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보험‧쇼핑 등 134개 계열사 문어발 확장…불공정 막는 ‘온플법’ 넘어 독점 막는 법안 필요성 제기
지난 15일, 카카오가 입주한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카카오페이, 카카오모빌리티 등 카카오 서비스가 일제히 멈췄다. 카카오톡 이용자는 4000만 명에 달하며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의 한 달 이용자 수도 각각 1542만 명, 219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이후 카카오 서비스 오류가 지속되면서 ‘카카오 블랙아웃’이 도래했고, 소비자‧소상공인‧플랫폼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가 이어졌다.
카카오가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이 이번 먹통 사태의 일차적 원인으로 꼽힌다. 동시에 카카오의 시장 점령과 독점 논란이 재점화하는 모습이다. 한 기업의 서비스가 마비됐을 뿐인데 국민 경제 생활 전반에 대혼란이 발생한 것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카카오는 금융‧쇼핑‧게임‧모빌리티 등 소위 돈이 되는 사업에 가리지 않고 진출했지만 정작 IT 기업의 본업과 연관된 데이터센터 재난대응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카카오가 직접 진출한 사업들
카카오의 전신은 2006년 직원 10명 규모로 시작한 스타트업 ‘아이위랩’이다. 카카오는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규모를 키웠다. 카카오 계열사는 2014년만 해도 36개에 불과했지만 올해 8월 1일 기준으로는 134개로 불어났다. 해외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187개다.
올해 상반기 기준, 카카오의 최대주주는 지분 13.2%를 보유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다. 카카오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73.64%), 카카오페이(47.05%), 카카오게임즈(43.29%), 카카오모빌리티(57.31%), 카카오벤처스(100%), 카카오인베스트먼트(100%), 카카오엔터프라이즈(85.45%), 카카오헬스케어(100%) 등 주요 계열사의 최대주주이며 이들 계열사도 적지 않은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안테나,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이담엔터테인먼트 등 48개의 기업을 두고 있다. 카카오게임즈 산하에는 넵튠, 라이온하트스튜디오, 카카오브이엑스 등 24개 계열사가 있고, 카카오모빌리티도 1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산하에도 야나두, 키즈노트 등 7개 계열사가 있다.
카카오 계열사를 살펴보면 게임 제작사가 20개로 가장 많다. 웹툰 및 웹소설 콘텐츠 제작‧유통기업과 매니지먼트사는 각각 14개, 영상 콘텐츠 제작사가 12개 있다. 이 밖에 플랫폼택시 관련 기업 11개, 대리운전과 주차 관련 기업도 각각 2개가 있으며 카카오페이손해보험, KP보험서비스 등 2개의 보험 계열사도 있다.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인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카카오브레인과 블록체인 기업인 그라운드엑스도 카카오 계열사로 이름을 올렸다. 커머스 기업으로는 지난해 지그재그를 인수해 출범시킨 카카오스타일이 있다.
카카오는 올해 당일‧새벽배송 스타트업인 오늘의픽업과 도보배송 스타트업인 엠지플레잉을 카카오모빌리티에 흡수합병하며 물류 사업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외에 인도네시아 웹툰 서비스 업체인 네오바자르 한국 법인, 웹툰 및 웹소설 기반 스토리게임 제작사 애드페이지, 스마트 헬스케어 플랫폼 전문기업인 네오젠소프트를 흡수합병시켰다.
이처럼 카카오는 크고 작은 업체를 사들여 직접 사업에 뛰어드는 전략으로 고속성장했다. 플랫폼 기업결합에 대한 심사기준이 없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심사망을 비껴갈 수 있었다. 2017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카카오에 44건의 기업결합심사가 있었는데 공정위는 이를 모두 승인했다. 그러는 사이 카카오는 ‘락인(Lock in·기업이 소비자를 해당 브랜드에 묶어 놓으려 함)’ 효과를 통해 소비자들을 카카오의 서비스에 가둬두고 있고, 기존 시장에 진출한 중‧소상공인 및 기업과의 충돌은 현재진행형이다.
#카카오가 다시 쏘아올린 ‘온플법’과 ‘독점규제법’
정치권 및 시민단체의 시선은 ‘온플법’으로 향한다. 온플법은 매출 1000억 원 이상 또는 거래액 1조 원 이상의 플랫폼 사업자와 입주업체 간 관계를 규율한 법안이다.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입주업체에 대한 구매 강제, 경영 간섭 등을 규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온플법은 문재인 정부 때 발의됐지만 공정위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등 관련 부처들이 규제 권한을 두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입법이 지연됐다. 공정위와 방통위가 최종 조율한 안이 지난해 11월 국회에 올라갔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야무야됐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1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온플법에 대해) 과거에는 약간 유보적이었는데 최근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서 적절한 제도적 규율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가 만들어졌다”며 “적절한 제도적 규율이 되지 않고서는 입점업자들과 시민들의 불편함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자율 규제 원칙이 자정작용 상실로 이어진다면 정부의 관리·감독 방식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플랫폼 독점 문제 얘기가 나온 지 1년이 넘었는데 플랫폼 사업자들은 시장에서의 독점으로 인한 폐해와 그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어떻게 예방하고 구제할지를 아직 내놓지 않았다”며 “자율 규제가 방법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라고 전했다.
시민단체에서도 온플법 제정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온플법이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안’이 제정되기까지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선임간사는 “사실 온플법은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행위만을 막는 법안”이라며 “이번 화재 사고로 드러난 문제 인식은 소비자들을 자기들의 플랫폼에만 가둬놓은 카카오를 그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플법을 시작으로 플랫폼 독점규제안까지 제정돼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온라인 플랫폼 분야 기업결합 심사 및 규제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한 바 있다. 매출액, 이용자 수, 데이터 수집 및 활용 능력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해 플랫폼 사업자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인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매출 기준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인 1개 사업자를 독과점 사업자로 추정한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무료 서비스이므로 독과점 사업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 독과점적 지위를 예방하거나 관리감독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법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법 체계에 근거한 지침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 독점규제법을 발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배진교 의원실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만든 반독점법을 기초로 한 법안으로 예외적인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플랫폼 기업의 기업결합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며 “(온라인 플랫폼이 해당 플랫폼을 활용해 재화 등을 판매 및 공급하는) 이해충돌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올해 안에 발의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은 한국에 비해 플랫폼 기업에 강한 규제를 하고 있다. 미국 하원은 지난해 발의한 ‘플랫폼 반독점 패키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의 이해충돌 행위가 발생할 경우 계열분리를 명령할 수 있고, 대기업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신생기업을 인수하는 ‘킬러인수’를 금지한다. EU도 오는 11월부터 일정 요건을 갖춘 플랫폼 기업이 지켜야 할 의무가 담긴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한다. DMA에 따르면 기업들은 자사 제품, 서비스를 노출 순서상 우대해서는 안 되고, 자사가 운영 중인 메신저 서비스를 다른 서비스와 상호 운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국내에서 마중물 역할을 할 온플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지 여부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 및 스타트업 업계는 온플법과 독점규제법이 기본적으로 신규 경쟁기업의 시장 진입을 방해해 오히려 독점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자율규제 이후 별다른 문제가 없었음에도 논의가 멈췄던 법안을 들고 나온 것은 정치적인 행동으로 읽힌다고 지적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공정위가 새 정부 들어 견제 받는 분위기”라며 “(온플법은) 이미 제정을 시도하다 좌절된 법안이기 때문에 다시 제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온플법을 주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번 카카오 사태의 철저한 원인 분석과 함께 사실상의 국가기간통신망이 이윤을 사유화하고 비용을 사회화하는 일이 없도록 민관 차원의 재점검을 당부한 것”이라며 “기업의 책임 방기는 자율규제 원칙과 철학에 배치된다”라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