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참가 노동자에 대한 보복적 성격” vs 경총 “산업현장 법치 확립해야”
지난 8월 30일 쌍용차 국가손해배상 및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들은 경찰청 앞에서 쌍용차 국가손배 당사자 트라우마 진단서 제출 및 경찰청의 소취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8년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국가폭력을 인정받았지만 경찰이 제기한 손배청구소송은 취하되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10년이 넘게 진행된 손해배상 소송으로 불안을 호소하기 시작해 트라우마 검사를 실시하고, 경찰청에 손해배상 소송 취하를 요구했다. 쌍용차 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노동권을 행사한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소 가운데 가장 오래 재판 중인 사건이다.
노조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최근까지도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노사 간 임금인상 등의 합의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47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설비, 인건비 등 고정비, 매출 손해분 등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트진로도 운임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 화물연대 소속 근로자들에게 27억 7554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일부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부동산과 화물차까지 가압류했다.
이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 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고, 되풀이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 단체 등은 다양한 의견을 전했다. 기업이 청구하는 손해배상 금액은 몇 십억 원에서부터 몇 백억 원에 이른다. 앞서 대우조선도 470억 원이나 되는 손해배상액을 파업을 한 하청 노동자들에게 청구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를 대리하는 김두현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는 “기업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에게 몇 백억 원이나 되는 금액을 받기란 힘들다”며 “합리적인 경영자라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률을 조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합의를 했을 것이다. 그게 소송보다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훨씬 이득이 되는 방법이 있는데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노조를 탄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윤지선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활동가도 기업이 노조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보복성이 있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윤지선 활동가는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에서는 이 같은 손해배상소송을 쟁의행위 참가자의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에 대한 보복 조치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노동자가 한 달에 200만 원 버는데 470억 원, 27억 원이나 되는 돈을 어떻게 평생 갚을 수 있겠나. 배상받기 위한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노조나 노조원들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파업권을 위축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평균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청구되는 손해배상 금액이 1인당 15억 원 정도로 상당히 부담되는 금액이다”라며 “노조 전체에 소송을 걸기보다 간부들 몇몇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아 추후 노동 3권을 행사하는데 제약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손잡고에 따르면 단체가 확보한 손배가압류사건만 197건이며, 기업이나 기관이 노조와 노동자 개인을 대상으로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의 총합은 약 3160억 2865만 원에 이른다. 청구금액이 확정되지 않더라도 평범한 노동자들이 감당하기에는 큰 금액이다. 또한 소송 기간이 길어져 몇 십억 원, 몇 백억 원이나 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지속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으면 기업 임원진들이나 직원들이 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민법 750조에 해당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으면 임원진들이 임무를 게을리 한 결과가 될 수 있다”며 “대표자로서 선관주의의무를 다했다는 면책 차원에서 기업에서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선관주의의무는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지난 26일 하청 노조원을 상대로 손배소송을 제기한 대우조선해양의 관계자는 “회사가 그만큼 피해를 입었으니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이라며 “소송을 하지 않으면 업무상 배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쌍용차 노조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지 않는 이유도 임무에 대한 문제와 결부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현재 1심, 2심 모두 경찰이 승소한 상황에서 3심 결과를 보지 않고, 소송을 취하하게 되면 원고 대표인 경찰청장에게 배임의 혐의가 씌워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업 임원진들에 대한 책무로 인해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 대해 장윤미 변호사는 “기업이 노조와 협상을 해서 마무리를 짓는 게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노조에게 손배가압류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임에 해당되는 일인지 그런 전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라며 “노조 길들이기나 압박용이 아니라면 집행이 안 될 걸 뻔히 알면서도 몇 백억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인지 또 그런 소송을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서는 지금까지 노조의 파업에 대해 ‘불법행위’라고 규정하며 노조가 파업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게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총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의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점검 사태에 대해 “화물연대는 3개월 가까이 주류 운송을 거부하며 운송방해 등 불법행위를 지속했고, 지난 16일부터 본사 옥상을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총은 “과거부터 산업현장에서 투쟁적 노동운동과 불법이 계속된 것은 미온적인 법 집행과 불법에 대한 민형사 면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정부는 노사관계 개혁의 첫걸음이 산업현장의 법치주의 확립에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제도상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파업을 하기 어렵다. 임금인상과 같은 경제적 이유나 노동조건 개선으로 파업을 한 것이 아니라면 다 불법으로 간주되고, 하청이나 특수고용직의 파업의 경우도 불법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 구조조정 등의 문제는 파업을 안 하고 어떻게 막을 수 있겠냐. 이런 부분은 법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청노동자의 노동 조건이나 임금, 근로 환경 등은 원청이 직간접적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지만 법원에서는 원청과 하청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 관계를 따져 파업행위가 적법한지 판단한다. 특수고용직도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와 비슷하지만 자영업자로 보고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노조법상 꾸준한 행위를 통해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을 노동자라고 하는데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구문이 법에 없고, 원청은 원청의 직원에 대해서만 사용자성 책임을 갖는다라는 내용이 없다”며 “노동자들이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판결을 받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리는데 그동안 사용자들이 법망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는 늘어간다.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동안 법망 안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