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전기차 배정 받지 못했지만 최근 긍정적 분위기 감지…2020년대 후반 생산 추진 가능성
한국GM 입장에서 전기차 생산은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GM그룹은 2035년까지만 내연기관 차량을 생산하고, 그 후로는 전기차만 생산할 계획이다. 다만 상업용 대형트럭 등 일부 차량은 예외를 두기로 했다. 한국GM이 전기차를 만들지 않으면 2035년부터는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상실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GM 소속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등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정치권에서도 한국GM이 전기차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 당시 한국GM 부평공장을 전기차와 수소차 등 미래 친환경 차량 생산기지로 전환시키겠다는 내용의 공약을 발표했다. 인천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들도 연일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GM 관계자는 전기차 생산과 관련해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긍정적인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실판 아민 GM 사장은 지난 10월 5일 방한해 한국GM 사업장을 점검했다. 아민 사장은 GM의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는 인물로 메리 바라 GM 회장에 이은 GM의 2인자로 꼽힌다. 아민 사장은 당초 지난 8월에 한국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한국GM의 단체협약 체결이 늦어지면서 10월에야 방한을 하게 됐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에 따르면 김준오 한국지엠지부장은 아민 사장에게 “한국GM의 전기차 유치는 초미의 관심사”라며 “유럽 시장 진출과 GM 본사의 전기차 전환 전략의 성공을 위해 한국GM의 전기차 유치에 아민 사장과 본사의 적극적인 노력과 협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만 사장은 “한국GM의 제조 능력과 품질 우수성은 이미 증명이 됐다”며 “현재 GM 본사의 소형 SUV 전기차 생산은 미정인 상태”라고 답했다.
앞서 지난 9월에는 제럴드 존슨 GM 수석부사장이 한국GM을 찾았다. 김준오 지부장은 이때도 “GM의 전기차 생산 전략의 이익을 위해서도 한국GM의 전기차 유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존슨 부사장은 “각 국가의 수출 전략 검토와 한국GM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아민 사장이나 존슨 부사장이 한국GM에 전기차 물량을 배정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과거와 달리 확실한 거부 의사를 밝힌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전기차 생산 가능성이 생겼다는 평가가 한국GM 내부에서 나온다. 실제 스티브 키퍼 전 GM 사장이 2021년 11월 기자간담회에서 “2025년까지 한국 시장에 새로운 전기차 10종을 출시할 것”이라면서도 “10개 신규 전기차종은 전량 수입될 예정으로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은 없다”고 밝힌 것과 비교되는 분위기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한국GM의 전기차 생산은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전기차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아 당장의 전기차 생산은 투자 대비 큰 이익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수출에 있어서도 물류비 등을 감안하면 미국이나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특히 미국은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킴에 따라 내년부터 한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미국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은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현대차 등도 보조금이 허락하는 선에서만 생산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전기차의 문턱이 낮아지는 시기는 2020년대 중후반으로 예상되며 이때쯤부터 전기차 업체가 자체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즉, 한국GM이 전기차를 생산하더라도 그 시점은 2020년대 후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GM 사측은 일단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GM 내부에서는 트레일블레이저와 CUV(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차량·Crossover Utility Vehicle) 생산을 차질 없이 진행하면 GM에게 경쟁력을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한국GM은 2020년 소형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port Utility Vehicle) 트레일블레이저 생산을 시작했고 2023년부터 새로운 CUV도 생산할 계획이다.
이 두 차량이 전기차는 아니지만 소형차량으로서 GM의 탄소 배출량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은 한 해 동안 판매한 모든 차량의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다. GM은 최근 탄소배출량이 높은 픽업트럭을 대량 생산하고 있어 탄소규제 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트레일블레이저나 신형 CUV를 생산하지 않으면 그만큼 탄소배출량이 증가해 납부해야 할 세금도 늘어나게 된다.
한국GM에 각종 연구개발(R&D) 시설이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한국GM 기술연구소는 GM의 경차 및 소형차 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며 디자인센터 역시 GM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및 디자인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GM의 R&D 전문 법인인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도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앞의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한국GM이 당장 전기차 생산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개발을 하고 있으므로 이를 생산으로 연결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도 “한국GM이 확실한 경쟁력을 보이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지원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