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은 제도 들여다보고 금감원은 부실 대출 조사 예고…서울시 고소·고발 건 결과도 주목
“국민의 혈세는 어려운 분들의 복지와 지원에 쓰여야 한다. (혈세가) 이권 카르텔에 사용된 것이 개탄스럽다. 법을 위반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상적 사법 시스템에 따라 처리될 것이다.”
9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을 통해 던진 말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산업 진흥’ 목적으로 활발히 진행돼 온 태양광 발전 사업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권 카르텔과 사법 처리 등 직설적인 단어 선택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윤 대통령 강경 발언 이면엔 9월 13일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부패예방추진단)’이 발표한 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 운영실태 표본점검 결과가 있다. 부패예방추진단은 2021년 9월부터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표본점검을 진행했다. 대상은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 중 12곳이었다. 전체 지자체 중 5% 남짓한 표본만 조사했음에도 위법·부당 사례가 2267건 적발됐다. 위법·부당 사례 금액은 2616억 원 규모였다. 이중 태양광 관련 위법·부당 사례 금액은 1800억 원대인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 발언에 국민의힘도 호응했다. 국민의힘은 9월 19일 비상대책위원회의를 통해 태양광비리진상규명특별위원회(태양광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태양광특위 키를 잡았다. 문재인 정부 주요 국정과제였던 태양광 발전 사업 비리 의혹을 겨냥하겠다는 선전포고인 셈.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한때 탈원전 대안으로 대한민국을 열병처럼 휩쓸던 태양광 사업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러나고 있다”면서 “더 이상 혈세 낭비와 부조리를 막고 권력형 비리 사슬을 끊어내는 데 여야가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윤석열 정부 ‘저격수’로 부상한 감사원이 두 팔을 걷어붙일 태세다. 감사원은 특별감사팀을 꾸려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사업과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RPS) 비율 상향 조정 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ZEB는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한 건축물이다. 정부는 에너지 고효율 등급 건물을 ZEB로 인증해 용적률 규제 혜택과 세금 감면 혜택을 부여한다. 그런데 업계에선 ZEB 인증을 소수 기관이 독점하고 있으며, 인증마저도 부실하게 진행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RPS는 발전사업자가 생산 전력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공급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2021년 4월 기존 10%이던 RPS 비율은 25%로 상향 조정됐다. RPS 비율 상향 조정은 한국전력 실적 악화와 더불어 전력 소비에 따른 국민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요소다. 감사원은 RPS 비율을 두 배 이상 갑작스레 올린 배경을 들여다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도 태양광 사업에 대한 현미경 조사를 예고했다. 감사원이 태양광 발전 사업 제도를 들여다본다면, 금융감독원은 태양광 발전 사업의 자금 흐름을 면밀히 조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2017년 이후 은행권이 태양광 산업 전반에 대출한 5조 6088억 원 규모 자금이 조사 대상인 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태양광 산업 대출 자금 중 주요 점검 대상은 ‘담보 초과 대출 건’이 될 것으로 정치권과 금융권은 보고 있다. 금감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태양광 대출 가운데 담보 초과 대출은 총 1만 2498건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금액은 1조 4593억 원가량이다.
국제적으로 금리 인상 기조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담보 초과 대출은 은행권에 부실 대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태양광 사업성이 예상치보다 낮게 평가된다면, 은행권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9월 21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취재진과 만나 “금융권에서 태양광 관련 여신이나 자금 운용이 다양한 형태, 구조, 내용으로 있다고 공유 받았다”면서 “부실 가능성에 대비한 건전성 중심 내용 점검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른 시일 내에 태양광 대출 종류 및 건수, 대출 금액, 담보물 평가액 등 자료를 각 은행들로부터 받아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복현 원장은 검사 시절 자금 추적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감사원 특별감사와 금감원 조사가 결론 나면, 윤 대통령이 언급한 ‘태양광 이권 카르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될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서울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태양광 보조금 사업 관련 고소·고발 조치를 취한 상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9월 19일 서울시의회 임시회의 시정질문에서 “태양광 사업에 대해선 예산 낭비, 사업효과 미흡, 보조금 먹튀 등 여러 문제가 발견됐다”면서 “태양광 보조 사업 전반에 걸쳐 자체 점검·감사를 했고 상당히 많은 업체를 고소·고발했다”고 했다. 오 시장은 “다음달(10월) 중으로 수사 결과가 발표될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여권 관계자는 “오 시장이 언급한 고소·고발 건 수사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한 태양광 카르텔 관련 진상 조사에 있어 자연스러운 지원사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서울시가 주도하는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중심인물로는 86그룹이자 운동권 대부로 알려져 있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 허인회 전 녹색드림협동조합 이사장이 거론됐다.
허인회 전 이사장이 이끌었던 녹색드림협동조합을 비롯한 3개 업체가 2014년부터 2018년 말까지 서울시에 보급된 미니 태양광 보급 대수의 51.6%를 수주해 전체 보조금 절반인 124억 원을 지급받았다. 녹색드림협동조합은 37억 원가량의 특혜성 보조금을 지급 받았다는 의혹 중심에 서기도 했다. 태양광 협동조합 임원들이 조언을 통해 서울시 태양광 정책에 관여한 정황도 포착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태양광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시절 태양광 사업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마스크 사업과 굉장히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면서 “태양광 사업 관련 정부 지원 규모가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누가 더 앞선 기술력을 확보하느냐보다 누가 더 정부로부터 돈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엔 정부나 지자체에 ‘인맥’이 닿으면 정부 지원 사업을 더 많이 진행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면서 “정부 지원 사업에서 제외된 사업자들 사이에선 ‘태양광 사업’이 아니라 ‘좌파 비즈니스’라는 불만이 속출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국민의힘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문재인 정부 태양광 사업을 강력하게 비판하자 감사원과 금감원 등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면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탈북어민 북송사건이 전 정부를 타깃으로 한 1차 공세였다면, 2차 공세는 탈원전 낙수효과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된 신재생에너지 분야인 셈”이라고 했다.
그는 “여의도 일각에선 벌써부터 ‘태양광 살생부’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면서 “감사원과 금감원이 나선 뒤 검찰까지 등판한다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태양광 발전 산업 이면에서 사법적 책임을 질 인물이 가려질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