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국어 기본, 유학파도 수두룩…‘편법 과외’ 엄중처벌 한다지만 적발 어려워 “입시제도 개혁부터”
펑 씨(여). 26세. 미국 소재 유명 사립대 석사 졸업. 상하이 대외경제무역대 졸업. 영어 말하기 및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 가능. 토플 만점.최근 한 가사도우미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자기소개서다. 가사도우미 채용을 원하는 구직자들의 화려한 ‘스펙’이 SNS 등에서 화제가 됐다. 이 사이트에 올라온 자기소개서를 살펴보면, 2~3개 언어는 기본이고 석·박사 출신과 전문 자격증 보유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푸 씨(여). 27세. 영어, 일본어 능통. 어린이 회화 전문가. 산후 도우미 및 정리 수납 자격증 보유.
이 씨(여). 24세. 영국 사립대 석사 출신. 어린이 조기 영어 교육 경험 다수 있음. 코딩 전문가.
베이징의 한 가사도우미 업체 매니저인 왕양은 “지금까지 이런 고스펙을 가진 가사도우미를 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왕양은 “젊고 학력이 높은 사람이 가사도우미를 하지 말란 법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보통은 육아 경험이 많고 요리를 잘할 뿐 아니라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도우미들이 인기가 많다. 젊은 사람들은 가사도우미 업계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가사 서비스업 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가사도우미 88.6%가 농촌 출신이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가사도우미는 20% 미만이다.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가사도우미는 전체의 14%가량이다. 대졸자는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고학력의 젊은 여성을 가사도우미로 채용할 수 있다고 내건 회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봤다. 사이트에 올라온 가사도우미를 구한다고 하니 “초중고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영어 과외를 해줄 수 있다. 도우미들은 전부 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수업 장소는 원하는 어디라도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다. 가사도우미가 아닌, 과외교사를 소개해주는 업체였던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가사’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우리에게 등록된 교사들의 주 업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라며 “과외뿐 아니라 원할 경우 가사 서비스도 제공해줄 수 있다. 물론 비용은 추가된다”고 설명했다. 교사들의 스펙, 과외 과목, 수업 종류 등에 따라 비용이 다르지만 대략 1만 5000위안(280만 원)~2만 5000위안(470만 원) 사이라고 했다.
중국인민대학 교육원의 저우샹 교수는 “가사도우미라는 이름으로 과외 교습을 하는 것은 현재 당국이 추진하는 ‘사교육 억제’ 정책을 거스르는 일이다. 변칙적인 과외로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사회적 불안을 조장한다”고 질타했다. 저우샹 교수는 “편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교사들의 질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들의 스펙이 진짜인지 어떻게 판별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지난해 9월 당국은 ‘변칙적이고 불법적인 학과 교외 훈련에 대한 단호한 조사 및 처리에 관한 고시’를 발표한 바 있다. 쉽게 말하면 학교 외에서 이뤄지는 과외를 단속하고, 적발할 경우 엄중히 처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사교육 억제 후 개인 과외가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내렸던 조치였다.
하지만 ‘가사도우미의 탈’을 쓴 과외교사가 나올 정도로 사교육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쑨차오 변호사는 “개인 과외는 보통 집에서 일대일로 이뤄진다. 은밀하기 때문에 적발이 어렵다”며 “가사도우미 또는 집사라는 명목으로 채용하면 처벌하기도 애매하다. 과외가 여전히 활개를 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런 과외를 두고 온라인상 의견은 엇갈린다. 한 블로거는 “입시제도가 존재하는 한, 사교육에 대한 수요를 강제로 막는 건 불가능하다. 돈만 있다면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이를 억지로 규제하려고 하니, 가사도우미 사례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 교육 전문가는 “어린 아이에게 과외교사를 붙여주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라는 글에서 “과외교사의 목적은 오로지 학습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정신적인 수양이다. 학력이 높은 가정교사로부터 길러진 아이들을 많이 봤다. 그들의 공통점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왠지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며 과외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당국에선 가정에서 이뤄지는 과외를 엄정히 조사해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당국 관계자는 “각 지역과 연계해서 편법적인 교육 불법 행위를 적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교육, 과외 등을 알선하는 브로커들을 집중 관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시에 가정교육 강화 및 다양한 교육 서비스 공급에도 신경을 쓸 계획이다. 교실 수업의 질을 높여 가정에선 아이들이 학습보단 놀이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목표다. 중국교육과학연구원 저차오후이 연구원은 “불법 사교육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입시제도 등 교육평가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