임감으로 작품 선택”
왜 '서울대작전'을 차기작으로 택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배우 유아인(36)의 답이었다. 8월 26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울대작전'은 도전과 실험으로 가득한 작품 답게 공개 직후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를 받았지만, 출연 배우들의 만족도는 '최상'이었다고 했다. 이제까지 현장에서 다소 외롭게 겉도는 존재였다고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던 유아인도 “가장 많은 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 팀”이라고 동료들을 가리킬 만큼 완벽한 케미스트리가 만들어졌다고.
“제가 팀을 가져서 작업했던 시간 중에서는 최고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고, 고독할 수밖에 없는 작품을 많이 했잖아요(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덜 외롭게 팀을 이뤄서 현장에 즐겁게 존재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리더 역을 하기에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 그 팀을 혼자 이끌진 않았고요(웃음). 다함께 의기투합했던 거죠. 작품 외적으로도 가장 많은 사적인 시간을 같이 보냈던 팀도 '서울대작전'팀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 팀이 만들어낼 결과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죠. ”
'서울대작전'은 1988년, 살벌한 시대 배경 아래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빵구팸'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VIP 비자금 수사 작전에 투입되면서 벌어지는 카 체이싱 액션 질주극을 그린 작품이다. 유아인은 극 중 이른바 '상계동 슈프림팀'이라고 불리는 빵구팸의 리더이자 최강의 드리프터 동욱 역을 맡아 거침없는 질주 본능을 펼쳤다.
“실제 도로에서 드리프트를 연습할 순 없으니 전문 레이싱 서킷에 가서 연습했죠. 전문 레이서 분의 차량에 탑승해서 차의 움직임과 내 움직임이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연습했던 기억이 나요. 제가 사실 자동차랑 친한 편이거든요(웃음). 일반적인 10대들과 비교했을 때 차에 타고 현장을 다니는 시간이 많았으니까요. 차에서 자는 시간이 더 편할 때도 있었을 만큼요. 그런데 운전대랑은 안 친해요(웃음). 이번에 '서울대작전'을 찍고 나서는 자신감이 좀 붙은 것 같긴 해요.”
'서울대작전'에는 기성세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가벼운 레트로 분위기와 동시에 당시 살벌했던 시대적 배경을 꼬집는 '블랙 유머' 코드도 심어져 있다. 특정 사건과 인물을 연상케 하는 설정과 한탕을 노리면서도 자유를 갈망하는 20대 청춘의 이야기를 꿰어 내면서 그 안에 제작 의도를 숨겨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식이다. 이런 지점은 유아인으로 하여금 '서울대작전'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가벼운 오락성의 외피를 가지고 있는 영화지만 한 겹만 뒤집어 보면 그 안에 우리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어떤 역사적 배경에 대한 묵직한 의미들이 존재하고 있어요. 더 나은 경제적 성장, 화려한 외적 성장을 추구하며 '껍데기가 다야!'를 외치고 있던 그 시절의 세상에서 껍데기를 한 겹 깠을 때 느낄 수 있는 진실한 세계의 모습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걸 표면에 드러내 놓고 무겁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오락과 가벼움 안에 감추고 있다는 것이 저희 영화의 큰 장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전체 리듬을 형성하는 힙합 음악 같은 매력이 있죠(웃음).”
한편으로는 오락성을 앞세운 정치 풍자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배우에게 또 다른 고민과 숙제를 안겨주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었다. 특히 요즘처럼 국민들도 극단적으로 정치 성향이 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앞서 '독특한 스탠스'로 꾸준히 이목을 집중시켜온 유아인이 선택한 이 작품을 삐딱하게 보는 대중들도 없진 않을 터다. 이런 질문에 대해 유아인은 “부담이나 책임 없이 하는 도전과 실험은 그저 객기일 뿐”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 연예인 가운데 정치적인 발언을 제일 많이 한 게 전데요(웃음)? 하지만 저 스스로는 제 자신이 아주 유의미한 논의를 불러 일으킨 '퍼포머'라고 생각한다는 걸 여러분들이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영화의 장점도 그런 부분이고요. 노골적으로 그 시대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내거나 표면적인 환상을 심어주는 작품이 아니라 이야기 안에 가볍게 숨겨 놓고 있으니까요. 한편으론 부담과 우려가 있었기에 가장 긴 시간 고민했던 작품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걸 끌어안은 상태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제가 책임져야 하고, 실패할 수 있음에도 그 실패가 다음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매 순간 도전과 실험에 임하는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 유아인은 연기에 있어 '몸을 사리지 않는 진지함'을 모토로 삼고 있다. 장난인듯 농담인듯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연기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곧바로 자세를 곧게 다잡을 정도다. 누군가는 그를 '이슈를 몰고 다니는 배우'로 치부하더라도 본업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한 배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30대 중반을 지나는 지금도 여전히 10대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질풍노도의 기운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배우 유아인'으로 마주한 그는 누가 뭐래도 '어른'이었다.
“제가 가벼워 보이지만 제 업에 대해서만큼은 진지하거든요. 어쩔 때 보면 '얘가 이걸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무책임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만큼 실험적인 걸 시도할 때도 있지만 저는 늘 진지해요. 그래야 저 자신도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거든요. 제가 10대 때 데뷔했기 때문에 '청춘의 아이콘'이란 수식어를 많이 붙여주셨던 것 같은데 한때는 그 말이 좋았어요. 연예인으로서 아이콘이 된다는 데 그게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저와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요. 이제까지 제가 해온 짓들이 이상한 짓이 아니었고, 긍정적인 영향으로 동료배우들에게 전달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