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이어 한국공항도 소송, 계열사 노조 협의회 대응 방안 논의…한국공항 “정년연장 전제 시행”
#한진그룹 임금피크제 소송 이어지는 까닭
지난 10월 한국공항 전‧현직 직원 169명이 한국공항을 상대로 임금피크제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63억 원이다. 한국공항을 비롯한 한진그룹 계열사들은 2016년 정년을 만 56세에서 만 60세로 늘리는 대신, 만 56세부터 퇴직 전까지 매년 전년 임금의 10%씩 줄이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임금 감액률이 과도하다는 지적과 함께 실질적인 업무량 조정이 없자 직원들의 불만이 쌓였고 결국 소송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임금이 2020년과 지난해 2년간 동결되면서 임금피크제에 대한 내부 반발이 커졌다. 노사 합의로 도입한 제도라도 차별이 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된 주장이다.
11월 15일 서울 강서구 민주한국공항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서명호 공공운수노조 민주한국공항지부 지부장은 “임금피크제 3년 차 직원 중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기 위해 회사에서 보존 수당을 줬지만, 감액률이 상당해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근로자들이 적잖았다. 특히 한국공항은 5~6명씩 한 조로 편성돼 일하는 경우가 많아 업무량을 줄일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선 신규 채용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진그룹 계열사의 임금피크제 소송은 한국공항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9월에는 한국공항의 모기업인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 68명도 대한항공을 상대로 44억 원 규모의 임금피크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송민섭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 지부장은 “대부분 지금은 퇴직한 직원들이 소송에 참여했다. 다른 기업과 비교했을 때 과도하게 불합리하다는 점이 문제다. 다른 기업들은 보통 만 60세가 되기 2년 전쯤부터 임금 삭감을 하고 업무나 책임을 줄여준 경우가 적잖다. 내부적으로 느끼기에 업무 강도나 업무량 및 근무시간은 이전과 동일한데 임금만 매년 삭감되고 있다. 인건비 절약에만 방점을 찍는 것 같다는 게 일부 근로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한 대한항공과 한국공항뿐 아니라 한진그룹 내 다른 계열사도 임금피크제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항공, 한국공항, 진에어, (주)한진관광 등 한진그룹 10개 계열사의 다수 노조 노조위원장들은 11월 15일 노동조합 협의회를 열고 임금피크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협의회에서는 각 계열사의 임금피크제 현황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희비 엇갈리는 판결, 소송 향방은?
임금피크제는 노동자가 일정 연령에 도달한 뒤 고용 보장 또는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다. 특히 2016년부터 개정된 ‘고용상 연령 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고령자고용법)’ 시행에 따라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서 확산했다. 임금피크제는 중‧장년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줄이고 청년의 일자리 기회를 늘리기 위해 도입됐다.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정년의 변경이 수반되지 않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와 제도 도입과 동시에 노사가 정년을 연장하기로 합의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로 나뉜다.
임금피크제 소송은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관련 판단이 나온 이후 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난 5월 대법원은 A 씨가 과거 재직한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피크제 무효 및 임금차액 지급청구 소송에서,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이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무효이니 삭감됐던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삭감한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상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효력에 대한 판단 기준도 처음 제시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 △대상 조치(임금삭감에 준하는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의 저감)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이다.
대한항공과 (주)한국공항의 사례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해당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에서 제시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유효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고용노동부는 “그간 판례에 따르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원칙적으로 연령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나, 명목상 임금피크제일 뿐 실질적으로 비용 절감, 직원 퇴출 등의 목적으로 특정 연령의 근로자의 임금을 과도하게 감액한 사례는 연령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직 대한항공과 (주)한국공항 임금피크제 소송의 결말은 예단할 수 없다. 최근 KT는 근로자 1300여 명으로부터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깎인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당했지만, 1심 재판부는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정년 연장’이 임금 삭감에 대한 보상 조치였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당시 KT가 70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점도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끼쳤다. 2015년 KT는 노사 합의를 통해 정년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만 56세부터 매년 10%씩 임금을 깎는 방식을 도입했다.
한국공항과 대한항공 전‧현직 근로자를 대리하는 유영규 법무법인 이현 변호사는 “5월 나온 임금피크제 무효 관련 대법원 판단 기준에 비춰봤을 때 (한국공항과 대한항공의 사례가) 충분히 충족된다고 봤다. KT는 사실상 적절한 대안적 조치도 일부 있었다. 노사 합의로 임금피크제가 일부 조정되더라도 소송은 별개로 이뤄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소송 및 임금피크제 조정 계획은) 소송 진행 중인 사안이라 입장을 밝히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공항 관계자는 “당사의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을 전제로 시행된 사항이다. 제도 개선 및 소송 대응 계획은 현재 확정된 사항이 없으며 다방면으로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