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 주주들, DB금융 고원종 대표 사과와 기부 요구에 실적도 부진…DB금융 “재판 진행중, 실적 개선 노력”
증권업계에서는 고원종 DB금융투자 대표가 내년 7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한다. 고원종 대표는 2020년 6연임에 성공하면서 증권가의 대표적인 장수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하지만 DB금융투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최근 실적마저 좋지 않아 7연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직 임원 실형 선고에도 책임론 계속되는 이유
DB금융투자는 2014년 문은상 전 대표 등 신라젠 임원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크레스트파트너’에 350억 원을 빌려줬다. 크레스트파트너는 이 돈을 문 전 대표 등에게 다시 빌려줬고, 문 전 대표 등은 해당 자금을 신라젠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인수에 사용했다. 신라젠은 BW를 매각해서 벌어들인 자금을 크레스트파트너에 넘겼고, 크레스트파트너는 이 돈으로 DB금융투자로부터의 대출액을 상환했다. BW는 미리 확정된 가액으로 신주를 매입할 권리가 있는 채권을 뜻한다.
신라젠에 실질적인 자금 조달 효과는 없었지만 문 전 대표는 BW 인수를 통해 신라젠 주식 약 1000만 주를 획득했다. 문 전 대표는 신라젠 상장 이후 주식을 처분하면서 약 1900억 원의 시세 차익을 얻기도 했다. 결국 문 전 대표 등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신라젠은 2020년 5월 문은상 전 대표 등 전직 경영진의 횡령·배임으로 인한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사유가 발생하면서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는 같은 해 11월 신라젠에 개선기간 1년을 부여했고, 올해 1월에는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다. 이에 신라젠은 이의를 신청했다. 2심 격인 1차 시장위원회는 올해 2월 신라젠에 6개월의 경영개선 시간을 줬다. 이어 2차 시장위원회가 지난 10월 12일 신라젠의 상장 유지를 결정하면서 상장폐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코스닥 기업의 상장폐지 심사는 기업심사위원회, 1차 시장위원회, 2차 시장위원회 등 총 3심제로 진행된다.
신라젠은 상장폐지를 면했지만 주주들의 피해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신라젠의 현재 주가는 1만 원 전후 수준이다. 2017년 한때 10만 5000원을 돌파했던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신라젠 주주들은 신라젠 BW 발행으로 큰 수혜를 본 DB금융투자에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DB금융투자는 신라젠의 상장 주관사를 맡으면서 신라젠 경영진과 공모해 BW 가장납입을 설계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와 관련,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지난 6월 DB금융투자 재무자문서비스 부서에서 근무하던 손승균 전 DB금융투자 부사장과 이성욱 전 DB금융투자 상무보에게 각각 징역 3년과 5년을 선고했다. DB금융투자 법인에는 벌금 5억 원과 판결이 확정되기 전 벌금을 미리 내라는 가납 선고가 내려졌다.
그러나 신라젠 주주들은 손 전 부사장과 이 전 상무보의 처벌과 벌금만으로 사건이 끝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신라젠 주주들은 고원종 대표의 공식 사과와 DB금융투자가 300억 원을 신라젠에 기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지난 9월에는 신라젠 소액주주연대가 고원종 대표 등 DB금융투자의 당시 임원진 4명을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손 전 부사장과 이 전 상무보 관련 판결문에 따르면 문은상 전 대표는 크레스트파트너가 발행한 인수 수수료 7억 원, 관련 이자 약 1340만 원 등을 DB금융투자에 지급했다. DB금융투자는 신라젠이 BW 발행 전후로 발행한 CB(전환사채) 발행 성공보수로도 6억 원을 받았다. 이 밖에 신라젠 기업공개(IPO·상장) 공동 주관사로서의 수수료 약 5억 6100만 원도 지급받았다.
#최근 실적도 울상
DB금융투자로서는 신라젠 주주들의 움직임이 부담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DB금융투자의 최근 실적은 악화하고 있어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DB금융투자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963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216억 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세일즈앤트레이딩(S&T) 부문은 지난해 상반기 178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올해 상반기 291억 원의 영업손실을 거두면서 적자 전환했다. 같은 기간 자산관리(WM) 부문의 영업이익이 200억 원에서 4억 원으로, 기업금융(IB) 부문이 401억 원에서 342억 원으로, 자산운용업 부문이 52억 원에서 17억 원으로 각각 줄었다. 그나마 저축은행업 부문 영업이익이 83억 원에서 90억 원으로 늘었지만 다른 부문의 손실을 상쇄할 정도는 아니다.
주가도 하락세다. DB금융투자의 주가는 올해 10월 20일 종가 기준 4170원이다. 1년 전인 지난해 10월 20일 종가 7230원과 비교하면 40% 이상 하락한 것이다. 주가 하락의 원인으로는 금리가 인상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DB금융투자의 하반기 전망도 좋지 않아 주가 흐름도 당분간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예리 NICE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2022년 금리상승 기조 및 일평균 주식결제대금 감소에 따라 회사의 위탁매매손익이 감소했다”며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채권운용 및 평가 손실이 크게 발생하면서 업계 평균을 하회하는 수익성을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원종 대표의 연임 가능성에도 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고 대표는 2010년 5월 DB금융투자 대표에 취임한 후 6연임에 성공했고, 지난 7월에는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고 대표의 임기는 내년 3월 25일까지다. 신라젠 주주들은 연일 고원종 대표의 연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 관련, DB금융투자 관계자는 “아직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라 법적 판단을 우선 받아봐야 할 것 같다. 1심에서 납부 명령을 받은 5억 원은 아직 관련 절차가 남아 있어 납부하지는 않은 상태”라며 “금리 급등으로 증권사들이 전반적으로 실적이 안 좋아졌으며 모든 사업 부문에서 실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