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23일 방송되는 KBS '자연의 철학자들' 26회는 '베르나르도 신부의 농사 삼매경' 편으로 흙을 만지며 자연과의 관계를 맺는 농부로 살고 싶다는 서명원(베르나르도) 신부의 철학을 들어본다.
사방이 온통 돌밭이라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돌을 줍고 땅을 일궈 지금의 너른 밭이 되었다는 이곳에 '농사 삼매경'에 빠진 신부가 있다. 한번 밭일을 시작하면 어느새 힘든 것도 잊고 그야말로 '삼매경'에 빠져서 16시간 동안 작업을 할 때도 있다는 서명원(70, 베르나르도) 신부.
출발선은 돌밭이었지만 목적지는 성도(成道)라고 말하는 그에게 '농사'는 곧 '수행'이다. 하지만 농부가 되기까지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 3대째 의사였던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어야 할 운명으로 살던 그는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에 관한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5년간 다니던 의대를 그만두고 사제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12년 전 마침내 꿈에 그리던 농부가 되어 자연을 벗삼아 또 다른 수행의 길(도전돌밭공동체)을 가고 있다.
신부의 닭들은 자유롭게 마당을 돌아다닌다. 닭들의 자유를 위해 풀어놓고 기르다 보니 어디서 알을 낳는지 알 수가 없다. 당연히 달걀 손실은 감수해야만 한다. 닭들의 복지를 위주로 한다면 알을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 하고 인간의 복지를 생각한다면 닭장 안에서만 알을 낳도록 해야 하는 선택의 길에서 그는 인간이 아닌 닭들의 복지를 택했다.
한번 자유를 맛본 닭들은 더 이상 가둘 수 없고 가만히 지켜보면 닭들의 세계도 인간만큼 냉혹하단다. 그중에서도 왕따 닭 '수로'는 서신부의 마음이 가장 쓰이는 닭이다. 알에서 깨어났다는 역사 속 인물 '수로' 왕의 이름을 따서 '수로'라고 이름 지었건만 왕이 되기는커녕 마음 편히 모이도 먹지 못한다. 수도원 생활을 하던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수로'를 향한 서신부의 마음은 애틋하다.
서명원 신부에게는 특별한 벗이 있다. 대학교에서 그가 불교학을 강의하던 시절 스승과 제자로 만나 벗이 된 홍진스님이다. 두 사람은 다름 속에서도 변함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기에 밭일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서명원 신부. 그에게 있어 밭일을 하는 것은 부처님 앞에서 삼천배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수행이다. 반면 스님에게는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수행의 의미는 다르지만 자연 속에서만큼은 한 몸 한마음이 되는 신부와 스님. 두 사람의 해학이 넘치는 선문답도 숲의 길처럼 아름답다.
인류가 자연과의 관계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지구와 환경의 위기가 닥쳤다고 말하는 서명원 신부. 손 놓고 구경만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사명감 있는 농부로 살고 싶단다.
자신이 먹는 음식의 일부라도 생산해 내는 것이 흙과의 관계, 즉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관계는 기차역에서 제시간에 기차를 타는 것처럼 모든 게 정확하지 않지만 그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다면 땀 흘린 만큼 정성을 쏟은 만큼 땅은 생명을 키워내고 수확의 기쁨을 되돌려준다.
자연 속에 뿌리내린 농부가 되기 위해 굽이굽이 먼 길, 울퉁불퉁한 길을 돌아 비로소 한국의 농토, 도를 완성해간다는 여주 '도전(道全)리'에 정착한 한국인 서명원 신부의 이야기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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