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허가 취소에 해외서 제조 역수입, 소비자 혼란…매년 수능 앞두고 기승 수천 건 적발 “근본 대책 세워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억력 개선' '기억력 향상' '기억력 강화' 등 건강기능식품 기능성을 표방한 '세라큐'(Cera-Q) 관련 제품 부당광고는 지난 5년간 98건 적발됐다. 2018년 23건, 2019년 18건, 2020년 33건에서 지난해 1건으로 줄었다가 올해 23건으로 다시 늘어났다.
세라큐는 국내 바이오 벤처 B 사가 누에고치에서 추출한 실크 피브로인 단백질을 가공해 만든 원료다. 국내에서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인정받지 못했다.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은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것을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 내용에 따라 최대 영업정지 6개월 및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런데 부당광고 근절이 쉽지 않은 이유는 세라큐 관련 제품이 해외직구 형태로 국내에 반입되고 있어서다. 세라큐를 원료로 사용한 '나우푸드'(Now Foods) '나트롤'(Natrol) 등 미국 제품은 국내 소비자가 해외 웹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하거나, 국내 오픈마켓에서 해외직구 대행 사업자가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다 한들 그 대상은 영세한 해외직구 대행 사업자여서 행정처분 실효성이 떨어진다.
미국엔 한국의 건강기능식품 같은 제도가 없다. '식이보충제'라는 유사한 분류가 있다. 하지만 기능 강조표시의 경우 허가가 아닌 신고제다. 이에 따라 나우푸드, 나트롤 등에서 판매하는 세라큐 관련 제품엔 "기억력 등 뇌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기능 강조표시와 함께 "FDA(미국 식품의약국) 평가를 받지 않았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세라큐 관련 제품의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표방 행위를 철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관련 사이트를 접속 차단 조치한 사례도 있다"며 "세라큐는 기능성 원료 인정이 취소됐지만, 가공식품 원료로는 문제가 없어 국내 유통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인순 의원실 관계자는 "법적인 한계"라며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라큐를 만든 B 사는 2014년 6월 '피브로인 효소가수분해물'이라는 이름으로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 인정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식약처 건강기능식품심의위원회는 2017년 11월 피브로인 효소가수분해물의 기능성 원료 인정을 취소했다. 기능성 원료 자격을 개발업체가 자진반납한 적은 있지만, 식약처가 직접 취소한 것은 B 사 사례가 최초였다. 올해 11월 현재까지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아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B 사의 기능성 원료 인정에 주요한 자료로 사용된 논문이 철회되면서 식약처는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2017년 11월 식약처 건강기능식품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한 참석자는 "기능성 원료 인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결과이고 일단 학회지에 게재된 것을 가지고 기능성 원료의 과학적인 증거로 활용한다"며 "B 사에서 제출한 논문 중에서 유일하게 섭취근거가 되는 논문 1건이 허위로 인하여 학회지에서 게재 철회를 한 상태라 이 기능성 원료는 취소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 사는 기능성 원료 인정 취소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식약처 손을 들어줬다.
관련 논문이 철회된 건 데이터 조작 및 위조 행위 때문이었다. B 사 대표이사 A 씨는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에 실크 피브로인 단백질의 기억력 향상 효과에 관한 논문을 2013년 9월 게재했다. 해당 논문은 B사가 2014년 6월 식약처에서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 인정을 받을 때 주요 자료로 활용됐다.
그런데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는 2016년 12월 A 씨 논문 게재를 철회한다고 공고했다. A 씨 논문에 데이터 조작 및 위조 등 연구윤리 위배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A 씨는 학회에 소명자료를 제출했지만, 학회는 소명자료 중에 실험 결과를 기록한 최초 데이터가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게재 철회를 결정했다. A 씨는 학회 결정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진 소송에서 패소했다.
현재 B 사는 경쟁사 고발로 또 다른 재판을 치르고 있다. B 사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2020년 2월 기소됐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형사상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지난 10월 12일 판단했다. 이에 검사가 항소해 판결이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
식약처는 세라큐 관련 제품 외에도 기억력 개선 등을 표방하는 식품 부당광고를 상시 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수천 건이 적발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불법광고가 기승을 부린다. 올해 수능을 앞둔 10월 실시된 특별점검에선 297건이 적발됐다. 지난해 같은 시기 특별점검 때 적발된 194건보다 약 100건 늘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