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대 24연승’ 신진서 ‘압제’ 맞서 인생바둑 양딩신 “끝내기서 겨우 우세 확인, 무거운 짐 내려놔”
지난 11월 16일 서울 한국기원과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온라인 대국으로 펼쳐진 제27회 LG배 준결승 2국에서 신진서 9단이 중국 양딩신(楊鼎新) 9단에게 252수 만에 흑으로 불계패했다. 이 패배로 신진서는 세계대회 연승 기록이 19연승에서 중단됐고, 외국 기사를 상대로 세운 연승 기록(중국 기사 상대 24연승 포함)도 32연승으로 마감했다.
#양딩신이 ‘인생 바둑’을 뒀다
전기 대회 결승 진출자 간의 대결답게 이번 준결승전 역시 초반부터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미세한 흐름이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AI(인공지능)의 승률그래프도 170수 언저리까지 승률 1% 내외 차이를 가리키며 쉽지 않은 승부였음을 나타냈다. 팽팽하던 흐름은 종반 상변 끝내기에서 양딩신 쪽으로 기울었다. 신진서가 252수에서 돌을 거뒀지만 끝까지 계가를 한다면 1집반에서 2집반 정도의 미세한 승부였다.
바둑TV 해설의 송태곤 9단은 “신진서 9단이 못 둔 바둑이 아니다. 양딩신 9단이 인생 바둑을 뒀다고 본다. 마지막까지 신 9단의 전매특허인 ‘흔들기’가 이어졌지만 양딩신 9단이 끝까지 잘 견뎠다”면서 “신진서 9단이 세계 최강이라지만 양딩신 9단도 초일류 기사이기 때문에 실력은 백지 한 장 차이도 되지 않는다. 질 수도 있는 것이고 오히려 신 9단의 중국 기사 상대 24연승이 신기했던 것”이라고 평했다.
양딩신의 승리에 중국은 축제 분위기다. 오랜 시간 신진서의 압제(?)에 시달려왔던 중국으로서는 오랜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은 승리였을 것이다. 신진서가 돌을 거두자 오른팔을 번쩍 치켜 올리며 기쁨을 나타냈던 양딩신은 대국이 끝난 후 가진 현지 인터뷰에서도 솔직하게 기쁨을 나타냈다.
그는 “신진서와의 대국은 언제나 내게 많은 부담을 준다. 당금 세계 1위의 프로기사이고, 나는 그에게 최근 5연패를 당해 자신감도 많이 잃었다. 오늘 대국 역시 나는 마치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우를 온몸으로 맞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국은 순탄치 않았지만 중반 좌하귀에서 흑 3점을 잡으면서 편하게 느꼈고, 마지막 끝내기 단계에서 겨우 우세를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 기쁘다”고 승리 소감을 말했다.
직전 열렸던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 최정 9단에게 패했던 느낌도 솔직하게 말했다. 기자의 “최정 9단에게 패하면서 당신의 바둑을 의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양딩신은 “삼성화재배에서 최정에게 패했던 날은 정말 슬펐다. 또 당황스럽기도 했다. 여자 기사지만 최정도 강하기 때문에 내가 질 수도 있겠지만 많이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빨리 잊고 다음 신진서 9단과의 승부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준비도 나름 했었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LG배 결승은 양딩신-딩하오의 중중대결
양딩신의 결승 상대는 중국의 딩하오(丁浩) 9단이다. 딩하오는 하루 전 열린 강동윤 9단과의 준결승전에서 승리하며 결승에 선착했다. 2000년생으로 신진서와 동갑인 딩하오는 중국의 떠오르는 별이다. 그동안 유망주 군에 머물러 있었지만 최근 2년간 중국 내 창기배(결승에서 양딩신에 2-0 승리), 국수전(결승에서 커제에게 승리), 대기사전(결승에서 구쯔하오 9단에게 승리) 우승으로 3관왕에 오르면서 세대교체의 선봉에 서 있는 기사다.
양딩신은 “신진서 9단에게 승리하면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다. 지금은 이 상황을 좀 더 즐기고 싶다. 딩하오 9단과의 결승전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양딩신 9단과 딩하오 9단은 내년 2월 6일부터 3번기로 우승을 다툰다. LG배에서 중국 기사 간의 결승전은 양딩신 9단이 결승에서 스웨 9단을 꺾고 첫 우승을 이뤘던 23회 대회 이후 4년 만이다.
한편 신진서는 패하긴 했지만 준결승 패자 상금 2400만 원을 보태 연간상금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기록은 2014년 이세돌 9단이 기록했던 14억 1030만 원이며, 신진서는 현재 14억 1750만 원의 상금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연말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남아있어 상금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제27회 LG배의 상금은 우승 3억 원, 준우승 1억 원. 제한시간은 각자 3시간에 40초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그동안 한국이 12회, 중국 11회, 일본 2회, 대만이 1회 우승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