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때 성수대교·대구지하철·삼풍백화점, MB 때 용산 참사, 박근혜 때 세월호 “그때마다 정권 위기 직결”
보수정권 참사 잔혹사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김영삼 정부는 참사로 시작해 참사로 끝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형 참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80%대 역대 최고 수준으로 고공행진하던 문민정부에 대한 지지율도 이 여파로 인해 고꾸라졌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 만인 1993년 3월 28일. 김 전 대통령 고향인 부산의 구포역 인근에서 열차 탈선 전복 사고가 발생해 승무원과 승객 78명이 숨지고, 중상자가 54명 경상자가 144명에 이르렀다. 이로부터 불과 4개월 뒤인 1993년 7월 26일에는 김포에서 출발해 목포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전남 해남군 운거산 인근에서 추락, 승무원과 승객 66명이 사망하고 44명이 중상을 입었다.
임기 첫해 비극은 가을까지 이어졌다. 그해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서해 훼리호가 침몰, 무려 29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듬해인 1994년 10월 21일에는 서울 성수대교 상부 트러스가 무너져 내리면서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성수대교 붕괴는 수도 서울 한복판의 교량이 무너졌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 임기 중반으로 접어들던 1995년에는 더 큰 참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해 4월 28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영남중·고교 앞 사거리 대구지하철 1호선 공사장에서 천공작업 중 가스가 폭발, 사망 101명, 부상 145명 등 246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대참사가 터졌다. 지하철 폭발사고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인 같은 해 6월 29일에는 서울 삼풍백화점이 붕괴, 사망 502명·부상 937명에다 6명이 실종되는 초유의 참사가 일어났다.
김영삼 정부 임기 말이었던 1997년 8월 6일에는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괌에 착륙하려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추락, 승객 254명 중 228명이 사망하는 또 다른 대참사가 발생했다.
참사로 점철되며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가던 김영삼 정부는 결국 1997년 말 외환위기까지 맞으며 그로기 상태로 빠져들었고, 결국 김대중 정부로의 정권교체를 허용하고 말았다.
2008년 2월 보수 정부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는 2009년 1월 20일 발생한 서울 용산 참사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의 보상대책에 반발한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30여 명이 적정 보상비를 요구하며 동네 안 한 건물을 점거, 경찰과 대치하던 중 화재가 발생하면서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발생한 참사라며 정치쟁점화 했고, 이로 인해 임기 초반 지지율 하락세를 극복하고 반등을 가져오던 이명박 정부는 다시 크게 흔들렸다.
이명박 정부 때는 북한의 도발에 의한 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위기감을 부르기도 했지만 용산 참사의 여파가 가장 컸다는 평가다. 현대그룹 CEO(최고경영자) 출신으로 가뜩이나 부자 편향 논란을 불러왔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용산 참사는 오랫동안 부담으로 작용했다.
보편적 복지까지 부르짖으며 같은 당 소속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의 완전한 차별화를 선언,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박근혜 정부는 취임 1년 만에 연이은 참사에 직면했다. 서막은 그의 고향 대구·경북에서였다.
2014년 2월 17일 경북 경주 양남면 마우나오션리조트 강당 건물이 폭설로 무너져 내리면서 강당 안에서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을 진행 중이던 부산외국어대학교 학생들이 매몰됐다. 이 사고로 사망 10명, 부상자 204명이 발생했다.
젊은 대학생들의 희생이 불러온 큰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박근혜 정부를 임기 내내 뒤흔든 대형 참사가 터졌다. 2014년 4월 15일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청해진해운 소속)가 다음날 전남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 생존했고, 304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이 탑승해, 채 피어나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더욱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참사 대응을 위한 최초 지시를 내린 4월 16일 오전 10시 15분부터 오후 5시 15분 중앙재해대책본부를 방문하기까지 7시간 동안 도대체 뭘 했느냐는 이른바 ‘7시간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박근혜 정부는 궁지로 내몰렸다.
반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민주당 계열 정부에서는 보수정부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초대형 참사가 적었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3년 2월 18일 192명의 희생자가 나온 초대형 참사인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이 일어났지만, 노무현 정부로의 정권 교체 직전이라 정권 책임론이 강하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참사가 어떤 특정 정부 때 나지는 않겠지만 역대 보수정부가 초대형 참사를 더 많이 겪은 것은 사실”이라며 “고생해서 수습에 나섰지만 여론을 이끌어나가는 실력이 보수정부가 민주당 계열 정부보다 약해 참사가 곧 정권의 위기로 직결됐다”고 회고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