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어닝쇼크’에 SK스퀘어·SKT도 성과 기대 이하…SK “거시 불확실성 문제, 조만간 가시적 성과 공개”
#믿었던 SK하이닉스의 예상 밖 부진
지난 10월 26일 SK하이닉스 3분기 실적발표는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어닝쇼크’였다. 매출은 10조 9829억 원, 영업이익은 1조 6556억 원.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60.3% 감소한 수치다. 증권가 컨센서스는 영업이익 2조 1000억 원이었다. 실제 실적이 컨센서스에 5000억 원이나 미달한 셈이다.
실적 악화 원인은 날개 없이 추락하는 메모리 가격이다. 지난 10월 D램 고정거래가격은 전 월 대비 22% 폭락했다. 실적발표 후 이뤄진 컨퍼런스 콜은 내년 전망도 어둡게 한다. SK하이닉스는 컨퍼런스 콜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전례 없는 시황 악화 상황에 직면했다”며 “올해 10조 원대 후반인 투자액을 내년에는 절반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반면 경쟁사 삼성전자는 시황 악화에도 투자 지속을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단기적 수급 균형을 위한 인위적인 감산은 고려하지 않는다”며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는 적정 수준으로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메모리 시장 1위 삼성전자가 악화된 업황을 기회로 공세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삼성전자가 치킨게임을 선언하며, 가격 상승기 SK하이닉스의 입지가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간 하이닉스 인수는 박정호 부회장의 최대 공적으로 평가 받아왔다. 박 부회장은 SK그룹 최고의 인수합병(M&A) 전문가로 꼽힌다. 2011 SK하이닉스 인수 당시 SK텔레콤 사업개발실장·사업개발부문장으로 실무를 주도했다. SK하이닉스 인수로 에너지·통신 등으로 한정돼 있던 SK그룹 사업 영역은 첨단 반도체 영역으로 확장됐다. 인수 직후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맞으며 박 부회장의 주가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 SK하이닉스가 기약 없는 실적 악화에 빠진 것이다.
#‘SK ICT 연합’ 출범 알렸지만…
연초만 해도 박정호 부회장의 리더십은 확고해보였다. 박 부회장은 연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CT 전시회 CES 2022에서 SK스퀘어와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ICT 3사의 'SK ICT 연합'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력에 SK스퀘어의 전문투자역량, SK텔레콤의 통신 인프라 AI를 결합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SK ICT 연합은 출범 직후부터 삐거덕대기 시작했다. 당시 간담회에 자리했던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대표가 두 달 뒤인 3월 SK하이닉스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미국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한 자회사 솔리다임 의장직을 맡아 낸드 사업 흡수에 집중하겠다는 설명이 따랐다. 이 전 대표는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러나 최근 이 전 대표는 솔리다임 의장직에서도 물러나 기술전문위원이 됐다. 사실상 현직에서 물러나 ‘고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10조 원을 들여 인수한 인텔 낸드사업부는 SK하이닉스에게 계륵이 되고 있다. 공장이 중국에 있어, 미·중 갈등에 직접 타격을 입은 탓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SK하이닉스의 전면 철수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SK ICT 3사 연합의 중추가 되는 중간지주사 SK스퀘어도 답답한 처지다. SK스퀘어는 당초 ‘투자전문회사’를 표방하며 산하에 SK하이닉스, 11번가, SK쉴더스, 콘텐츠웨이브, 원스토어 등 16개 회사를 배치했다. 적극적인 투자로 신규 계열사를 확보하고 계열사 IPO로 투자 차익을 노리겠다는 전략이었다. 지난해 11월 상장 직후 첫 투자 소식을 알릴 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첫 투자처는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과 메타버스 스타트업 온마인드였다. 가장 ‘핫’한 아이템에 투자했다는 소식이 이어지며 막 출범한 SK스퀘어에게도 장밋빛 행보가 기대됐다.
그러나 올해 들어 가상화폐·메타버스·IPO 붐이 동시에 꺼지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첫 상장 대상으로 꼽히던 원스토어와 SK쉴더스는 증시 침체에 끝내 IPO가 좌절됐다. 이대로는 분사 당시 천명했던 ‘2025년 순자산가치 75조 원’ 목표 달성이 불투명하기만 하다. 지난해 11월 29일 재상장 당시 8만 2000원에 첫 거래됐던 SK스퀘어 주가는 올 11월 1일 종가 기준 3만 6750원으로 폭락한 상태다.
#현재까지 'SKT 2.0' 전략 성과 없어
전통적인 SK ICT 산업 중추이던 통신업도 새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박정호 부회장에 이어 SK텔레콤을 이끌게 된 유영상 대표는 연초 스페인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전시회 MWC 2022에서 ‘SKT 2.0’을 선포하며 “올해를 글로벌 진출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를 올해 80개 국에 출시하고 이프랜드와 대체불가능토큰(NFT)을 연계해 가상과 현실 경제를 연결하겠다는 포부였다. 또 세상에 없던 신개념 AI 비서를 내놓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SKT 2.0 전략의 성과는 전무하다.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는 최근 12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지만 연초 목표했던 글로벌 진출은 소식이 없다. ‘내수앱’에 그쳐 글로벌 메타버스 시장을 이끌고 있는 네이버 제페토 등에 이용자를 선점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AI 비서 에이닷(A.)은 기존 AI 비서와 차별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선 사업에서는 넷플릭스와 지리한 망 사용료 분쟁이 골칫거리다. 최근에는 글로벌 빅테크의 공세에 여론이 악화되며 망 사용료법 입법까지 불투명해지고 있다. 통신사에 대한 시민 반발이 심해지자 여론에 가장 민감한 정치권이 돌아선 것이다.
3사 사업이 모두 원할하지 않자 시선은 자연스레 ICT 3사 연합을 주도한 박정호 부회장에게 모아진다. 올 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텔레콤 회장을 겸임한 데 대해 ‘묘한 타이밍’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SK그룹은 “최 회장이 SK텔레콤의 AI 컴퍼니로의 변신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관측에 대해 SK그룹 측은 박정호 부회장의 전략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다. SK그룹 관계자는 “거시경제의 불안정성 때문에 당초에 계획됐던 다소 미뤄졌다”면서 “ICT 3사 연합과 관련해서는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들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