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건넸다는 사업가 박씨 정치권 인맥 과시 녹취 생활화…노영민 등 몇몇 야권인사들 수사선상 올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는 뇌물·불법 정치자금 혐의를 받고 있는 노웅래 민주당 의원의 출국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노웅래 의원은 2020년 2월부터 12월까지 사업가 박 아무개 씨로부터 사업청탁 명목으로 총 5차례에 걸쳐 6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노 의원 자택에서 압수한 현금 3억 원 중 박 씨로부터 받은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 6000만 원이 섞여 있을 것으로 의심 중이다. 다만 노 의원은 “결백을 증명하는 데 정치 인생을 걸겠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노 의원은 MBC 기자 출신으로 2004년 서울 마포구갑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내리 4선을 지냈다. 내년 6월 초까지 민주연구원 원장 임기가 남았지만, 11월 11일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 직후 정치권에서는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들의 사퇴 압박이 작용한 것이란 해석이 잇따랐다. 노 의원 역시 사의 표명 이유로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섰으니 길을 터주는 게 맞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 의원을 향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노 의원이 검찰의 칼날을 미리 예감하고 직을 내려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노 의원이 사퇴할 당시는 이 전 부총장이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되면서 박 씨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쏠렸을 때다.
이 전 부총장은 박 씨로부터 사업 관련 청탁과 함께 10억 원가량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미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박 씨가 노 의원에게 뇌물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총장 공소장에는 “이정근이 ‘나는 유력 정치인인 B 민주당 의원 측근이고, C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친하다’ 등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과 친분을 과시하며 청탁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고 적혀져 있다. 다만 이 전 부총장이 노 의원을 언급했다는 내용은 공소장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치권의 시선은 박 씨에게 쏠렸다. 박 씨는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 인사들과 오래된 유착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아내 조 아무개 씨는 대학 특수체육학과 교수로, 오래 전부터 노 의원 등 야권 측 인사들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박 씨가 아내 조 씨를 통해 노 의원에게 청탁하며 금품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씨는 2008년 11월 ‘부산자원 특혜 대출 사건’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부산자원 대표를 지냈던 그는 당시 로비를 통해 은행 등에서 1630억 원을 부당 대출받은 혐의를 받았다. 박 씨는 결국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친노무현계 인사였던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과 송기인 신부와의 친분관계가 거론됐다. 이 전 부총장에게 청탁할 당시에도 100억 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를 보여주며 친노무현 인사들과의 인맥을 과시했다는 후문이다.
이어 박 씨는 2014년 ‘포스코 송도사옥 매각 사건’의 당사자로도 이름을 날렸다. 송도사옥 지분을 갖고 있었던 박 씨는 높은 가격에 팔리길 원했고, 서청원·이우현 전 새누리당 의원과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을 접촉했다. 특히 정 전 총리로부터 포스코건설 매각 관련된 정보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다.
박 씨는 정계 인사 등을 접촉할 땐 항상 녹취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부총장 수사에도 박 씨가 저장해둔 녹음 파일이 결정적 증거로 활용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번 검찰 수사로 야권 인사가 줄줄이 수사망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박 씨 녹취록에 노 의원 외에도 전 정부 유력 인사들 이름이 여럿 등장했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이 전 부총장이 문재인 정부 당시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활용해 각종 청탁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부총장이 자랑했던 친분 중 정치권에서는 친문계 인사들이 많다는 것. 박영선 전 의원(당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롯해 성윤모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류영진 민주당 부산광역시당 부산진구을 지역위원회 위원장 등이 해당 리스트에 올랐다.
최근 새롭게 거론되는 이는 노영민 전 비서실장이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2020년 CJ 계열사 상근고문으로 취업하는 과정에 노 전 실장이 개입한 사실이 있는지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총장은 21대 총선 낙선 후 국토교통부 추천으로 CJ대한통운 자회사인 한국복합물류 상근고문으로 임명됐는데, 당시 노 전 실장의 입김이 있었다는 게 검찰 측의 주장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박 씨를 만나 노 전 비서실장을 언급하며 선거비용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JTBC가 입수한 한 녹취록에 따르면 2021년 1월 노 전 비서실장이 임기를 마친 후 이 전 부총장과 박 씨 등과의 통화에서 노 전 실장은 박 씨에게 “이 전 부총장과 옛날 인연이 있어 각별하게 지낸다”며 “회장님이 많이 도와주신다고 한다. 앞으로 좀 많이 도와 달라”고 했다. 또한 2020년 8월 이 전 부총장은 ‘그동안 노 실장님에게 돈을 가져다주지 않았는데 이제 비즈니스 관계로 전환하려 한다’는 취지로 말한 뒤 박 씨에게서 현금 5000만 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다만 노 전 실장 측은 “박 씨와는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전 부총장의 ‘정치권 청탁’이 실제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야권 인사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노웅래 의원이 연루된 용인 물류단지 개발 청탁은 이 전 부총장의 ‘청와대 청탁’과도 연결된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일대에 약 20만 평 규모 2575억 원이 들어가는 사업으로, 2020년 2월 국토교통부가 사업성 등을 따져보는 실수요검증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검찰은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노 전 비서실장 등도 수사선상에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전 정권 수사로 번지자, 민주당은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전방위적 대응에 나섰다. 특히 이재명 대표는 “노 의원이 억울함이 없도록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을 지원하자. 세심하게 잘 살펴봐 달라”고 당 법률위원회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검찰 수사로 당이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검찰의 정치탄압에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다 같이 이겨내자는 분위기”라고 당 상황을 전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