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 실세들과 친분 과시” 법조계선 ‘뒷배’ 이름 거론…법률대리인 “일방적 주장 근거로 구속”
9월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영장실질심사가 열렸다. 이날 검찰은 이 전 부총장과 사업가 박 아무개 씨가 주고받은 메신저 및 통화내용, 녹취록 등을 제시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정치권 인맥을 통해 박 씨 부탁을 들어줄 것처럼 말한 뒤 그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 전 부총장 측은 박 씨로부터 받은 금품에 대해 불법자금이 아니라 빌린 돈이며 정치인으로서 각종 민원을 들어준 것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전 부총장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김상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전 부총장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를 주변인들에게 소개하며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에선 이 전 부총장이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이번 검찰 수사가 문재인 정부 실세에게 불똥이 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법조계에선 이 전 부총장 뒷배로 알려진 특정 인사 이름도 오르내린다.
정치권은 이 전 부총장 구속이 문재인 정부 비리 수사에 물꼬를 틀 신호탄이 될 가능성에 관심을 둔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0월 3일 논평을 통해 이 전 부총장 구속을 언급했다. 양 대변인은 “지난 5년간 민주당이 저질렀던 권력형 범죄 검은 커넥션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전 MBC PD수첩 취재리서처이자 문재인·이재명 대선 캠프에서 연달아 선대위 본부장과 부본부장을 지낸 이 전 부총장 구속이 그 신호탄”이라고 했다.
양 대변인은 “100억 원대 정부 에너지 기금 배정, 마스크 사업 인허가 및 공공기관 납품 청탁 등을 대가로 사업가 박 아무개 씨로부터 10억 상당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업가 박 씨가 검찰 조사에서 ‘이 부총장이 지난 정부 핵심 관계자들과 친분을 과시하며 청탁을 들어줄 것처럼 행세해 금품을 건넸다’고 증언했다”면서 “‘이거 알려지면 민주당은 초상 치를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도 했다.
이 전 부총장 구속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별 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 전 부총장 법률대리인 정철승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 당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만약 이정근 위원장이 구속된다면 민주당엔 피바람이 불 것이라는 사실만은 미리 알려준다”면서 “이 검찰 수사에서 이정근 위원장은 타깃이 아니라 교두보일 뿐이다. 민주당은 이 심각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라고 했다. 이 전 부총장 구속이 결정된 뒤 정 변호사는 다시 SNS를 통해 “이상한 검찰 수사가 점점 더 이상하게 흘러간다”면서 “이제 민주당이 잘 감당해보길”이라고 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 전 부총장 구속에 대해 ‘개인 비리 의혹’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야권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총장이 문재인 정부 당시 핵심 관계자들과 교류가 잦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부분으로 전 정부 전체 비리가 거론되는 것은 비약일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전 부총장이 민주당 험지인 서울 서초 지역구에서 고군분투해온 부분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인정받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그러나 개인 비리 의혹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과 당 핵심 관계자들이 언급되는 상황인 까닭에 당 내부적으로 여러 시선이 공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 가운데 정치권 안팎에선 이 전 부총장이 2017년 2월 27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발족한 시민단체 ‘서문포럼’ 출범식이 회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문포럼은 계층·세대·성별·장애·사회적격차를 뛰어넘는 대통합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취지로 발족한 시민단체로 이 전 부총장이 대표를 맡았다. 출범 시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열흘 전이었다.
야권에 따르면 서문포럼 출범 자체는 2017년 대선을 겨냥한 조직 구성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서문포럼 출범식엔 당시 유력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영상으로 축사를 했다. 현장에 참석한 정치인은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김홍걸 무소속 의원 등이었다.
이 전 부총장 법률대리인 정철승 변호사는 7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전 부총장을 향한 검찰 수사가 상당히 의도된 일종의 프로젝트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면서 “이 전 부총장을 교두보나 발판으로 삼아서 다른 거물들을 잡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 이렇게 보고 있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검찰은 박 아무개 씨의 일방적인 주장을 기정사실화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박 씨는 이 전 부총장을 처음 만날 때부터 모든 대화 내용을 녹취했다. 그리고 검찰은 그 녹취록을 영장실질심사에서 기습적으로 공개했다. 유죄 판결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증거는 피의자에게 반론권이 보장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두 달 반 동안 한 사람만 조사한 이상한 수사고, 편파적이며 공정하지 않은 수사다. 통상 영장실질심사엔 검사가 출석도 하지 않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엔 부장검사를 비롯한 공공수사2부 검사 6명이 총출동했다. 검찰 특수부 에이스들이 이렇게 모든 화력을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이 되지 않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버려서 변호인으로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정 변호사는 “박 씨 피신 조서는 11회가 있는데, 이 전 부총장은 1번 조사 받고 구속이 됐다”면서 “검찰은 박 씨 발언 신빙성에 대한 수사가 결여된 상태로 그 주장을 100% 사실로 간주하고 반론권도 보장하지 않았다. 앞으로 이 수사는 이 전 부총장 반론권을 보장해주는 것만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 전 부총장이 돈을 받아갔고, 유력 정치인 이름은 거론되고 있으니 그 돈이 유력 정치인들에게 흘러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과정 중 하나로 이 전 부총장을 일방적 주장을 근거로 구속시킨 것”이라도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