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전반 컨트롤타워 역할 축소 분위기…미래전략실 수준의 위상은 어렵다는 전망 나와
#삼성 컨트롤타워 부활 가능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0월 12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 위원들과 면담을 가졌다. 준법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날 투명한 준법 경영,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노동인권 보호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준법위 위원들과 삼성그룹 컨트롤타워 부활과 지배구조 개선 방안 등을 논의했다는 뒷말이 흘러나온다. 준법위 측은 “구체적인 면담 내용은 비공개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10월 27일 이사회를 개최한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과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부활 등을 논의할 것으로 내다본다. 삼성 창립기념일인 11월 1일에 맞춰 이재용 부회장의 승진과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구체적인 예상까지 나온다.
이미 재계에서는 수개월 전부터 삼성이 컨트롤타워를 신설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8월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되면서 공식적인 대외 활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이전까지 가석방 신분이었기 때문에 삼성전자 취업이 불가능했다.
이어 지난 9월에는 삼성 계열사 사장 약 40명이 경기도 용인시 삼성 인재개발원에 모였다. 이들 사장단은 이날 외부 강사의 강연을 듣고 최근 현안에 대한 회의를 가졌다.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대규모로 모인 것은 문성현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의 2020년 강의 이후 약 2년 만이다. 다만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오찬만 함께 했고, 강연이나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삼성은 2010년 12월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신설했다. 미래전략실은 삼성의 신사업을 발굴하고 계열사 간 사업 전략을 조정·지원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래전략실은 2016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 및 정유라 씨의 승마 지원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비판 여론에 휩싸였다. 여론을 의식한 삼성그룹은 2017년 미래전략실을 해체했고, 현재까지도 별도의 컨트롤타워는 없는 상태다.
컨트롤타워와 비슷한 조직은 있다. 삼성그룹은 현재 사업 부문별로 사업지원, 금융경쟁력제고, EPC(설계·조달·시공), 세 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각 TF는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이 주도하고 있으며 계열사 간 협력 및 시너지를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M&A 등 대규모 투자결정을 위해서는 총수 주도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삼성그룹의 중장기 성장 전략 마련에도 그룹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이처럼 컨트롤타워가 중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미래전략실 해체 당시에도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평소 재벌개혁을 주장했음에도 미래전략실 해체를 반대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16년 청문회에서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면서도 “삼성 같은 경우 국내 계열사만 60개고, 해외 현지 법인을 합치면 400개가 넘는 기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므로 컨트롤타워 없이 경영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컨트롤타워 신설과 관련해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대기업 사례 살펴보니
하지만 최근 대기업들 사이에서 미래전략실과 비교될 만한 컨트롤타워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컨트롤타워가 오너 일가만을 위한 조직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재계 서열 2위인 SK그룹에는 ‘수펙스추구협의회’라는 협의체가 있다. 각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모여 의견을 나누는 곳이다. 하지만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서로 의견을 조율하지만 그렇다고 각 계열사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다. SK그룹 오너 일가가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SK그룹도 수펙스추구협의회는 그룹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공식적인 컨트롤타워가 없다. 재계에서는 현대차 기획조정실이 컨트롤타워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1998년 기아를 인수한 후 효과를 극대화하기 기획조정실을 신설했다. 현재는 계열사 간 업무 조율보다는 미래사업 전략이나 주요 M&A에 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의 사업은 대부분 자동차 관련 사업이므로 계열사 간 업무를 조율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과 롯데그룹, 한화그룹은 각각 (주)LG, 롯데지주, (주)한화 등 지주회사가 컨트롤타워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주회사는 엄연한 별도 법인인 반면 미래전략실은 법인이 아닌데도 각 계열사로부터 인력을 받아 운영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들 지주회사는 최대주주로서의 경영권 행사와 이를 통한 계열사 관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롯데그룹과 한화그룹의 경우 각각 정책본부, 경영기획실이라는 컨트롤타워가 있었다. 정책본부와 경영기획실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한국어 과외를 받을 때도 정책본부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롯데그룹은 2017년 조직개편 과정에서 정책본부를 해체했고, 한화그룹 역시 2018년 경영기획실을 해체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삼성이 컨트롤타워를 신설하더라도 미래전략실 수준의 위상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는 등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미래전략실과 같은 형태의 컨트롤타워를 신설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삼성 내부에서도 여러 제안들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결정이 중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