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자 최대 20만명 추정, 경기도 조례 있지만 실질적 역할 못해 “이제 국회가 응답할 때”
안김정애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는 16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 카페에서 일요신문과 만나 이같이 말하며 기지촌 미군 위안부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안김 대표는 "사법적인 판단은 내려졌고 이제는 입법이다"라며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과 명예 회복을 위해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지촌여성인권연대는 미군 기지촌 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 원고인들, 경기여성연대 등과 함께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이날 오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특별법은 미군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 여성 및 그 유족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지원금과 의료지원금 등을 지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기지촌 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숙자 씨는 기자회견에서 "주변의 멸시와 차별 속에서 지낸 우리들의 눈물이 씻겨나갈 수 있도록 국회의원님들이 우리를 위한 지원법을 만들어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피해자 김은희 씨는 "(일부 기지촌 여성들은)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 우리는 사회의 낙인과 비난 속에서 숨죽이고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생겼다"며 "개인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정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피해자는 발언 중간중간 감정에 북받친 듯 울먹였다.
정춘숙 의원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이상, 더 이상 국회는 특별법 제정을 미루지 않을 것"이라며 "저 역시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으로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군 위안부 문제는 군사주의에 의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 또는 성노예화라는 측면에서 한반도 근현대사에서 발생한 일본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유엔군 위안부와 동일하다"며 "주한미군이 조성한 기지촌은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이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지난 9월 29일 미군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정부는 원고들(미군 위안부들)에게 각 300만~7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국가가 주도해 미군 기지촌을 조정·관리·운영하고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정당화 내지 조장했다"며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2014년 6월 처음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은 122명이었지만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이 중 25명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숨졌다.
2017년 1월 1심 판결에선 성병치료소인 낙검자 수용소에 격리된 적 있는 여성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018년 2월 2심 판결에서 국가의 성매매 조장 행위 또한 인정돼 배상금이 증액됐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국가배상을 받은 기지촌 여성들이 특별법 제정까지 요구하는 건 소송에 참여했던 피해자 외에도 수많은 미군 위안부 종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김 대표는 "최대 20만 명으로 추정된다"며 "사법적인 판단은 원고들에게만 해당된다. 20만 명의 명예 회복을 위해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법 제정은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여성 대상의 성폭력을 공론화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인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군 기지촌 위안부라고 불리는 여성들은 성매매 제도의 피해자"라며 "특별법을 통해 위안부가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이 보편적 상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라며 지금도 손가락질하는 일본의 극우, 한국의 반인권 세력을 뿌리째 흔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지촌 여성들의 특별법 제정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대와 20대 국회 때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번번이 국회의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정춘숙 의원이 2020년 12월 대표발의한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은 여전히 논의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정 의원 법안을 2021년 2월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검토한 보고서에 따르면 관련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이 진행 중으로, 사법절차 완료 후 제정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미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법률적으로 공식화할 경우 동 사안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유사한 사안이라는 인식을 창출하여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사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고려하여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기지촌 여성들은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으니 "이제는 국회가 응답할 때"라는 입장이다. 위안부라는 용어 사용에 대해 안김 대표는 "우리가 만들어 낸 용어가 아니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 Comfort Women으로 전시에 성적대상화 된 여성을 지칭한다"며 "과거 국가도 공문서에서 위안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정 의원 법안과 유사한 조례가 경기도에선 이미 제정됐다. 경기도의회가 2020년 5월 제정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는 피해 여성에게 생활지원금과 의료지원금 등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정 의원 법안과 비슷하지만, 진상 규명에 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해당 조례가 실질적인 역할은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재균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일 경기도 여성가족국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 "2021년 기지촌 여성 인권 증진 예산이 3500만 원 있었다. 2022년엔 그나마도 없어져 버렸다. 2023년에는 반영됐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김미성 경기도 여성가족국장은 "반영이 안 됐다"며 "먼저 지원 대상을 특정하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아울러 "기지촌이 경기도에만 있지 않고 전국에 있었다"며 "국가가 책임을 지고 무엇을 지원할 건지 법률에서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재균 위원장은 "경기도 조례가 있으면 경기도에서 선제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다. 조그맣게라도 시작을 해야 한다"며 "집행부 의지가 없다고 밖에 안 보인다"고 질타했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