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영 용산구청장 입건, 오세훈 시장은 용산구 심의 보고 여부가 변수…일각 “이 장관 지키려 한 총리 내줄 수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자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11월 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윤희근 경찰청장 4명의 공직자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사세행 측은 “참사가 발생한 10월 29일은 3년 만에 마스크 없는 핼러윈 축제 참가 인원이 폭증할 것이라는 언론보도 등으로 이미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행정조치 필요성이 매우 높았다”며 “언제라도 안전사고가 발생할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는데도 통행 정리 및 인파 통제 등 행정적 조치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참사를 예견하고 행정조치를 할 수 있었는데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책무로서 직무를 고의로 방기해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오게 했음으로 형법상 직무유기 혐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참사의 직접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공직자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꼽는다. 실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11월 7일 박희영 구청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입건했다.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대형 인파 운집으로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해 353명의 사상자를 초래했다는 이유다.
박희영 구청장은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용산구청에서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자, 지역축제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안전관리 의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핼러윈데이는 축제가 아니라 일종의 현상”이라고 발언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박 구청장은 거짓말 해명 논란에도 휘말렸다. 박 구청장은 참사 이틀 전 열렸던 핼러윈 대책 회의에 불참한 것에 대해 ‘부구청장 주재가 관례’라고 사유를 들었지만, 과거부터 줄곧 구청장이 해당 회의를 주재했던 것이 확인되면서 비판을 받았다. 또한 참사 당일 경남 의령에 간 것을 두고 박 구청장은 지역 행사 초청을 받아 지방 출장이었다고 말했지만, 집안 제사에 참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오후 8시 20분과 9시 30분 두 차례 참사 발생 골목 맞은편 ‘이태원 퀴논길’ 일대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설명과 다른 동선이 공개되면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박 구청장 측 관계자는 “사고 직후 수습으로 경황이 없었다”며 “거짓말을 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찰이 박 구청장을 입건했지만 형사처벌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박희영 구청장은 기초자치단체장으로 관할 지역 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면서도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구체적 법률 위반이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업무상 과실치사는 입증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법조인은 “수사를 통해 더 혐의가 밝혀져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참사 전에는 구청장으로서 안전대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았고, 참사 발생 이후에도 대응이 미흡했다. 직무유기죄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서울시 재난관리책임기관장으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축제를 개최하려면 해당 축제가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그 밖에 안전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시행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치경찰 사무의 총 책임자는 지자체장이라는 해석이다. 군중통제를 통한 질서유지 등은 자치경찰의 역할인데, 오 시장이 지자체장으로서 이를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참사 당시 서울에 없었다.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출장을 수행 중이었다. 오 시장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참사 상황을 유선으로 보고 받고, 출장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오 시장은 참사 사흘 만인 11월 1일 입장발표를 통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서울특별시장으로서 이번 사고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많은 사람들이 밀집하는 장소나 행사에 대해서도 안전사고 위험이 없도록 지금부터 촘촘히 챙기고 정부와 함께 관련 제도를 완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과와 함께 오 시장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시의 책임소재를 묻는 질문에는 “앞으로 수사기관에 수사가 예상된다”며 “한 시민단체가 고발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조만간 수사가 계속될 거고 자연스럽게 책임의 소재가 밝혀지리라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오세훈 시장의 법적 책임을 추궁하고 나설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최고위원회 한 관계자는 “당 내부적으로도 오세훈 시장에게는 직무유기 혐의를 제대로 따져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 밝혀낼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오 시장의 형사처벌은 용산구 차원에서 안전관리계획 등을 서울시로 심의를 올렸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법조계 관계자는 “이태원 축제는 기초지자체 단위 행사로 볼 수 있다. 그럼 용산구청에서 안전관리 대책을 세워 서울시로 심의를 올려야 한다. 그 심의 과정이 있었으면 서울시와 오 시장도 법적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며 “다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용산구청이 제대로 된 안전관리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심의를 올린 과정이 드러나지 않으면 오 시장에게 법률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이상민 장관과 한덕수 총리에 대해서는 정치적 책임 문제가 거론된다. 특히 이상민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곳으로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다” 등 실언을 쏟아내며 경질 요구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장관은 7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책임’을 묻자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이 없다”며 경찰로부터 치안 관련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5개월 전인 지난 6월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이 장관은 “정부조직법 규정에 따라 행안부 장관이 치안 업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더라도 경찰청의 업무가 과연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지휘·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발언을 뒤집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럼에도 이상민 장관은 사퇴 의사가 없어 보인다. 이 장관은 11월 8일 국회 예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퇴 요구에 대해 “현재 위치에서 내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사고 뒷수습,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재발방지책 (마련)이 더 급선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대통령실에서 사퇴 요청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그런 건 없었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상민 장관을 유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과 지난 2일과 3일 연달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 조문을 함께한 것을 두고 소위 ‘재신임’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는 윤 대통령이 친윤계 의원들과 통화에서 “당이 왜 이리 ‘매가리’가 없나, 당은 도대체 뭐하는 것인가. 장관 한 명 방어도 못하나”라고 야권의 이 장관 사퇴 파상공세에 여당이 적극 대응하지 못한 것에 불만을 내비쳤다는 후문을 전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11월 1일 열린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문답 과정 농담조 발언을 하는가 하면,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뭇매를 맞고 거센 사퇴 요구를 받았다. 그럼에도 한 총리 또한 “아직 사퇴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을 지키고 한덕수 총리는 경질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이태원 참사 이후 밝혀진 정부의 보고 시스템을 봐도 한 총리는 등장하지 않는다. 책임총리라고 임명됐는데 허수아비 총리였던 것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라며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측근’인 이 장관을 살리기 위해 한 총리는 희생양으로 내줄 수도 있다. 다만 그 정도 수준에서 성난 민심이 잠재워질지는 미지수다”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신속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결국 ‘책임론’은 윤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가고 있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책임론에 대해 10일 “과학에 기반을 둔 강제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이태원 참사의 실체적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슬픔에 잠긴 유가족을 대하는 국가의 도리”라며 “막연하게 정부 책임이라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 다수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대응이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조사한 ‘이태원 참사 관련 정부의 사태 수습 및 대응에 대한 평가’ 여론조사 결과 ‘적절하지 않다’가 70%로 나타났다. ‘적절하다’는 20%, ‘모름·응답 거절’은 10%에 불과했다. 특히 1차적 책임 소재에 대한 질문에는 ‘대통령·정부’가 20%로 가장 높았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정부는 참사가 발생하면 정치적 책임을 묻고 사태를 빨리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수사만을 강조하면 책임자들에 대한 처분을 계속 미루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도 참사 일주일이 지나서야 나왔다. 그것도 국민들 앞에 서서 공식적으로 한 게 아니라 종교 추모 행사에서 해 ‘정말 국민에게 사과를 한 게 맞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이렇게 참사 정국을 계속 끌고 가면 정부여당 입장에서 좋을 게 없다.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8월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을 비판하며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그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인데, 문재인 정부는 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한 발언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