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앤코, 주식양도 청구 소송 완승…홍 회장 항소 의지 밝혔지만 손해배상액 부담 갈수록 커져
9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0민사부는 한앤코가 제기한 남양유업 주식양도(계약이행) 소송에서 한앤코 전부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홍원식 회장 일가의 지분을 한앤코에 양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지난해 5월 27일 남양유업은 한앤코에 홍원식 회장과 부인 이운경 고문, 손자 홍승의 군이 가진 지분 53.08% 전부를 3107억 원에 넘기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지분 매각가는 3107억 원, 주당 가격은 82만 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계약 체결 이후인 7월 홍 회장이 경영권 이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에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 9월에 홍 회장이 한앤코에 매각 계약 해제를 통보했고, 같은 달 한앤코는 주식양도 소송을 제기했다.
#별도합의서 등 남양유업 주장 모두 인정 안 돼
남양유업과 한앤코는 각각 소송 법률대리인으로 LKB앤파트너스와 화우를 선임해 재판에 나섰다. 한앤코는 이미 계약 이행을 위한 절차에 돌입한 상태였던 데다가 거래를 완결하지 못하면 사모투자펀드 운용사로서의 평판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홍원식 회장 일가가 계약 무효를 원하는 이유로는 ‘남양유업 매각금액’이 거론됐다. 남양유업이 보유 중인 유형자산 장부가액보다 매각금액이 낮았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도 주식매매계약 체결 이후 주가가 오르자 홍 회장은 한상원 한앤코 대표에게 가격 재협상을 요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덟 번의 변론기일이 이뤄진 공방전에서 홍원식 회장 측은 사전 약속한 남양유업 외식사업부인 백미당 분사 및 홍 회장 고문료 지급 및 두 아들의 차별화된 임원 예우가 지켜지지 않았으며, 김앤장이 한앤코와 홍 회장 측을 동시에 대리한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재판 과정에서 홍 회장 측은 양측의 날인이 없는 ‘별도합의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앤코 측은 주식매매계약서와 고문위촉제안서 등 어디에도 백미당 분사에 대한 내용은 없었으며, 고문위촉제안서에는 홍원식 회장의 보수가 무급이라 기재돼 있다고 맞섰다. 또 홍 회장 가족의 임원 처우 보장이 담긴 별도의 합의나 확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앤장 대리와 관련해선, 김앤장은 쌍방 대리가 아닌 쌍방 법무 자문을 한 데다 계약 당사자들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매각을 위한 전제조건 등이 담긴 별도합의서는 처음 보는 문서라고 반박했다.
재판 과정에서 한앤코가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앤코가 남양유업 및 홍원식 회장 일가를 대상으로 제기한 가처분 소송 세 건에서 모두 승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과 10월 법원은 한앤코가 제기한 주식처분금지와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을 각각 인용했다. 이후 11월 대유위니아그룹과 남양유업이 홍 회장 측이 승소하면 대유위니아그룹에 남양유업 주식과 경영권 매각을 이행하겠다는 협약을 맺자, 12월 한앤코는 홍 회장 측에 계약이행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올해 1월 가처분 결과를 인용했다. 이에 홍 회장 측이 이의신청을 했으나 3월 기각됐다.
이번 판결로 홍원식 회장이 한앤코에 제기한 위약벌 청구 소송도 의미가 무색해졌다. 앞서 지난해 9월 홍 회장은 한앤코에 계약이 무효이며 한앤코에 계약 해지 책임이 있다며 310억 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해 현재 1심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주식매매계약이 유효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홍 회장이 제기한 소송은 기각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홍원식 회장 측은 즉각 항소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홍 회장 측은 “(한앤코는) 김앤장 쌍방 대리를 사전에 동의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어떠한 증거도 내놓지 못했고, 명백한 법률 행위를 자문 행위라고 억지 주장했다. 또 양측이 사전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지도 않았다”며 “이러한 내용을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데에 유감을 표하며, 즉시 항소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날 한앤코 측 법률대리를 맡은 김유범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당연히 소송에서 이길 것이라 봤다. 계약의 기본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미 가처분 소송과 본 소송에서 증거가 다 나왔고 (한앤코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이 확인됐으므로, 홍원식 회장 측이 항소해도 이른 시일 내 종결되리라 예상한다”며 “이른 시일 내에 남양유업 경영 정상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 결과를 두고 다른 변호사도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와야만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고 평했다.
#매각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 불가피
항소 여부와 상관없이 홍원식 회장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소송진행비용을 지급하게 됐기 때문이다. 또 한앤코 측은 주식 인수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항소 시 손해배상금은 더욱 늘어난다. 홍 회장 법률 자문을 맡았던 김앤장도 비용을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유위니아그룹은 홍 회장 측과의 매각 결렬에 따른 계약금 약 320억 원도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번 재판부가 별도합의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홍 회장 측이 위증죄로 고소될 가능성도 있다.
남양유업 입장에선 한앤코로 주인이 바뀔 기회를 얻었지만 부활을 위한 과제가 적잖다. 남양유업은 소비자 불매 운동 등의 영향으로 영업적자 늪에 빠져 있다. 남양유업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올해 2분기 약 422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약 347억 원을 기록한 지난해 2분기보다 손실폭이 커졌으며, 2019년 3분기부터 12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반기순손실은 27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12% 늘었다.
홍원식 회장과 한앤코 측은 주식매매계약 일주일 전 홍 회장을 특별고문으로 위촉한다고 구두 합의했다. 홍 회장이 한앤코에 경영권을 넘겨도 남양유업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기업 이미지 쇄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홍 회장의 존재는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다. 앞서의 변호사는 “구두 계약 중 양측이 서로 동의한 내용은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앤코 측은 “장기간의 오너 리스크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된 남양유업의 소비자 신뢰 회복과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경영 혁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