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 장기화 전망 속 신차 배정 계획도 없어…GM “수요 있으면 생산 연장” 노조 “폐쇄 기정사실화”
지난 2월 3일(현지시간) 미국 현지 언론들은 GM그룹이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미국 캔자스 페어팩스 공장, 캐나다 온타리오 잉거솔 공장, 멕시코 산 루이스 포토시 공장의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부평2공장의 생산량은 절반으로 줄인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부평2공장은 지난 2월 8일부터 감산 조치에 들어갔다. 한국GM 관계자는 “상황이 유동적이고,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이슈로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국GM 부평공장은 트레일블레이저를 생산하는 부평1공장과 말리부와 트랙스를 생산하는 부평2공장으로 나뉜다. 인천광역시 한국GM 부평공장 앞. 사진=일요신문DB
한국GM 부평공장은 트레일블레이저를 생산하는 부평1공장과 말리부와 트랙스를 생산하는 부평2공장으로 나뉜다. 중형 세단 말리부와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트랙스는 트레일블레이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진다. 한국지엠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내에서 트레일블레이저는 1000대 이상 팔렸지만 말리부와 트랙스의 판매량은 각각 372대와 332대에 그쳤다. 이는 2020년 1월 판매량(말리부 398대, 트랙스 527대)에 비해 각각 6.5%, 36.1% 감소한 실적이다. 앞서의 한국GM 관계자도 말리부·트랙스의 낮은 인기가 부평2공장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 “그런 것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평2공장의 가동 축소 기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최근 미국 텍사스주의 이상 한파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지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등 미국 현지 반도체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는 악재까지 발생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용 반도체의 공급 리드 타임(제품 주문부터 수령까지 걸리는 기간)은 정상적인 경우 12~16주 내외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26~38주 이상으로 길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이 같은 생산 차질을 감안할 경우 50주 수준까지 길어져 향후 자동차 생산 차질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신규 생산 차량 배정도 없다는 점이다. 한국GM은 2022년 7월까지 말리부와 트랙스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대로라면 2022년 8월부터 부평2공장의 가동은 멈춘다. 앞서 2018년, 철수설이 불거졌던 한국GM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산업은행으로부터 7억 5000만 달러(약 8000억 원)를 지원받았다. 당시 산업은행의 조건은 10년간 국내 시장에 잔류하고, 2종의 신차를 개발·생산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GM은 2020년 부평1공장에서 신차 트레일블레이저의 생산을 시작했고, 다른 신차 1종은 2023년 창원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약속한 2종의 신차 모두 생산 계획이 잡혀 있는 가운데 부평2공장의 자리는 없는 셈이다.
한국GM은 2022년 7월까지 말리부와 트랙스를 생산할 예정이다. 2016년 4월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말리부 신차발표회. 사진=임준선 기자
한국GM 입장에서 부평2공장 폐쇄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기도 어렵다. 2018년 정부가 한국GM을 지원하는 조건에 10년간 국내 공장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산은 관계자는 부평2공장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GM 내부에서는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부평2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한국GM 노조) 측은 “부평2공장 폐쇄는 명백한 구조조정이고 노동자 생존권이 걸려있다”며 “한국GM이 중요한 생산 거점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부평2공장에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를 배정하는 것이 정당하다”라고 전했다.
지난 1월, GM 본사는 2035년까지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GM의 모든 차량이 전기차로 전환되는 가운데 한국GM이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으면 부평2공장뿐 아니라 다른 공장도 장기적으로는 설자리를 잃게 된다. 한국GM은 2013~2017년 창원공장에서 전기차인 스파크EV를 생산한 경험이 있고, 연구개발(R&D) 전담 법인인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도 부평공장 내에 있다. 스티브 키퍼 미국 GM 수석부사장은 2020년 9월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GM의 전기차 미래를 이끌 중심축”이라며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 엔지니어의 4분의 1이 전기차와 관련된 기술 개발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생산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GM 관계자는 “한국의 전기차 시장이 아직은 작은 편이어서 사업 타당성이 나오지 않는다”며 “미국이나 중국에 수출을 하자니 현지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비해 물류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설명했다. 또 전기차 생산은 고용 문제와도 연관된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의 구동 시스템 자체가 모듈화되면서 공정이 상대적으로 간단한 편”이라며 “따라서 전기차 생산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이 필요 없을 수 있다”고 전했다. 모듈화란 자동차 조립공정에서 개별 부품들을 차체에 직접 장착하는 대신 관련 부품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생산해 장착하는 기술 방식을 뜻한다.
한국GM은 수요가 있으면 말리부와 트랙스의 생산 기간을 연장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장담할 수는 없다. 한국GM 노조는 “생산 연장을 검토할 수 있다는 건 사실상 부평2공장 폐쇄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GM 관계자는 “제3국가에서 말리부와 트랙스를 필요로 할 수 있으니 최대한 생산을 늘려가는 쪽으로 논의하겠지만 아직은 장기적으로 가져갈 숙제”라며 “부평2공장 가동을 언제까지 연장하겠다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