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내가 다 했다” 80대 부친, ‘친족상도례’ 노린 듯…사실이라 해도 실질 주체는 ‘형’
박수홍이 연예 활동을 하며 벌어들인 돈과 엔터사 법인 자금 약 116억 원 상당을 횡령하고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진홍 메디아붐엔터테인먼트 대표는 9월 13일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박수홍 측이 주장하는 횡령 금액 가운데 법인 자금에 해당하는 21억 원에 대해서 먼저 구속영장을 신청한 뒤, 개인 자금 횡령에 대해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가정주부 신분으로 200억 원대에 달하는 부동산 재산이 형성된 것으로 파악된 박 대표의 아내이자 박수홍의 형수 이 아무개 씨에게도 투자 자금 마련에 대한 소명을 요구했다.
이들의 추가 조사는 10월 4일 오전 10시로 지정됐다. 구속된 박 대표와 아내 이 씨, 박수홍 형제의 아버지 박 아무개 씨(84) 그리고 박수홍의 대질조사가 서울서부지검에서 예정돼 있었다. 이 씨와 박 씨는 참고인 신분이었으며 이들이 박수홍과 마주하는 것은 고소 소식이 처음 알려졌던 2021년 4월 이후 1년 6개월 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사달이 났다. 박수홍을 본 아버지 박 씨가 그의 정강이를 발로 차며 폭언을 내뱉었고 “흉기가 있었다면 진짜 XX했다”라며 협박까지 가한 것. 조사실에서 발생한 참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일방 폭행 사건 자체도 놀랄 만한 일인데 친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내뱉은 저주에 대중들은 충격을 금치 못 했다. “(오랜 세월 가족을 먹여 살렸는데) 어떻게 저한테 그럴 수 있느냐”고 절규하던 박수홍은 결국 충격으로 인한 과호흡을 호소해 병원으로 급하게 이송됐다.
사건 전 박수홍 측이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향을 우려해 신변 보호를 언급했음에도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형 박 대표에 대한 고소 소식이 전해졌을 때 흉기를 소지한 채 박수홍의 집을 찾아갔다는 아버지 박 씨는 이전에도 박수홍에 대해 폭언 및 협박을 가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방검복까지 착용한 채 검찰 조사실로 향했지만 끝끝내 폭행과 협박을 당했다는 것이다. 고소인 보호에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은 서부지검은 공식입장문을 통해 “고소인(박수홍) 측은 대질조사를 거부한 적이 없고 신변 보호 조치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 80대 아버지가 아들을 돌발적으로 때릴 것이라고 쉽사리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박수홍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에스의 노종언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대질조사 전 박수홍의 아버지가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둣발로 (박수홍의) 정강이를 찬 뒤 밀쳤다. 발로 차인 부상은 심하지 않지만 박수홍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은 상태로 119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설명했다. 휴식을 취한 뒤 과호흡 상태는 호전됐으나 오랜 시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 박수홍 측의 설명이다. 결국 대질조사는 이례적으로 ‘전화통화’를 통해 이뤄지게 됐다.
아버지 박 씨는 이번 폭행에 대해서 “부모를 1년 반 만에 만났는데 인사도 하지 않아서 때렸다”며 반성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날 큰아들 박 대표의 횡령 혐의을 놓고 “모두 내가 한 것”이라며 아들을 감쌌다. 박수홍의 개인 재산이나 통장 등에 대한 관리를 80대인 자신이 도맡아서 했고 거기서 돈을 출금한 것도 자신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박수홍의 인터넷 뱅킹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이 무엇인지 묻자 “그런 건 모른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대중들을 더욱 공분케 했다.
아버지 박 씨가 박 대표의 ‘박수홍 개인 자금 횡령’ 혐의에 대해 자신이 한 것이라고 나서는 데엔 ‘친족상도례’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친족상도례는 강도죄, 손괴죄, 점유강취죄를 제외한 친족 간 재산 범죄에 대해 그 형을 면제하거나 친고죄로 정해놓는 형법상의 특례다. 친족 간 발생한 재산범죄에 한정해 국가권력이 간섭하지 않고 친족끼리 처리하도록 해 화평을 지킨다는 것이 취지지만 도리어 가족에게 범죄의 면벌부를 준다는 비판이 지속돼 왔다.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가족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다. 형제자매의 경우 동거를 하고 있을 경우에만 친족상도례가 적용되기 때문에 가정을 꾸려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박 대표는 해당되지 않아 처벌이 가능하다. 아울러 친족상도례는 가족의 개인 재산에만 한정될 뿐, 법인 자금에는 적용되지 않아 박 대표의 법인 자금 횡령은 그대로 충분히 혐의가 인정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박수홍 개인 자금에 대한 횡령 역시 박 대표가 박수홍과 동거하지 않을 때 발생한 횡령액에 한해서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아버지 박 씨는 개인 자금을 횡령한 것이라면 친족상도례 적용을 받게 된다. 박 씨는 박수홍의 직계존속이기 때문에 동거 유무와 관계없이 친족상도례에 따라 혐의를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박 대표는 박수홍의 개인 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추산되는 금액이 전체 횡령액에서 제외돼 예상보다 가벼운 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이는 형사재판에 한정되며 박수홍은 아버지 박 씨와 박 대표, 형수에 대한 민사재판을 통해 횡령액의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관건은 박 씨의 주장을 검찰 또는 재판부가 수용할 것인지다. 형사재판에서 박 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민사재판에도 영향을 끼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인터넷 뱅킹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고령의 부친이 수십 년 동안 이뤄진 거액 횡령에 단순 가담도 아니고 이를 직접 설계 또는 총괄 지시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며 “설사 ‘차남의 재산을 임의대로 쓰자’고 부친이 종용했다 하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 차남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그의 재산을 실질적으로 관리해 온 장남이라면 횡령의 적극적인 주체를 판단해 혐의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