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현금흐름 둔화되고 현금자산 줄어…건기식·단백질 음료 시장 진출 승부수
지난 10월 17일 푸르밀은 전 직원에게 적자가 누적돼 오는 11월 30일자로 사업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푸르밀은 고 신격호 롯데 창업주 동생인 신준호 회장 일가가 운영해온 기업으로 ‘검은콩 우유’와 ‘비피더스’ 제품 등으로 유명하다. 푸르밀이 유가공 사업을 시작한 지 45년 만에 결국 문을 닫는다. 올해 상반기 푸르밀은 LG생활건강에 회사를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지난 5월 LG생활건강은 푸르밀을 인수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그간 푸르밀의 재무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푸르밀의 매출은 2018년 2301억 원에서 지난해 1800억 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15억 원에서 124억 원으로 늘었다. 부채비율은 2018년 75%에서 대폭 증가해 지난해 507%를 기록했다. 특히 기업이 1년 이내로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이 2018년 143억 원에서 지난해 408억 원으로 늘어났다. 대출이자 부담은 커지는데 업황 전망마저 좋지 않자 결국 사업 종료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푸르밀의 사업 종료로 유업계 전반에 위기론은 힘을 받는 모양새다. 유업계 양강 중 하나인 남양유업은 올해 상반기 영업 적자가 422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347억 원)보다 적자폭이 커졌다. 2019년 3분기부터 12분기 연속 영업 적자다. 매일유업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308억 원으로, 429억 원을 기록한 지난해 상반기 대비 28.2% 줄었다.
유업체들의 올해 상반기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둔화되는 모양새를 보였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기업이 수익 창출 활동을 할 때 발생하는 현금흐름이다. 기업이 외부 자원에 의존하지 않고 신규 투자와 영업능력 유지, 재무구조 개선 등을 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남양유업은 올해 상반기 마이너스(-) 249억 원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78억 원)보다 마이너스 폭이 커졌다. 법인세 납부 등 영향도 있었으나, 영업으로부터 창출된 현금흐름(순영업활동현금흐름)이 지난해 동기보다 124억 원 줄어들며 현금이 유출된 영향이 컸다. 순영업활동현금흐름은 총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법인세, 이자 납부 및 수취액 등을 뺀 금액이다.
매일유업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지난해 상반기 299억 원에서 158억 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순영업활동현금흐름이 407억 원에서 297억 원으로 감소한 영향이다. 지난해 상반기에 없던 배당금 수취액이 20억 원가량 있었지만, 이자와 법인세 납부액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48억 원가량 증가한 영향이 작용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원가율 상승 및 직원 자사주 지급에 따른 일회성 비용으로 영업이익이 다소 감소하면서 영업으로부터 창출된 현금흐름이 줄었다. 또 금리인상으로 인해 관련 이자비용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빙그레는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지난해 상반기 91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321억 원으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같은 기간 운전자본이 337억 원에서 825억 원으로 증가하며 부담이 늘어난 영향이다. 특히 재고자산이 지난해 말 744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1303억 원으로 증가했다. 빙그레 관계자는 “성수기 대비해 재고를 두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재고가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양유업·매일유업·빙그레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줄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남양유업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019억 원으로 지난해 말(1189억 원)보다 소폭 줄었다. 같은 기간 매일유업은 1201억 원에서 430억 원으로 감소했으며, 빙그레는 959억 원에서 637억 원으로 줄었다.
세 업체 모두 올해 상반기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투자활동 현금흐름 중 유‧무형자산 취득액을 살펴보면 매일유업은 지난해 상반기 유‧무형자산 신규 취득액으로 368억 원을 썼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230억 원을 지출했다. 같은 기간 남양유업은 53억 원에서 27억 원으로 취득액이 감소했으며, 빙그레는 280억 원에서 140억 원으로 줄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업체들의 현금이 줄어드는 것은 시장 상황이 안 좋다기보다는 산업 자체의 문제다. 본업 자체의 상황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에, 연관 산업으로 확장을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물론 시장 상황 탓에 투자를 늘리는 게 긍정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협업을 통해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다만 유업체들이 많이 진출한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시장의 경우 레드오션이라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다. 팽창할 수 있는 시장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실제 유업체들은 수익개선을 위한 전략으로 건기식 및 단백질음료 사업을 진출한 상황이다. 매일유업은 2018년 단백질 성인 영양식 ‘셀렉스’ 브랜드를 출시했고, 지난해 10월에는 건강기능식품을 담당하는 셀렉스 사업부를 독립시켜 매일유업의 100% 자회사인 ‘매일헬스뉴트리션’ 법인을 세웠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일헬스뉴트리션은 매출 63억 원, 영업손실 34억 원을 기록했다. 빙그레는 지난해 5월 ‘더 단백’을 론칭해 단백질 건기식 시장에 진출했다. 남양유업도 올해 5월 독일 제약사 프레지니우스카비와 협업해 환자 영양식인 프레주빈 브랜드 제품을 선보였고, 7월에는 단백질 음료 ‘테이크핏’ 브랜드를 출시했다.
이와 관련, 매일유업 관계자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원가율 절감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불필요한 비용은 제거하고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려고 한다”며 “온라인 유통이 가능한 멸균우유 라인업을 확장하는 등 정체된 우유시장에서의 성장을 위해 다양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 셀렉스도 5월까지 누적매출 2000억 원을 넘어서는 등 성장세에 있다”고 말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맛있는 우유 GT 브랜드 등 분유 및 발효유 제품 같은 기존 파워브랜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단백질, 건기식, 플랜트 밀크 시장 확대를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건기식은 경쟁이 치열한 만큼 성장성이 있는 시장이라고 본다. 발효유나 분유에 50년간 노하우가 있다는 점을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빙그레 관계자는 “건기식이나 단백질 음료 등 신사업에 주력하면서, 맛과 기능성 강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