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 치밀하게 도주 준비해 검거 난항…검찰 ‘조력자 엄벌’로 고립시키는 전략 선택
검거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전 회장은 앞서 검찰 수사를 피해 수개월 동안 숨어 있었던 경험도 있다. 때문에 검찰도 도피를 돕고 있는 이들을 구속하며, 김 전 회장 조력자 제거에 집중하고 있다. 불똥은 법원으로 튀는 모양새다. 김봉현 전 회장의 신병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결정을 한 판사가 고발당했다. 무혐의 처분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법원 내에서 ‘영장 관련 결정 기류가 바뀔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장기 도주극 벌일 가능성
김봉현 전 회장을 잘 아는 관계자는 “도주 후에는 연락이 닿고 있지 않지만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도주 후 국내에 머무르고 있다더라”며 “해외를 나가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검찰과 경찰은 김봉현 전 회장이 국내에 머무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도주하면서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 등 6대를 특정했는데, 와스(WASS·수배 차량 검색 시스템)를 통해 김 전 회장과 관련 차량의 이동 정보를 쫓고 있다. 이 차량들은 시내 주요 도로 및 외곽 경계 지역에서 검색됐다고 한다. 또한 검찰은 김 전 회장이 호텔에서 활보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서울 강남구에 있는 호텔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국내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고 조심스레 밝혔는데, 관련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김봉현 전 회장의 얼굴이 나온 사진이나 집에서 나오는 CC(폐쇄회로)TV 등을 공개한 것은 국내 체류를 염두에 두고 공개수배를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해외로 도주했다고 판단할 경우, 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검찰은 아직 김 전 회장에 대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적색수배를 신청하지도 않았다. 수사당국의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 되면 밀항업자들도 절대 나서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처벌받을 것을 알기에, 거액을 줘도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스레 김 전 회장이 국내 모처에서 장기 도주극을 벌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김 전 회장은 앞서 2019년 12월에도 라임 관련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국내에서 5개월 동안 도주했던 바 있다. 이번에도 수사 동선을 따돌리기 위해 휴대폰 유심(USIM)칩을 바꾸고, 현금을 미리 마련해 두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앞선 김 전 회장의 지인은 “10년 넘게 구속될 수 있다는 게 두려워서 도주를 선택한 것 같다”며 “원래 해외로 나가는 것을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중국이 지속적으로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밀입국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이 때문에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주하지 못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동남아로의 밀항은 중국에 비해 거리가 멀고 그만큼 위험 부담도 높다.
#도피 조력자들 구속
검찰은 김봉현 전 회장의 도주를 돕고 있는 지인들을 수사하며, 조력자 제거에 나섰다. 11월 22일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나는 과정에서 도피를 도운 혐의로 연예기획사 관계자 A 씨와 김 전 회장 친누나의 남자친구 등 2명을 구속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도주한 지 이틀 뒤인 13일 즈음 이들이 김 전 회장과 휴대전화 등으로 연락한 사실을 파악하고 범인도피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회장과 텔레그램 등으로 연락하고 도주를 도와준 것으로 확인된 관계자를 긴급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연예 관계자 A 씨는 앞선 2019년 도주 때에도 김 전 회장을 도왔던 인물이다. 당시 A 씨는 서울 강남의 호텔 등에서 김 전 회장이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지난해 7월 김 전 회장이 여러 조건을 전제로 보석 석방된 뒤, A 씨는 대포폰 1대를 개통해 김 전 회장이 검찰의 추적을 피해 연락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조력자 엄벌’로 김 전 회장을 고립시키는 전략이다. 앞선 법조계 관계자는 “처벌이 불가한 친인척의 경우 그들의 동선을 쫓으면서 김 전 회장과의 접촉을 포착하면 되고, 처벌이 가능한 단순 지인들의 경우 검거를 하면서 하나씩 김 전 회장의 손발을 자르는 게 가장 전형적인 도주 피의자 수사 방법”이라고 풀이했다.
#커지는 법원 책임론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주식투자 사기로 91억 원을 가로챘다는 또 다른 혐의로 법원에 신병 확보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두 차례 구속영장에 대해 서울남부지법 홍진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며 기각했다. 도주 10일이 넘어가면서 김 전 회장을 풀어준 법원에 비판이 쏠리는 대목이다.
시민단체는 홍진표 부장판사에 대한 고발장도 제출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민생위)는 11월 16일 직권남용,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홍진표 부장판사를 고발했다. 민생위는 고발장에서 김봉현 전 회장이 홍 부장판사와 고교 동문이라는 점, 김 전 회장이 영장전담판사 경력이 있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한 점 등을 들어 “전관예우 차원과 또 다른 커넥션이 있다”고 수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결과는 무혐의 가능성이 높지만, 법원이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도주를 했던 전과가 있거나 증거인멸 시도가 있었던 케이스, 또 검찰이나 법원의 소환에 불응한 기록이 있는 이들의 경우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게 오히려 부담스러운 상황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